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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5:9-18
성경본문내용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12)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13)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17)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18)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강설날짜 2009-12-27

2009년 12월 27일 설교


안식일에 일하신 예수님


말씀:요한복음 5:9-18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자비의 집이라고 불리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을 공부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사건의 연속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38년 된 병자에게 “왜 안식일인데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느냐.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고 힐문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힐문은 결국 예수님을 향했습니다.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했다며 핍박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유대인은 안식일만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절기를 안식일의 기준으로 지켰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의 절기를 안식일에 기준하여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의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날이 바로 1절에 보면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절이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이 7일마다 쉬는 안식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명절 기간이기에 안식일로 지키는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고침을 받고 참된 안식을 얻어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합니까? 9-10절에 보면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을 기뻐하고 축하 하기는 커녕 ‘너 왜 안식일을 안 지키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때 고침 받은 38년 된 병자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1절에 보면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해서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러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13절에 보면 고침을 받은 38년 된 병자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그 자리를 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후에 38년 된 병자를 성전에서 다시 만나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의 병이 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사람이 고침 받은 은혜를 잘 감당하지 못하고 과거 행한 죄를 또다시 범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15절에 보면 이 38년 된 병자는 자신을 고쳐 주신 분이 예수님인 줄 알고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사람이 바로 예수라고 고변했습니다. 그리하여 38년 된 병자에게 향하던 힐문이 이제 예수님께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로 안식일 법을 어겼다며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시기 때문에 자신도 일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를 동일시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이 예수님을 죽일 구실이 되었습니다. 18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고 했습니다. 감히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 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말은 참람 죄에 해당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로 말할 수 있느냐며,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발단이 무엇입니까? 베데스다의 사건입니다. 곧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전혀 자신의 힘으로는 고침 받을 수 없는 자에게 말씀의 권능으로 고쳐주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이 지키는 안식일을 어김으로 자기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의 배후가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조종 때문인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죽이고자 유대인들은 마귀의 조종을 받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은 결국 사탄의 조종을 받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예수님의 은혜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단의 자기 체제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사단의 체제란 행함의 체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범죄함으로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구원의 길에 들어 설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38년 된 병자가 베데스다의 연못에 스스로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은혜가 있는 곳이라고 하여도 스스로 은혜의 자리에 갈 수가 없기에 은혜가 그를 삼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여기에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노력과 애씀으로, 나의 실력으로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마귀는 은혜를 막기 위하여 무엇을 합니까? 사람들의 자기 행함을 붙들게 합니다. 은혜의 연못에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애를 쓰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 대신에 사람의 행함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경쟁을 부추깁니다. 사람들의 공적과 업적을 드러냅니다. 상을 줍니다. 세상의 실력자를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야 교회가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주님을 더 잘 증거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다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은혜와는 반대되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증거 되는 길은 세상의 방법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증거하였는지 너무나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한결같이 죽는 모습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을 버려두고 세상에서 통하는 방식으로 나가려고 하니 교회가 돈과 힘이 있어야 된다고 하고, 돈과 힘이 수에서 나오기 때문에 온갖 세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란 은혜를 입은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어떠한 공로나 자랑거리가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소경이요, 절뚝발이요, 중풍병자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참된 안식을 얻어서 가는 사람을 보고 너 왜 안식일 안 지키느냐고 말하는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을 모독하며, 더 나아가면 예수님마저 죽이려고 덤비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싫어합니다.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이야기하면 반드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종교적인 공적들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할 때에 어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에 안식이 없는 자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10-17절을 보면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가지고 유대인을 공격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사단에 눌려 18년 동안이나 고생하는 자를 풀어 놓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너희는 안식일에 소나 나귀를 풀어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5절에서는 그렇게 물을 먹이다가 나귀나 소가 또는 그 아들이 우물에 빠지면 끌어내지 아니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그렇지 않는 자는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하시는 것은 안식일을 지켜도 안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일하심을 따라 자신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구실이 됩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실 줄 아시고도 안식일에 일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으심으로만 자기 백성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안식을 받은 것은 주님께서 죽도록 일하신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안식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0:10절에 보면 지옥 불에서는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주님의 안식이 없는 자들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주님이 주시는 안식의 가치가 나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이 소중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얼마나 일하시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냥 쉬신 것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을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재창조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의 정점으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믿는 자 만의 세계를 따로 만들어 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은 자기의 처음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섭리하고 계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자기의 택한 자를 다 골라내시고 나면 처음 창조물이 불살라지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자기의 은혜를 입은 자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은혜를 받고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만이 가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아닌 것은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 일을 주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2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31-32절에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 하였노니. 너를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듣고도 어떻게 하였습니까? 누가복음 22:33-34절에 보면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옥에도, 죽는데도 주와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오늘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베드로는 맹세하며, 저주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마 26:69-75; 막 14:66-72).

그런데 이런 그가 어떻게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어떻게 도우십니까?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29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34절을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과 예수님의 기도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얼마나 자주 예수님을 부인합니까? 나의 눈앞의 이익 때문에, 그 잘난 자존심 때문에, 자기 영광과 자기 자랑 때문에 얼마나 자주 주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발로 차 버립니까? 그러한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 앞에 무어라고 하여야 합니까?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사모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음을 아는 자가 자신이 불쌍한 사람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존심이라는 죄로 똘똘 뭉쳐있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한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 사실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권세를 이긴 증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주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이 못마땅합니까? 그 이유는 내가 주인공 되고 싶고 내가 멋있게 보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멋있는 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영웅적인 일을 이루어 내겠으니 예수님은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서 늘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멋진 일을 하여서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결코 하나님 백성다운 자세가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자랑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런 자세가 바로 천국 백성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어찌하든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고자 합니다. 자기의 행함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자기 의를 들어내고자 합니다. 이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죄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도 주님이 일하심을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싸움인지 히브리서에서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4:1-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이란 바로 우리의 믿음의 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안식일에 일하신 예수님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일하시는 주님을 인해 참된 안식을 누려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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