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94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3:31-36
성경본문내용 (31)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32)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33)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34)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35)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36)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강설날짜 2009-10-25

2009년 10월 25일 설교


하늘로서 오시는 이


말씀:요한복음 3:31-36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에 계속되는 말씀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입니다. 31절에 보면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위로부터 오시는 이, 곧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땅에서 났고, 땅에 속하였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때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합니까? 비교가 안 될 때 그런 말을 씁니다. 우리의 언어 체계 속에서 비교가 안 되는 것을 하늘과 땅 차이다라는 것 외에 달리 마땅히 표현할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자신을 가리켜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한 것은 큰 차이라기보다는 단절을 의미합니다. 곧 자기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1-32절을 보면 이와 비슷한 표현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증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 그것도 세상 속에서 자기 나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아래서 났고,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은 “나는 위에서 났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차이 정도가 아니라 바로 단절입니다. 곧 근본적으로 그 출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의 출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출처가 세상이요, 죄 가운데 속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모두가 죄 아래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믿지 아니하는 그들은 아무리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자부하여도 결국은 마귀에게서 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마귀에서 났다고 하니 좀 심합니까? 요한복음 8:43-47절을 보면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입니까?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마귀에게서 난 것이 세상에 속한 것이고, 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출처가 다르고 소속이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과 땅과 같은 단절이 예수님과 유대인들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어떻게 하고자 합니까? 내가 조금만 잘하면, 내가 조금만 더 정성을 쏟으면 될 텐데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곧 나의 행위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원리가 우리 안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은혜를 제대로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은혜를 제대로 받은 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자는 곧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한 자는 끊임없이 자기의 행위를 내세우고, 자기 공적을 자랑하고, 자기의 이력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곧 끊임없이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오신 이, 곧 하늘로서 오신 이는 어떠한 분이시며, 무엇을 하십니까? 31-32절에 보면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만물 위에 계신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 안에 속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이 세상의 피조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적 타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이 분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 만물 안에 오신 것이 얼마나 큰 자기 낮춤입니까? 창조주께서 자신을 피조물처럼 너무 낮추어 오셨기 때문에 땅에 속한 자들이 알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단 중에 예수님이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심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인데 가장 처음 창조된 피조물로 보는 것입니다. 다른 이단들도 예수님을 이 세상의 피조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요한복음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피조물에 속한 분이 아니십니다. 위로부터 곧 하늘로부터 오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함께 성자 하나님으로서 창조주 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만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 만물 아래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요, 이것이 은혜입니다.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 만물 아래로 오신 것을 빌립보서 2:6-8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바울 사도는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를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만물 위에 계시는 분이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으로 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으니 누가 이를 알아보겠습니까?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죽었으니 누가 그를 믿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분이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32절을 다시 보면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고 들은 것을 증거 하실 수가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셔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가르치심과 행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 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용서의 나라요, 은혜의 나라이며, 차등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하나님 나라를 주로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증거하신 것 가운데 하나만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0:1-17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했습니다. 포도원 청지기가 이른 아침에 나가서 일당 한 데나리온씩을 주기로 하고 일군을 불러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제 삼시에 나가 보니 또 놀고 있는 자가 있어서 그들에게도 상당한 품삯을 주기로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유대인의 시간을 우리 시간으로 환산하려면 더하기 6시간을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제 삼시는 오전 9시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청지기는 계속하여 제 육시 곧 12시와 제 구시 곧 오후 3시, 제 십일 시 곧 오후 5시에도 장터에 나가서 놀고 있는 일군을 불러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하루 일은 오후 6시경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뒤에 온 사람은 채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얼마의 품삯을 주었습니까? 아침 일찍 온 일군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일당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자 이른 아침에 온 자는 나는 더 받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아침 일찍 온 자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침 일찍 온 자들이 화를 내며 주인에게 따지는 것입니다. ‘어찌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과 같이 하루 종일 일한 우리에게 한 데나리온 밖에 주지 않습니까?’ 이때 주인이 그 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주는데 네가 왜 잔소리냐? 너는 한 데나리온 받기로 약속하였으니 네 거나 가지고 가라. 내가 선함으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가운데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행한 대로 받는 세상에서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자본주의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아침 일찍 온 사람은 날일 하는 식으로 세월아 네월아 가라 하는 식으로 어영부영 일 하였고, 마지막에 온 사람은 죽을동 살동 모르고 일하였기에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면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앞선 자를 앞지르자는 것은 역시 자본주의 원리요, 경쟁 사회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포도원 품군 비유에서 부르심을 받은 일군들은 모두 다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실직자들입니다. 그들은 주인이 일군으로 써 주지 않으면 하루를 공처야 하는 신세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그들이 주인에게 택함을 얻어 포도원 품군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그들의 은혜대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실력이 있어서 어디에 스카웃이 되어 가면 일당을 내가 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이 채워질 때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고 있는 사람이 호구지책으로 일하러 가게 되면 기본 일당만 받고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아직도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자기들은 다 버리고 예수님을 쫓으니 무얼 주실 것입니까 하는 제자들과 오늘날 이 세상의 원리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비유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전하니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아니 내가 평생토록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였는데 어찌 저런 자들과 함께 상을 받는다는 말인가?’ 이런 생각이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목사인데, 나는 장로인데, 나는 집사인데 적어도 평신도 보다는 나은 상을 받을 거야라는 생각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던 자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일찍부터 예수님을 믿고 충성한 우리와 함께 주님 앞에 나아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이른 아침에 온 자처럼 말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침 일찍 온 자나, 마감 한 시간 전에 온 자나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나라요, 차등이 없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와 같은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은 자가 어떻게 이와 같은 은혜의 세계를 이해하겠습니까? 만약 바울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함께 못 박힌 강도와 상급을 꼭 같이 준다면 바울이 신경질이 났을까요? 안 났을까요? 안 났을 것입니다. 만약 신경질이 났다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예수님의 비유가 이해가 안 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상이란 영생입니다. 창세기 15:1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잘 됐구만, 이제 슬슬 놀다 죽기 직전에 예수 믿고 가자, 그래도 상은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있습니까? 이런 분들은 자신이 정말 은혜를 받은 자인지 점검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대로 은혜를 받은 자라면 모두가 바울과 같은 자세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도록 충성하고도 “나는 죄인 중의 괴수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딤전 1:15).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하는 것입니다(고전 15:10). 바울의 이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하늘의 것을 보고 들은 그 은혜의 세계를 가르치시고 실천하심으로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심을 사람들이 알아들었습니까? 못 알아들었습니까? 32절을 보면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알아듣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증거를 받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증거를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증거 하시는 예수님을 죽여 버렸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무지하며, 얼마나 하늘과 땅처럼 단절이 있는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롬 3:10). 그러므로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즉 위로부터 다시 나야 예수님의 증거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거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33절을 보면 하나님의 증거를 받는 이가 나옵니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증거를 받는 자는 위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고 시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만물 위에 계신 분이 만물 아래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예수님을 빌립보서 2:9-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끓게 하셔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5-36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만물을 아들에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으면 영생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하늘과 땅의 간격, 곧 그 단절을 뚫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보다 더 귀하고 더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온 우주 만물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생을 선물로 받은 자들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299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로 간 예수님 요 4:1-26 손재호 2009-11-01 5023
» [요한복음 3장] 하늘로서 오시는 이 요 3:31-36 손재호 2009-10-25 3940
297 [요한복음 3장] 그는 흥하여 하리라! 요 3:22-30 손재호 2009-10-18 4080
296 [요한복음 3장] 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21 손재호 2009-10-11 4274
295 [요한복음 3장]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요 3:1-15 손재호 2009-10-04 4559
294 [요한복음 2장] 마음을 아시는 주님! 요 2:23-25 손재호 2009-09-27 4428
293 [요한복음 2장] 이 성전을 헐라! 요 2:12-22 손재호 2009-09-20 4510
292 [요한복음 2장] 예수님의 처음 표적 요 2:1-11 손재호 2009-09-13 5382
291 [요한복음 1장] 첫번 제자를 부르심 요 1:35-51 손재호 2009-09-06 4848
290 [요한복음 1장] 은혜와 진리! 요 1:14-34 손재호 2009-08-30 4097
289 [요한복음 1장] 독생자의 영광! 요 1:14-18 손재호 2009-08-23 4066
288 [요한복음 1장] 하나님께로서 난 자 요 1:9-13 손재호 2009-08-16 4318
287 [요한복음 1장] 세례 요한의 증거 요 1:5-8 손재호 2009-08-09 4351
286 [요한복음 1장] 태초에 계신 말씀 요 1:1-4 손재호 2009-08-02 4797
285 [창세기 50장] 요셉의 죽음! 창 50:15-26 손재호 2009-07-26 5864
284 [창세기 49-50장] 야곱의 죽음과 장사 창 49:29-50:14 손재호 2009-07-19 4847
283 [창세기 49장] 야곱의 자식에 대한 예언(3) 창 49:13-28 손재호 2009-07-12 5176
282 [창세기 49장] 야곱의 자식에 대한 예언(2) 창 49:8-12 손재호 2009-07-05 4529
281 [창세기 49장] 야곱의 자식에 대한 예언(1) 창 49:1-7 손재호 2009-06-28 4758
280 [창세기 47-48장] 야곱의 유언! 창 47:27-48:22 손재호 2009-06-21 470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