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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3:4-10
성경본문내용 (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5)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6)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강설날짜 2008-02-03

2008년 2월 3일 설교


범죄하지 말라


말씀:요한일서 3:4-10

지난주 우리는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일한 것이 없는데도 받는 사랑이기에, 곧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사랑이기에 이질적이고 낯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성령이 임하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로서 그 아들의 영광스러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와 같을 줄을 알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의 계신 그대로 볼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3:4-24절까지 말씀은 지난주에 살펴본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의 계신 그대로 볼 소망을 가진 자가 주님께서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삶을 산다는 원론적인 선언에 기초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두 가지 측면에서 예를 들어 제시해주시는 말씀입니다. 4-10절까지 말씀에서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해주고 있고, 11-24절까지 말씀에서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소극적인 측면에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고,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간에 걸쳐서 이 문제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적극적인 측면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범죄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소극적인 측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3:3절에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스러운 모습 그대로 볼 소망을 가진 자들은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어떠한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마땅한 삶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화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성화의 삶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소극적인 측면이고, 하나는 적극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성화를 위해서 소극적인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 안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라는 사람,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3:9절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맞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죄를 짓지만 예수님의 피 안에서 용서를 받는다는 이야기 입니까? 아니면 아예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그 생각들 따라 각자의 주장들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전혀 범죄 하지 않는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육 이원론을 주장하는 자들인데 육신은 죄를 범하여도 영혼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육신은 하찮은 존재이며, 영혼의 감옥이기에 이것은 아무리 범죄 하여도 영혼에는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처럼 특별한 영적인 지식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 영지주의자들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는 반대적인 개념을 가진 금욕주의가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금욕과 고행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파들은 한번 죄 사함과 거듭남을 받았다면 다시는 죄 사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완전히 용서 해주셨는데 또 다시 죄를 거론하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모독하는 것이기에 속죄를 위한 기도나 속죄에 대한 찬송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도 무엇을 인용하느냐 하면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이런 말씀들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죄를 완전히 짓지 않을 수는 없지만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점점 성화의 노력을 할수록 죄 짓는 횟수가 줄어들어서 거의 다 줄어들 때까지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죄를 덜 짓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하는 죄라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행함에 기준을 두고서 정의를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말씀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산상수훈에서 살펴봤듯이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동기를 이미 행함으로 간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 번을 반복하여야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의 생각이 얼마나 빠르게 반복되고 움직이는지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마음의 욕망들이 순식간에도 얼마나 많이 떠오르고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들이 쉴 틈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자신들은 범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누구에게 소속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버지께로 난 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는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이 그 아들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다는 사실입니다. 즉 아들의 일하심으로만 범죄 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4-5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의 죄를 없이 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서만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없는 상태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범죄 하는 자마다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였고, 예수님을 알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마귀의 일이 무엇입니까?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한 자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두 가지 소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자기들은 아브람의 자손으로 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도리어 죽이려고 하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즉 두 소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와 마귀에게 속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귀가 한일은 처음부터 거짓말 장이라는 것입니다. 그 거짓말로 속인 것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너희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그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 장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로 난 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합니다. 여기서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의미는 자기의 소속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흔히 ‘씨 도둑질은 못 한다’는 말을 합니다. 몰래 바람을 피워서 자식을 낳아도 그 부모의 씨를 자식이 그대로 물려받는 것입니다. 부모의 유전자가 자녀에서 그대로 복제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도 그러하다면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자라면 반드시 자기의 소속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정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4:2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은 이것이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만이 죄가 없는 육체로서 온전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바로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가 죄를 범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 일서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과연 그리스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범죄를 행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의 영원 전부터 언약하신 그 언약대로 자녀를 삼아 주셨기에 그 사랑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범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왜 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난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스스로 독립하고자 한 것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의 인간의 범죄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로 난 자는 그 아들의 사랑 안에 그 아들의 피 뿌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거나 선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2:13절은 말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우리는 믿음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영원토록 미쁘시기에 자기를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미쁘심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한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행하는 자에게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의로우신 자인 것처럼 의를 행하는 자가 의로운 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의로운 자 이신 것과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은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그 분 자신이 스스로 의로우신 분이시지만은 우리는 어떻게 의롭게 됩니까?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집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께 돌려진 의로운 자라는 단어와 우리에게 돌려진 의로운 자라는 단어가 근본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같은 단어를 돌리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같은 점이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강조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근본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같은 점은 우리 안에 예수님과 같은 닮은꼴의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보면 8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죄를 행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역시 여기서도 강조점은 ‘행하는 자’입니다. 8절에 대비가 되는 이 사람은 앞에서처럼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고 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행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7절의 행하는 사람은 의를 행하는데, 8절의 행하는 사람은 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죄를 행하는 이 사람은 그 소속이 그의 행함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곧 마귀에게 속하는 자임을 죄를 행하는 그 행함을 통해서 보여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b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세상 속에서 죄를 통하여 곧 불순종을 통하여 역사하는 이 마귀의 행위를 멸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내어진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마귀와 동업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일에 투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지나갈 것이고 멸망 받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의 일에 동참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의 일에 동참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귀의 일을 거드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 속에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행하는 자’ 곧 한 사람은 의를 행하고, 한 사람은 죄를 행합니다만 여기서 행하는 일들을 통해서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누가 마귀의 자녀인지 하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 짓는 일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그런 욕망들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죄와 싸우고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성을 죽이는 일을 우리가 실행을 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소극적인 측면만 수행을 한다고 다 온전케 되어 지지는 않습니다. 더 적극적인 측면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로 죄를 짓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늘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더욱 성숙한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시고 더 깊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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