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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4:7-12
성경본문내용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강설날짜 2008-02-24

2008년 2월 24일 설교


사랑은 여기 있으니


말씀:요한일서 4:7-12

4:1-5:12절까지는 3:23절에 나타난 계명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 이 두 주제를 더 새롭게 확인해 가면서 더 풍성한 방향으로 발전시켜가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4:1-6절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7-12절 말씀을 통해 좀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믿음 외에 또 다른 한 요소인 ‘사랑’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이니라”(요 15:9-12).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그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을 받은 자들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5:18-19절에 보면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그런 사랑을 알아주고 칭찬하고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워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의 택하심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아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을 세상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예수님을 먼저 미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지 못하면서 인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여전히 사망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끼리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생명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려는 한 제자가 자기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고 따르겠다고 하자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마 8:22). 예수님은 이 세상의 사람들을 죽은 자들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가 몸부림치면서 쏟아놓은 사랑이라는 것이 생명의 향기이겠습니까? 아니면 사망의 향기이겠습니까? 사망의 향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 4:7-8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고 합니다. 요한일서 저자는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낳았다’는 말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곧 중생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하나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 흐르는 것과 같은 그런 동유적인 본질이 흐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사랑하는 자도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8b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위대한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로 난 자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사랑하자’는 말씀과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말씀도 자기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사랑이라는 것을 가지고 사랑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곧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 아닌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가지고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 놓고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는가 하며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원하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랑이 없다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나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로 난 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자는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망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로 난 자가 되었고,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사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받은 자만이 같은 사랑을 받은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인간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나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율법 선생이지만 예수님의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유대 관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랍비였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임을 인정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반응은 “어찌 다 큰 사람이 다시 엄마 배속에 들어갔다 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거듭남을 육신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요한일서의 사랑의 문제도 하나님께로 나지 않고서는 그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모르고서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 엉터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말하여도 그 사랑이 과연 하나님께 속한 사랑인가를 우리는 잘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9-10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나타난 사랑이란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살리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직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자기 사랑일 뿐이며, 그런 사랑이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여기 있다는 것”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평소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적인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여기고 어리석다고 여기며 침 뱉고 돌아서버린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까? 십자가를 들이대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언제 원한 적이 있습니까? 황금으로 꾸민 마차에 백마 탄 왕자가 데려가는 그런 사랑을 꿈꾸어왔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분의 사랑을 원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랑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시중들던 천사들도 몰랐던 사랑입니다. 베드로전서 1:3-12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한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자기 백성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10절에서는 화목제라고 합니다. 화목제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이스라엘백성과 하나님사이에 언약이 체결되고 나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어기게 되면 죄를 범한 것이기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먼저 속죄제를 드리고 나서 화목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짐승의 제사로는 온전한 속죄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제사는 흠이 있는 인간이 드리는 것이며, 제사장도 흠이 있는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편에서 마련한 화목제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 화목제물이 주어지지 않으면 인간은 어떤 상태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된 상태에 있습니다. 곧 죄와 사망아래 있습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무엇이 과연 사랑입니까? 지금 사형수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큰 사랑인 것입니까? 맛있는 음식입니까? 멋진 옷입니까? 세상의 부귀영화입니까? 아닙니다. 사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어떤 것입니까? 세상의 명예와 부귀영화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구하고 있는 자는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남들보다 더 낫게 채워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겼습니다. 남들보다 나은 정도는 아니라도 남들만큼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함께 죽자는 십자가만 들이대시면서 그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여 보낸 화목제물이라고 하시니 이것을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도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일 뿐입니다. 이런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어려움이 오고 힘든 상황이 되면 원망밖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면서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주시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니면 결단코 알 수가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측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과 세상 것들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그곳에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신 그 사랑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것입니까? 골로새서 2:1-5절을 보면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고 했습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기 원한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늘의 신령한 복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끼리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이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11-13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같이 사랑하셨기에 이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한 몸이기에 서로 돌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나타날 때에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아는 것도 우리에게로 말미암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에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자라가게 하시고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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