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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6:22-40
성경본문내용 (22)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23)(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24)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25)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2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7)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28)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30)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31)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4)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6)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38)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10-01-31

2010년 1월 31일 설교

 

하나님의 일


요한복음 6:22-40

우리는 요한복음 6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예수님의 오병이어 표적과 바다 위로 걸어오신 표적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표적들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자기를 믿는 자들 곧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의 살과 피를 통해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 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바람과 바다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표적들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신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표적들은 제자들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6:22-71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표적을 보이신 후 이튿날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말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표적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며 책망하시고,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도록 초청하시는 말씀(22-40)과 둘째는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 계시하고자 하시는 그 본 의미에 대한 설명(41-59),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의미를 듣고 어렵다고 하며 예수님을 떠나는 무리들과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하며 신앙고백을 하는 제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60-71). 오늘은 22-40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22-25절을 보면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병이어 표적을 행하신 이튿날이었습니다. 전날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표적을 행하셨던 그 해변 가에는 배가 한 척 뿐이었고, 그 배에 제자들이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지 않고 홀로 산으로 가시는 것을 봤습니다. 그들은 흩어져서 밤을 지낸 후 다음날 다시 오병이어 표적이 행하여졌던 그 장소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배들이 도착하자 군중들 중 몇 사람이 그 배들에 올라 제자들이 갔던 곳을 향하여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알지 못했고 단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지 않은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아직까지 예수님께서는 산에 계실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 제자들에게 와 계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배는 제자들이 타고 간 배 한척 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거기와 계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예수님께서 언제, 어떻게 거기에 와 계시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라면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26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여기 오셨느냐고 묻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호기심을 무시하시고 그 마음에 두고 있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사용하셨던 용법 곧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은 ‘너희가 표적을 보았기 때문에 나를 찾는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 표적을 봤잖아요?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표적을 보고 찾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오병이어를 통해 기적이 행해지고 권능이 발하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 표적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관심을 드러내어 지적하시면서 책망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오병이어 표적을 보고 그 표적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다 임금을 삼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떡을 먹고자 부랴부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책망하신 후 놀라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27절에 보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의 의미에는 관심이 없고 떡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부여 받았고, 하나님을부터 인치심을 받았음을 반복해서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시니 당장 무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28절에 보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일이라고 말씀하신데 주목했습니다. 주님은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썩는 양식을 최고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삶을 단지 물질에만 두지 말고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실 수 있는 지고한 일 곧 영생하도록 있는 일을 위하여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일이라는 단어를 취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했던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당신의 뜻을 알겠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도덕적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고 율법을 지키라는 뜻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자기들의 행위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질문에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제시만 해주시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다라고 말씀만 해 주시면 얼마든지 해 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유대인들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니까 ‘그게 어떤 일입니까?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지요’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9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라고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이며,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은 다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어 줄께, 내가 믿어 주면 되지 않느냐 하는 자신의 결단과 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곧 예수를 믿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마치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되는데 왜 못 믿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전도 프로그램이 사람의 일로, 사람의 의지적인 결단으로 되는 일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예수를 믿게하고 교회의 부흥을 마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냥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전도 집회가 이루어집니다. 온갖 세상적인 전도 방법이 다 동원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람의 욕심을 따라 교인을 모아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고 상주고 받으며 전도 간증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자랑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 됩니까? 전도뿐만 아니라 헌상을 하든, 예배당을 건축하든,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성령의 은사로 주어진 것입니다. 은사란 은혜로운 선물이기에 누구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주신 분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주신 분만 높이기 위하여 은사가 주어진 것인데 오늘날 사람들은 은사를 자랑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사람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하자 사람들이 무엇을 요구합니까? 30-31절에 보면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고 믿는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보는 것은 보는 것일 뿐입니다. 믿음이란 보지 않고도 확신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3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전날 배불리 먹었던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의 속뜻이 무엇입니까? ‘그래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였습니다. 당신도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곧 그들은 그 표적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가 먹였다고 분명히 말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2-33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린 떡은 곧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고 하심으로 모세와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리고 58절에 보면 예수님은 그 떡을 먹은 조상들은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는 어제 행하셨던 표적 곧 오병이어 표적의 진정한 의미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3절을 다시 보면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러면 이 말을 들은 그들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34절에 보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떡을 달라고 하였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고서 한 것이 아닙니다. 35-36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먹은 만나는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었지만 가장 깊은 내면의 필요를 채워주지는 못했습니다. 곧 만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그 만나를 먹은 조상들은 다 죽었습니다(58).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떡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십자가에 달려 살이 찢기시고 피를 쏟으심으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로 오는 자는, 곧 자기를 믿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조상들은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생명의 떡되신 자신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고, 예수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선언하셨지만 그들은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나를 믿는 것이 영생의 길이고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하여도 그들이 안 믿더라는 것이 바로 성경의 증거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죄가 무엇인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죄에 대하여 책망을 하시는데 죄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요한복음 16:7-11절에 보면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서라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들이 죄의 권세에 사로 잡혀 있기에 스스로의 힘과 능력과 결단으로는 결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을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사람이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까? 37-40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이 친히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내시는 자를 사람이 절대로 믿지 못하기에 어떤 사람만 아들에게 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아무나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선택하시고 보내어 주시는 자만 예수님께로 오는 것이고, 그들을 예수님께서는 결코 내어 쫓아내지 아니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이 이러한 일을 하시는 것은 자기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보내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마지막 날에 다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누구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살려 내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시고 한 명도 실수 없이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오늘도 성령을 보내시어 전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손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고전 9:16). 전적으로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사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우리가 자신의 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오해한 무리들과 달리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임을 알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시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게 하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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