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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5:19-28
성경본문내용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1)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24)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25)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7)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28)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강설날짜 2008-03-23

2008년 3월 23일 설교


부활의 첫 열매


말씀:고린도전서 15:19-28

고린도전서 15장은 일명 부활장이라고 합니다. 1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설명하면서 부활을 집중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 장을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이란 3-4절에 기술한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한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다시 고린도 성도들에게 알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고린도 교회에는 파당문제와 성찬 문제와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문제 등 많은 문제들로 인해 분쟁이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복음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전한 복음 중에서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부활 신앙이 무엇이며,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인해 부활의 산 소망을 덧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5절부터 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신 증거를 열거합니다. 게바에게와 열두 제자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삭되지 못한 자신에게도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며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고린도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13-18절에 보면 바울은 계속해서 몸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들에게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리라고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면 사도들이 전한 것은 다 헛것이고 너희 믿음도 다 헛것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너희는 죄 가운데 있으며, 예수 믿고 죽은 자들은 다 망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19절 말씀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영광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에서 복 받고 잘 된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활을 믿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잘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24-26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세상의 보장된 부귀영화의 삶을 버리고 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원하였습니까? 그것은 애굽의 모든 영광이나 보화란 죄악의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의 즐거움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한 것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이 무엇입니까? 애굽의 모든 보화, 그 당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의 보화보다 더 나은 보화란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상이 아닙니다. 그 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상인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히브리서 11:35절을 보면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더 나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말씀 36-40절 말씀을 보면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이 부활을 믿었기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같이는 시험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유리하고 궁핍하며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무엇을 믿었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까?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인다고 하여도 달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무엇을 믿었기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기에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3:1-1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가 옛날에 자랑거리로 삼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배설물은 똥과 오줌을 말합니다. 우리는 똥과 오줌을 어떻게 여깁니까? 무익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들을 이제 해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을 믿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바울사도가 해로 여긴다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영광이나 돈을 사랑함이나 세상의 쾌락 사랑함을 해로 여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베냐민 지파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만큼 지킨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자랑거리입니까? 이것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배설물이요, 오히려 해로 여긴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기가 자랑했던 그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앞에서 다 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에 참예함을 아는 것은 그의 죽으심에 참예하는 것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부활에 참여하고자 함을 알게 되려면 이 세상에서 죽음에 넘겨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죽으라는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믿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이미 죽은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세계는 생명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이 없고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는 온통 환난과 핍박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믿음을 버리지 아니한 것은 더 나은 부활의 세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영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이 배설물이요, 해가 됨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얼마나 영광스럽게 여기겠습니까? 더군다나 좋은 학교를 다니면서 판사나 의사가 되고 박사가 되어 교수가 되고, 높은 관직에 오르면 얼마나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만약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이런 것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영광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만약 오늘 저와 여러분이 눈에 보이는 세상 영광을 부러워하며 그들과 같이 달려간다면 지옥에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약속의 세계, 부활의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은혜로 주셔야만 되는 것이지 노력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모습이라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서 12:1-3절에 보면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의 비밀을 예언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자와 영원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가 있을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자란 구원을 얻는 자인데 이런 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자들은 무궁한 부끄러움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이런 계시와 예언의 내용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여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끄럽지 않고 멋있게 살고 싶은 것입니까? 아니면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 살고 싶습니까? 우리는 두 가지 다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심사는 늘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영광에 있습니다. 이런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볼 때 다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에도 참여 못하고 세상의 영광도 없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 중에 더 불쌍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첫 것은 하나님께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곡식의 첫 열매만이 아니라 짐승도 첫 것의 수컷은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사람도 장남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모든 장남을 대신하여 레위지파가 드려집니다. 출애굽기 13장에 보면, 왜 처음 것을 드리라고 합니까? 애굽에서 10번째 재앙이 장자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장자와 첫 수컷은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드려짐이란 희생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장자의 개념이란 자기의 희생으로 나머지를 살려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장자는 르우벤 이지만 장자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11번째 요셉이 장자의 몫인 두 몫을 받는 것은 요셉이 희생으로 형제들을 살려내기에 장자의 명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통적인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희생하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에스겔 44:30절을 보면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서는 새 성전과 새 언약을 말합니다. 옛 성전이 우상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신이 떠나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처음 익은 열매와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처음 것이 제물로 희생되어져야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16절을 보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하면 떡 덩이도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씀이 연결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까? 그것은 다니엘서의 말씀대로 기록된 책에 있는 자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겨주신 자들을 살려내기 위하여 첫 열매로서 희생하셨습니다. 희생만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기에 그 첫 열매의 영역 안에 있는 자들은 다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1-22절은 말합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기에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담의 후손으로 사망의 권세아래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하는 것입니다.

23-24절을 보면 여기서 순서가 나오는데 순서를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첫 열매의 희생과 부활이 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나 지금 예수를 믿는 자들이나 다 부활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순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에 살아서 믿는 자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을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십니까? 우리에게는 환난과 핍박이 없어서 부활의 산 소망이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호사스러운 가운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인한 고난과 환난과 핍박이 있기나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성경의 이런 말씀이 우리에게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도 반드시 부활합니다. 우리가 이 부활의 산 소망 가운데 서로 위로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감당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5-27절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불가불이란 이중 부정으로 강조한 것으로 반드시 예수님이 왕 노릇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사망을 이기시고 왕 노릇 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말씀이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십니까? 그런 사람은 28절의 말씀을 맛보게 됩니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든 것의 주가 되십니까?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의 희생과 노력이 그렇게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부활의 산 소망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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