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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4:27-42
성경본문내용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29)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30)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32)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5)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38)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39)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41)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강설날짜 2009-12-06

2009년 12월 6일 설교


예수님의 양식


말씀:요한복음 4:27-42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고 있을 때 양식을 구하러 동네로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일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사치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나온 것도 만약 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당장 점심 먹을 것이 없어서 처자식이 굶고 앉아 있다면 여기서 예배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나면 쌀을 한 포대씩 준다면 앉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먹을 것을 구하러 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오늘 말씀의 결론을 너무 쉽게 ‘우리는 빵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전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가 선교 단체 시절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은 부업이고 선교는 주업이다.’ 그래서 직장이란 전도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내가 밥 먹고 살기 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직장에서 쫓겨나서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보다 전도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되면 사마리아 여인이나 제자들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와 같은 생각에 빠져 있다면 사마리아 여인이나 제자들이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는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염려하느냐고 공박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 중에 드디어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때 27절에 보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당시 유대적 관습에서 랍비가 길에서 낯선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랍비 문서의 기록에 의하여 랍비의 자격을 다룬 6조 금단 중에 “길가에서는 자기의 아내라 할지라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자와 이야기 하면 율법에서 멀어지게 되고 결국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 사이에는 아주 진지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어찌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하십니까?’라고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갑자기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막 달려 들어갔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간 사마리아 여인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28-29절에 보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두었다는 것은 더 이상 육신의 목마름이 없어진 것을 말해 줍니다. 또 동네로 달려갔다는 말은 삶의 권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그녀의 삶은 환희와 기쁨에 넘치게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여인은 동네 사람들마다 붙잡고 말했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사마리아 여인은 수치스런 과거로 인한 깊은 자의식과 열등감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던 여자였습니다. 죄로 인해 소외되고 사람들의 멸시를 당했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슬퍼하거나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자의식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항상 수심을 가득 담고 찡그렸던 얼굴이 웃음꽃으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숯덩이 같던 얼굴이 달덩이 같이 밝아졌습니다. 더 이상 삶의 권태와 목마름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만족과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를 따돌리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자랑했습니다.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예수님께 ‘와 보라’고 초청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갑자기 너무 달라진 여인의 모습으로 인해 놀랐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는지 너무 신기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저렇게 변했단 말인가? 그들은 궁금해졌습니다. 자기들도 한 번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30절에 보면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기만하면 자연스럽게 전도자가 됩니다. 누구든지 생수를 마시면 그 기쁨과 감격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 우물가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31절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준비해 온 음식을 내 놓으며 잡수시도록 권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배고픈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사러 갈 때만 해도 행로에 곤하여 지쳐있던 예수님은 얼굴에 기쁨이 기득하여 말했습니다. 32절에 보면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는 말에 도대체 무슨 소린지 제자들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33절에 보면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가져다 드렸는가?”하며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를 오해했듯이 그들도 양식을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식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4절에 보면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38-40절을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내려오신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려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를 보내신 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쉼과 힘을 얻으셨고, 기쁨과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나씩 행할 때마다,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속에서 쉼을 누리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예수님께는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양식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알지 못하는 양식이었습니다. 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마실 물을 말하고 예수님은 영생수를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마실 물을 말하는 여인에게 영생수가 되시는 자신을 소개하고,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생수를 말씀하시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마실 물을 말하고, 예수님은 알지 못하는 양식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제자들은 먹을 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못 알아듣는 것이 바로 우리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벽창호와 같은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그 주님의 열심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전도를 쉽게 하셨을거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은 신이시니까 십자가에서 별로 아프지 않으셨을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찾아 오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전쟁입니다. 악한 마귀와의 전쟁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향하신 것이 우연히 길가다가 들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살리시기 위하여 사마리아까지 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전도여행 차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적과의 치열한 싸움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몸을 입고 있으니 예수님도 주리고 목마르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전쟁을 홀로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알아야 도와주죠. 제자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돕는다고 나섰다가 엉뚱한 소리만 하여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는 책망을 받는 것이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빵을 구하여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 것과 같이 못 알아듣는 곳이 또 한곳에 나옵니다. 배경은 다르지만 예수님의 관심과 제자들의 관심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5-12절을 보면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의논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이나 먹고서 일곱 광주리가 남았는데 그것을 들고 오지 않았다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 깨닫지 못하였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 주운 것이 얼마며 떡 일곱 개로 먹고 주운 것이 얼마냐?”하고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제야 제자들이 떡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가르침을 주의하라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여인과 제자들의 관심사와 예수님의 관심사가 이렇게 다르듯이 오늘날 우리의 관심사와 예수님의 관심사도 이렇게 다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우리 자신이 쓸만한 사람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세가 ‘예수님 내가 무엇을 하여 드릴까요?’하는 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사마리아 여인이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양식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마리아 여인과 제자들에게 참된 양식이 무엇임을 알게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전쟁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전쟁이란 바로 사탄의 세력에 붙들려 있는 우리를 구하여 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하시는 전쟁인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싸우신 결과로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사마리아 여인과 제자들에게 참된 생수와 양식을 증거 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68:12절에 보면 “여러 왕들이 도망하니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전쟁에서 여호와께서 앞장서서 싸워 주시자 대적들이 도망가게 되고 그러므로 거두어온 전리품을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집에 앉아있던 여인들에게도 전쟁의 승리로 인한 전리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전쟁의 결과로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양식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원수를 물리치고 택한 자를 구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동문서답하는 사마리아 여인을 구하여 내시듯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을 구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주님은 열심을 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35-38절을 보면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직 추수하려면 넉 달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벌써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도 제자들이 보지 못하는 면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전쟁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미 사탄이 꺾인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추수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종말인 것입니다. 추수를 함으로 알곡과 가라지가 나누어지듯이 추수할 때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추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초림하신 때부터 종말인 것입니다. 지금은 추수 때인 것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누가 심고 누가 거두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심으시고 예수님이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이 옳도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이들도 역시 하나님이 심으시고 예수님이 거두어들이신 열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되어진 것이 아닌 것을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전도할 때 내가 공을 많이 들여서 한 사람을 전도하였다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38절에 보면 “내가 너희로 노력치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력치 아니한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노력은 다른 분이 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노력해 놓은 것입니다. 이미 승리해 놓은 전리품을 거두어 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노력치 아니한 것을 거두어 오는 것을 통하여 주님의 노력한 것에 참여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참여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노력에 참여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사마리아 여인에게서 나타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제자훈련이나 전도훈련을 받으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노력, 예수님의 힘쓰심이 그를 살려놓은 것입니다. 이제 눈을 뜬 이 여인이 동네에 들어가서 와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사마리아 동네에 모셔 갔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많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42절을 보면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자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노력한 것에 참여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도가 노력치 아니한 것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설교 잘해서 구원 얻을 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노력에 참여되어진 자로서 주님의 일하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주님을 직접 만나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노력에 참여되어진 자로서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일으키시고 오늘도 변함없이 이 일을 이루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양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명’이라는 말이 매우 부담스럽게 여기는 단어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행하시며, 당신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하나하나 이룰 때, 그것이 우리에게 양식이 됩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의욕이 떨어지고, 짜증이 나고, 마음에 은혜가 없다면 우리의 삶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그의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아모스 8:11-13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식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고 살 때 피곤치 않고 지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님의 양식이 우리의 양식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므로 주님이 누렸던 그 만족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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