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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5:19-29
성경본문내용 (19)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20)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27)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강설날짜 2010-01-03

2010년 1월 3일 설교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요한복음 5:19-29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을 공부했습니다(요 5:1-18). 오늘부터 살펴볼 요한복음 5:19-47절까지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요 5:17-18). 이 일로 인해 유대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19-29절 말씀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임을 밝히셨고, 30-37절에서는 이런 예수님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38-47절까지 말씀에서는 우리 주님은 아주 엄격하고 압도적인 자세로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저주 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 19-29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것도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계열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사사건건 죽일 구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유대인들이 섬긴 하나님과 예수님이 소개하는 하나님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44절에서 자신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의 아비가 마귀라고 노골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버지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도 심각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성경의 언약대로 나타난 참된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유대인들이 섬긴 그런 하나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곧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우리도 마귀의 자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하면 다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하나님 곧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 예수님 하는데 성경의 하나님과 성경의 예수님이 아닌 경우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기초해서 우리의 신앙이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바른 신앙인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신지, 내가 믿는 예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인지를 잘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내가 섬기고 있다는 하나님이 과연 예수님이 소개하시는 하나님이신지를 잘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만이 위에서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제대로 드러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아버지를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본 것이 곧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약 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실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메시아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 곧 다윗 왕과 같은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고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그들의 배후에 사단이 붙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자기들만의 메시아를 꿈꾸어 왔기에 자기들의 구미에 맞지 않은 메시아를 배척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리고 전할 때 늘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기적을 한번 베풀어 주기를 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잘 믿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시면 어떻게 됩니까?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만 하셔도 죽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먼저 알게 되면 왜 예수님이 인자로 오게 되셨는가를 알게 됩니다. 신명기 5:22-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 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두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보았나이다.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무릇 육신을 가진 자가 우리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남은 것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멀리서 알게 하시고 모세는 가까이 나아가서 그 음성을 듣고 그 돌 판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왔는데도 죽지 아니한 신기한 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에 보면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죽을 것이니 육신을 가진 자가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 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죽지 않은 모세 당신이 듣고 대신 자신들에게 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듣고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니까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들이 마구마구 죽어 나간다고 생각해 봅시다. 누가 이 말씀을 읽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죽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대신 전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듣고 대신 전하여 주었기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이미 신명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8:15-20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산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너희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죽기에 나와 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를 다 너희에게 이르실 자가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스데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면서 설교하는 가운데 모세의 이 말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메시아가 오리라 예언한 선지자를 죽인 것처럼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에서 오시라고 한 선지자가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스데반도 죽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을 제대로 증거 하면 죽이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복음서를 통하여 보면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셨는데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죽였더라는 것이 복음의 무서운 면입니다. 이것을 성경이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은 죄가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임을 모르면 아직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복인 줄 모르고 자꾸만 예수님 믿어 줄 테니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내가 잘되고 내 집안 잘되는 일이고 내 나라 잘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으니 시켜만 주세요.’ 이런 자세가 우리 민족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단순히 믿고 갖다 바쳐봐 복 주나 안주나, 일단 기도해봐 응답하나 안하나,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빌고 또 빌어 왔습니까? 이런 자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나라 선택된 백성, 우리나라 잘되는 것, 여기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19절에 보면 아들이 하는 일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0-21절에 보면 아버지가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는 것 같이 예수님도 자기가 원하는 자를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6절에 보면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음과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었다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그러므로 이러한 생명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려내실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살리는 권세를 가지고 왔기에 예수님을 믿으면 살아납니다. 그래서 25절에 보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그런데 들을 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살리러 오신 분이 바로 앞에 계시는데도 그들은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혔으니 어찌 알아보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 자체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생명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고발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유대인들조차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성경은 죄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식의 전도를 받고, 어떤 식의 전도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구원을 이루어 놓았으니 너는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믿을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이러다 보니 예수 믿는 것이 사람의 결단과 의지적 초청으로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복음이 왜곡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내가 믿었으니 이제 예수님께 뭔가 잘 보여서 복 받고 상 받는 것도 내가 잘 알아서 하면 되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은혜는 간곳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주러 오신 것을 사람들이 배척하므로 죄가 죄됨을 증거 하시고, 동시에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예수님이 친히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생명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주신 것입니까? 자기의 죽음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 길 외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이렇게 자신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 하시는 것은 나중에 성령이 임하고 나면 그때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성령을 주시기 전까지는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25-26절을 보면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금 자신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자기를 믿지 아니함이 곧 심판이다라고 말씀하셔도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은 오직 주님의 일인 것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유식하고 청산유수 같은 설교를 한다고 하여도 단 한사람도 살려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성령으로 알게 하시는 자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가 왜 필요하고 복음 전하는 자가 왜 필요한 것입니까? 목사나 복음 전하는 자가 할 일은 예수님이 살려내시는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직 생명을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이 살려 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하는 자가 목사요, 전도자입니다. 그런 말을 듣고서 ‘맞다. 예수님이 살려 내시는 것이 맞다’라고 하는 자는 다 한 성령을 마신 증거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려내시는 분이심이 믿어지십니까? 그러나 내가 믿고자 하여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생명이 있기에 그 생명으로 우리를 살려 내셔야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주님을 알아보고 복음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생명을 살려 내시는 권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권세도 가지고 계십니다. 22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또 27절을 보면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자되심, 사람이 되어 오심이 심판의 권세를 가지시는 것입니다. 인자되신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고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함같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도 공경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것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길이 결국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고 또한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오셨건만 인자로 오셨기에 사람들이 알아보지도 못하였고 믿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역시 복음이 전해지는 길은 ‘십자가의 도’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사람들이 싫어하고 미련스럽다고 거리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전도를 하시는가 하면 이 세상이 추구하는 바가 심판받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21세기가 되면서 온 인류가 새천년 새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교회마저 새 희망 새천년을 꿈꾸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이름을 내려는 욕심의 다른 발로인 것입니다. 해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새로운 것입니다. 이 새로움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인지 아십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대속을 제대로 알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보내어 주시고 주님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신 그 일이 무엇입니까? 5:24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옮겨질 것이 아니라, 이미 옮겨졌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 선물을 아는 사람은 세상의 가치관인 출세와 성공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고, 심판을 면하는 것이 아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님과 하나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멸망의 자식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알게 하시고, 이 세상에 굴복되지 않게 하시고, 이미 승리한 사람임을 믿고 확신하며,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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