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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6:16-21
성경본문내용 (16)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17)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18)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19)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20)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21)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강설날짜 2010-01-24

2010년 1월 24일 설교


바다 위로 걸어오신 표적


말씀:요한복음 6:16-21

요한복음 6장에는 두 가지 표적이 연이어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 본 예수님의 오병이어 표적 사건과 함께 오늘 우리가 살펴볼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신 표적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오신 표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표적간의 연관성 곧 오병이어 표적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오병이어 표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이 표적을 행하시는 목적이 자기를 믿는 자들 곧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표적에는 이와 같은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들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신 표적은 제자들만 경험한 것입니다. 곧 제자들에게만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계시하시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일까요?

오병이어 표적 사건을 경험한 무리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그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6:14-15).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한 메시아로 생각하고 잡아다 자신들의 임금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자신의 임금으로 삼으면 정치, 경제 문제가 해결 되고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건너가라고 하신 후 자신은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을 보내셨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6:15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행구절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표적을 행하시고 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먼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4:22-23절에 보면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했고, 마가복음 6:45-46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보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보냈을까요?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평행구절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참조해 볼 때 능히 그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표적을 행하신 직후 제자들을 재촉해서 보냈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 이후 무리들 가운데는 분위가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신명기 18:15절에 약속되어 있는 ‘그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임금을 삼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했던 다윗 왕과 같은 메시아 대망 사상과 연관해서 예수님께서 이제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해결해 주시고 그 기초 위에 새로운 사회 체계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곧 그들은 예수님께서 정치, 경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다윗왕국과 같은 그런 나라를 이루어 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무리들의 얼굴은 아마 상기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얼마든지 그런 민중들의 영향을 받아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할 수 있었습니다. 곧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자들도 아직 예수님의 본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한 인식도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무리들과 동일하게 메시아에 대한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십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부활신앙을 심고 성령이 임할 것을 말씀하시고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고 묻는 것입니다(행 1:6). 이처럼 제자들도 오순절 성령 강림 전까지만 해도 오직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곧 그들은 무리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본체에 대한 이해와 오신 목적,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예수님을 정치적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잡아다 임금 삼으려고 하는 무리들의 움직임을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이와 같은 위험성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데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며 다투는 것입니다. 서로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차지하고자 치마 바람을 일으키고 신경전을 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민중들이 자신에 대해 오해하고 정치적이고 빵의 메시아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그들로부터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16-17절에 보면 이 때는 벌써 날이 저물어 어두웠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때까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8절에 보면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이 갈릴리 호수는 과거 대부분의 제자들의 생업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런 광풍 가운데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뱃사람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온 힘을 다해 거친 풍랑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까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지만 충성스러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다 건너를 향해 노를 저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광풍은 그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건너가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건너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돌아갈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영적인 의미를 다 알지 못했지만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광풍 가운데서도 계속 노를 저어 십 여리쯤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자들이 무엇을 봤습니까? 19절에 보면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 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광풍을 헤치고 나아가기 위해 정신없이 투쟁하고 있는데 그 광풍을 뚫고 한 형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형상은 바다를 마치 육지같이 걸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상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광풍을 뚫고 바다 위를 걸어서 자신들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제자들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던 광풍도, 파도도 예수님을 제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온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때 제자들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4: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 때가 밤 사경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밤 사경은 새벽 3-6시 사이를 말합니다. 그런데 주로 사경쯤 되었다고 하면 밤이 밝아지는 새벽 6시쯤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한 새벽 3시쯤 되었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자세히 설명이 되고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이때의 상황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놀라서 막 소리를 쳤습니다. 마태복음 14:25-26절에 보면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떨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자들의 심령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바다 위를 걸어온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광풍과 풍랑을 뚫고 어두운 새벽에 흰 옷을 날리며 물 위를 걸어오니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20절에 보면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기뻐서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여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1절에 보면 “이에 기뻐하여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배가 홀연히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는 말은 제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즉 제자들이 너무나 예수님의 권세에 압도되어 황홀해져 있는 동안에 배가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배가 홀연히 저희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는 말을 ‘제자들이 그 다음부터는 열심히 힘을 내서 노를 저어 갔다’는 말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생각하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요컨대 여기에도 일련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저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배가 저절로 홀연히 가려던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표적 이후의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기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행구절인 마태복음에 보면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걷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자 배에 있는 사람들 곧 제자들이 엎드려 절하면서 예수님께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 14:28-33). 그들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마태복음 14:33절에 보면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제자들이 오병이어 표적과 바다 위로 걸어오신 표적을 경험한 후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진일보 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갑자기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아무리 봐도 단순한 메시아가 아니다. 단순히 능력 많은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미미하지만 신성을 느낀 것입니다. ‘아!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저희들이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만 이런 사실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고백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표적과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병이어 표적과 바다 위로 걸어오신 표적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계시인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이 두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가?’하는 것을 더욱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떤 위대한 선지자로 활동하는 그런 분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신인 곧 사람이시요, 하나님이신 분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마음 가운데 예수님께 대한 정당한 바른 인식이 깊어져 가야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기적이라는 계시를 통해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는 고백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바람과 바다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고 두려워하며 경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두려움으로 오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이해할 때 이 표적을 통해 주시고자 하시는 계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같이 배를 타고 가시든지, 아니면 배를 타고 오시든지 하면 될 텐데 왜 이런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까? 제자들에게 자신의 본체를 계시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곧 바람과 바다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오병이어 표적을 경험하고 떡을 먹은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6:52).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자신의 신성을 계시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심을 통하여 무엇을 분리시키고자 하시는지를 봐야 합니다. 오병이어를 통하여 떡만 먹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두려움으로 다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통하여 두려움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떡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분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기 동생의 유산까지 다 가로챈 모양입니다. 그러자 그 동생이라는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의 형에게 말하여 재산을 나누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가 나를 너희의 재산이나 나누는 그런 재판관으로 세웠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삼가 탐심을 물리쳐라.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2:16-21절에 보면 한 어리석은 부자가 곡간에 곡식과 물건을 가득 쌓아놓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 사람에게 이 어리석은 부자 같이 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나오라는 것입니까? 영생의 문제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주님께 나옵니까? 왜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까? 우리도 무리들과 같이, 어리석은 부자 같이 썩는 양식을 구하기 위해 나오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주님의 두려움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실체 곧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따르는 무리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왜 예수님을 따르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이사야가 주님을 만났을 때 뭐라고 고백 했습니까? 이사야 6:5절에 보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죽은 사람처럼 엎드려 졌습니다. 요한계시록 1:17절에 보면 예수님의 품에 안겨 사랑받던 제자 요한도 예수님을 보고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자신의 현실적인 필요를 위하여 구하는 것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생과 무관한 종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곧 먹고 배부르고 병고침을 받고 따라 나선 자들이 영생의 양식이라는 주님의 살과 피를 말씀하시자 다 떠나가는 것처럼 자기 유익을 위한 종교생활에 그치는 것입니다.

병 고침을 보고, 오병이어 사건을 보고 빵문제 해결을 위해 자기들의 임금을 삼으려는 자들은 모두가 다 물러 갑니다. 그러나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풍랑보다 더 무서운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6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빵 문제가 아니라 영생을 말씀하시고 자신의 살과 피를 말씀하시자 그 수많은 무리와 많은 제자들이 떠나갔습니다. 이때 6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68절에 보면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무리들과 제자들 사이에 완전한 분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에서 떡을 얻어먹은 자들은 주님의 두려움을 맛보지 못하였습니다. 곧 그들은 예수님의 본체에 대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영생의 문턱에서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두려움을 맛본 자는 곧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맛보고 두려워한 제자들은 빵 문제를 뛰어 넘어 영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보면 제자들도 십자가 앞에서 다 부인하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고 나자 이들이 고백한 그 영생의 말씀을 위하여 그들은 두려움 없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관원들 앞에서 두려워하였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전하지 말라는 그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의 말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 듣는 것 중에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병이어 표적과 바다 위를 걸어오신 표적을 통해 제자들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들에게도 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본체가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신앙을 고백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예수님을 인하여 영생을 얻게 하시고, 이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자들이 되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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