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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10:1-18
성경본문내용 (1)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2)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3)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5)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6)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7)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8)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9)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10)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3)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14)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15)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16)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17)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18)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강설날짜 2012-11-18

2012년 11월 18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24강


그리스도의 한 영원한 제사


말씀 : 히 10:1-18


인간의 최대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아담 이래로 인간은 죄 아래서 태어나고,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가 당장에는 살아있지만 결국에는 말라 죽게 되듯이, 그리고 물에서 나온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당분간은 살아있지만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게 되듯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된 인간은 근본 사망 아래서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 이 육신이 죽고, 나중에는 둘째 사망 곧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모든 인생들이 처한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최대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가 무엇이어야 합니까? 직장, 돈, 건강, 결혼, 자녀가 우리의 주된 관심사입니까? 아닙니다. 다 부차적인 것이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된 인생이 고쳐져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과제입니다. 물 밖으로 나간 물고기가 다시 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듯이, 이것이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죄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을 향해 진노하시고,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죄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지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고쳐 창조목적대로 살아가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구약의 율법과 제사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에도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선포하고 죄용서가 선포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상의 용서이지, 본질적으로 예배자의 양심을 정결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형이고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1)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리고 짐승의 제사가 예배자의 양심을 정결하게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근거는 그것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2)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만일 동물의 희생 제사를 통해 진정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것이 사람의 양심을 근본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면, 단번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과 제한 없는 친교를 누렸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들은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과 제한 없는 친교를 누리지 못했고, 또 그 제사를 계속해서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동물의 제사가 죄 사함과 관련하여 실질적인 효과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죄를 없이하지는 못하지만,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3)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구약에는 다섯 가지 제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소제를 제외한 모든 제사는 동물제사인데, 이 4가지 동물제사들은 어느 부위를 태우고, 나머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또 피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점만 다르지 나머지 다른 제사 드리는 순서는 거의 다 동일합니다. 그것은 먼저 자신의 죄를 대속할 제물을 끌고 오면, 제일 먼저 안수를 합니다. 안수하지 않으면 동물이고 안수해야 제물이 됩니다. 그리고 동물제사의 철칙은 제사장이 안수하고 제사장이 잡는 것이 아니라, 안수하고, 잡고, 각을 뜨는 모든 과정을 다 제물을 가져온 죄인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안수할 때는 지성소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양손을 그 제물의 머리에 힘 있게 내리누르면서 안수하는데, 이렇게 안수하면, 자신의 죄가 그 제물에게로 전가됩니다. 그러고 나서 제사장이 칼을 주면, 그 칼을 가지고서 먼저 제물의 목을 찔러 죽입니다. 사람들 중에 피를 보는 것을 천성적으로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섭다고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본인이 해야 합니다. 비록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 하더라도, 아무 잘못도 없는 짐승을, 그것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짐승의 목에 칼을 찔러 넣는 것이 그냥 무에 칼 찔러 넣듯이 아무 감정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자주 하면 익숙해지겠지만, 만일 처음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손 떨리고 두려운 순간이겠습니까? 더욱이 그 당시는 가축이 귀했고, 사람들은 한 마리 한 마리를 애정을 가지고서 키웠기 때문에 자기가 애정을 가지고 키운 귀한 짐승을 자기 손으로 잔인하게 목을 찔러 죽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찌르면 그냥 조용하게 죽는 것이 아닙니다. 목을 칼로 베면 어떻게 됩니까? 찌르는 순간 피가 콱 하고 뿜어져 나오게 되고, 짐승은 순간 움찔하면서 고통하며 울부짖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에서 피가 왈칵왈칵 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죠. 그렇게 비참하게 피를 쏟고 힘없이 쓰려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으면 그것을 옆 자리로 옮겨서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뜹니다. 이것도 역시 죄인 본인이 다 하는 것입니다. 각을 뜬다는 것은 토막토막을 내는 것입니다. 송아지인 경우는 24토막, 양이나 염소일 경우는 12토막을 냅니다. 그리고 내장은 따로 꺼내어서 물로 씻어냅니다. 그렇게 토막을 다 내고 내장을 파헤치고 나면, 온 주변이 피로 철철 흘러넘치게 되고, 제사 지내는 본인도 옷이나 손, 얼굴 할 것 없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각난 제물을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토막 난 제물은 번제단의 불에 의해서 완전히 불태워집니다. 그 불은 자신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제물을 완전히 남김없이 불태워 드리는 것으로 제사가 끝이 납니다. 그렇게 죽이고 각을 뜨고 불로 모두 태우면서,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구약의 백성들이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아마도 구약의 백성들은 그 상황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보면서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비록 짐승이기는 하지만, 나의 죄의 결과가 이러한 비참한 죽음을 가져왔다는 것을 이 제사 과정을 통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의 계명을 통해서만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것을 통해서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은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백성들은 이 제사를 드리면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이 결국은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서 오셔서 이처럼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것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택함 받은 백성들은 그분의 이름이 예수님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그러나 그를 향한 신앙은 우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구약의 백성들도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렸던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신약의 백성들이 누리는 것만큼 분명하거나 풍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해서 이 두 가지를 목적하신 것입니다. 즉 자기가 죽을 죄인임을 깨닫는 것, 그리고 장차오실 대속의 수단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제사제도를 주신 것은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동물의 피가 사람의 죄를 결코 없이 하지 못합니다.


(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것을 구약의 백성들도 진작에 알았습니다. 정말 택함 받은 구약의 모든 경건한 백성들은 그 동물의 희생이 자기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시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듣고 쓴 시입니다.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이제 죄를 범했으니, 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짐승제사를 드려야겠다고 말합니까?


(16)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17)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6-17)


다윗도 짐승의 제사가 근본적인 이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죄를 사합니까?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아니라, 장차오실 메시아, 곧 구속의 수단을 바라보면서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약의 모든 경건한 백성들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제사제도의 본질적인 목적은 잃어버리고 그것을 변질시키고 악용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10)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17)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0-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아주 훌륭하게 잘 드렸습니다. 흠 없는 살진 소를 드렸고, 무수한 제물을 드렸습니다. 오늘날도 소 한 마리에 500만원이 넘어가는데, 그 당시는 얼마나 더 귀했겠습니까? 그 당시에 소 한 두 마리는 자신의 평생의 노후자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귀한 살진 황소를 아낌없이 하나님께 희생제사로 바쳤습니다. 그렇게 많은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싫어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제사 자체가 싫으실 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제사 드리라고 명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신 이유는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더 원하시고 천천의 수양보다도 공의와 인자 행하기를 더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제사는 전혀 쓸모없고, 순종만이 가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는, 자기가 죽을 죄인임을 알고, 장차 오실 구속의 수단을 바라봄으로써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어지는데, 그러한 은혜를 받은 자는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사와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죄에 대한 깨달음이나, 장차 오실 구속의 수단을 바라보는 믿음이나... 이런 것들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기가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내가 비싼 황소로 제사 드렸으니 자기는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제 하나님이 보상해주실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무언가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자기 공로를 쌓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거기는 자랑과 정죄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누구는 안 드렸지만, 나는 드린다. 누구는 비둘기 드렸지만, 나는 살진 최고급 황소로 드렸다. 나는 율법을 따라 의식을 잘 지키는 훌륭한 교인이고, 너는 아니다” 그러면서 종교 의식을 가지고서 자기를 치장하고 자랑하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삶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자의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니 싫어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역겨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문하시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악행을 버리고...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오직 이 길만이 그들의 주홍같이 붉은 죄가 양털같이 희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변론하여 죄사함 받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도 동물의 희생 제사가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5)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6)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7)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시편 40편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6)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7)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6-8)


원문과 많이 다르죠? 이것은 히브리어로 된 원문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이 히브리어로 된 맛소라 텍스트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을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70인경은 맛소라 텍스트에 약간의 해석을 가미하여 다르게 번역하였습니다. 물론 큰 문맥과 의미는 동일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히브리서 저자가 이 70인역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또 약간의 변형을 가해서 인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복잡해지지만... 어쨌든 히브리서 저자는 성령의 영감 가운데 그 시편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진정한 본의를 자유롭게 인용함으로써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시편 40편 6-8절 말씀이 바로 장차오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오시면서 바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아니하시고, 제물 전체를 불로 태워드리는 번제나 피를 뿌리는 속죄제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 자신의 몸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제물이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제물이었습니다. 그것을 성자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 성부 하나님의 뜻에 자원하여 순종하신 것입니다. 앞서서 동물의 제사를 기뻐 아니하시는 이유가 일차적으로는 그것이 근본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 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고도 남을 만한 무한한 가치를 가진 제물이셨고, 또한 그분은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었습니다. 7절에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루마리 책은 구약 전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한 대로 그대로 행하시고 사역하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4:49에 보면 가룟 유다가 병사를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9)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막 14:49)


예수님이 잡히셔서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를 성취하시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한 죄 사함과 거룩함을 얻게 되었고, 이제 옛 언약은 끝났고,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 한 것입니다.


(8)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9)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10)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그 보배로운 피가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깨끗하게 하고 그 양심을 정결하게 하여 단번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의로운 자로 서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이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복될 수 없는 단회적인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분의 제사가 반복될 수 없듯이, 그 제사의 효과인 “거룩하게 되어짐”도 반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거룩해졌다가 어떻게 잘못해서 그 거룩함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회복되야 하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번 거룩해진 자는 영원히 거룩합니다. 그것을 11절 이하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3)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여기에 구약의 제사장과 예수님 사이의 뚜렷한 대조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서서 섬겼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에는 의자가 없기 때문에, 종일 서서 일하였고, 볼 일이 다 끝났으면, 나가야 했습니다. 서서 일해야 했고, 반복해서 같은 제사를 드려야 했다는 것은 그의 사역이 죄를 없이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단번의 제사로 하늘 성소로 곧장 올라가셨고, 하늘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앉으셨다는 것은 곧 그분의 속죄를 위한 제사가 단번의 제사로 끝났고, 계속 앉아계신다는 것은 더 이상 할 일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번의 제사로 모든 죄문제를 해결하고 끝을 내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보혈을 우리 마음에 뿌려 적용하시는 천상사역을 계속하시지만, 어쨌든 자기를 드리는 속죄 제사는 단 한번으로 끝이 난 것입니다. 더욱이 앉아계시는데, 그 앉아계시는 자리는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는 자리입니다. 모든 인생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저주의 죽음을 당하시는 그 낮고 낮은 십자가 자리에서 모든 우주만물을 주관하고 원수들을 자기 발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왕의 자리로까지 높아지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를 위해 그렇게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고, 이제 우리를 위해 그렇게 높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가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14)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앞의 “거룩하게 된 자들”이라는 말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말은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하게 된 자들”은 현재분사수동태로서, 계속해서 거룩해져 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날마다 그 인격이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거룩해져가는 우리의 성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것은 10절에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완료형인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단번에 모든 죄를 사함 받아서 영원히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두 가지 측면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측면은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또한 나타납니다.


(15)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16)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17)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18)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언약의 축복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것인데, 그것은 두 가지 측면을 담고 있습니다. 즉 성령을 통해서 율법을 우리 마음에 새겨 그 율법을 순종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점차적으로 고쳐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살게 하는 점진적 성화를 말합니다. 그러나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거룩하게 하신 한 영단번의 성화를 말합니다. 이 둘의 차이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 13:10)


목욕은 영단번의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목욕한 자는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발은 날마다 씻어서 점점 깨끗해져 가야 합니다. 이것은 점진적으로 우리가 성화 되어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성화론의 핵심이고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 받았다고 하는데, 주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데, 양심이 정결케 되었다는데, 실질적으로는 늘 죄 사함의 확신이 없고,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고, 양심에는 죄책감으로 자유함이 없는 이유는 많은 경우가 바로 이 부분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깨닫는 것이 복음의 진수를 깨닫는 것과 다름 아닌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완전히 제거하셔서 우리를 거룩한 천사처럼 만들어놓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이해해버리면, 큰 문제가 생기는데, 왜냐하면, 예수님 믿어도 그 안에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게 하셨다” 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 믿으면 우리가 “죄 없는,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천사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죄 사함이란 죄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는데, 죄는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죄는 죄책과 오염을 갖습니다. 죄책이란 죄의 책임 곧, 죄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의 대가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든지, 어떠한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든지, 그 모든 행실은 다 하나님의 책에 기록이 되어 있고, 마지막 때에 그 행한 대로 하나님이 갚으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어떠한 작은 죄든지, 결국 그 죄의 책임은 죽임을 당하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들이 지고 있는 죄책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범죄로 우리에게는 죄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의 오염도 있습니다. 죄의 오염이란 근본 우리 마음이 부패하여서, 어떠한 선한 것도 없고, 오직 모든 추악하고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한 악의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부패한 본성에서부터 모든 죄악 된 행실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다 죄가 되고, 그야말로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오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 모두를 동시에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는 죄책을 제거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에서 구원하시고, 그리고 우리의 부패한 본성을 고쳐 새롭게 하시는 두 가지 일을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 영원히 거룩하게 하셨다, 목욕했다”는 말은 바로 우리의 죄책을 제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서 죄 없다고,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칭의”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죄책을 제거해서 죄인 된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그 사람을 다시 살려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영단번의 사건이고 반복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 앞에 무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떠한 장벽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이지, 내가 천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롭다 함을 받았어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 된 본성이 남아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거룩한 성령의 소욕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대적하여 자기 뜻대로 살고 싶은 육체의 소욕도 있습니다. 이 둘이 항상 싸워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인 갈등이 있고, 또 때로는 육체의 소욕에 넘어져서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언약 백성의 놀라운 특권은 그런 범죄함으로 인해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거나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잃어버렸다거나 할 수 없고, 죄 있는 모습 그대로, 거룩하지 않고 부정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고, 주님을 부를 수 있고, 주님의 용서와 도우심의 은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책을 모두 제거하셔서 우리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대신 죽으셔서 모든 죄의 값을 다 치루셨기 때문에 지금 현재 내가 범죄한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 더 이상 그 책임을 묻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 번연은 절망 속에서 고뇌하는 자들을 향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죄인아, 너는 네 죄와 연약성 때문에 내가 네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 아들이 내 곁에 있는 것을 보아라. 나는 그를 보지 너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그를 기뻐하는 것에 따라서 너를 다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 앞에서 고뇌하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하면서 탄식할 때에도, 우리에게는 피할 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보면 소망이 없지만, 주님이 나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서 죄 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또 나아가면 언제든지 우리를 긍휼과 자비로 용납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죄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축복의 진수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히브리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자 하는 복음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우리를 죄의 오염으로부터도 구원해주십니다. 점진적 성화라고 하는 것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점진적 성화는 앞에서 이야기한 영단번의 성화(칭의)에 토대를 두고 있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 연결고리는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 비참하게 죽으시고 피를 쏟으신 그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할 때에,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지은 죄가 주님을 그렇게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죽어 마땅한 죄인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자신이 직접 동물을 잡고 각을 뜨면서 그리고 불로 태워드리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느끼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처럼, 주님은 그보다 더 얼마나 잔인하게 죽으셨습니까?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보고 그 앞에서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죽을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날 위해 대신 죽으셔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어주신 그 주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알 때, 우리는 그 은혜를 망각하고 내 육신의 정욕을 좇아 내 마음대로 살았던 지난날을 비로소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 그 십자가가 마치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체험되어져서, 마치 내가 그분과 함께 못 박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함으로써. 거기서 그동안 버릴 수 없었던 죄에 대한 사랑이 깨트려지고, 자신은 나름대로 괜찮은 자라고 자부했던 내 모든 자존심과 명예도 깨트려지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다 깨트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이 그 속에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마음에 뿌려 우리를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성화의 사역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율법을 새겨 우리를 고쳐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게 하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책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죄의 오염에서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모두 이 한 영원한 제사인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처음 예수님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어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늘 붙잡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의 신앙의 요체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단 하루라도 십자가의 은혜 아래서 살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당만 밟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실하게 교회도 나오고, 헌금도 하고, 여러 가지 모임에도 참석하지만, 십자가 은혜를 모른 채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해서 차가운 가슴으로 앉아 있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이렇게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금석이 있는데, 그것은 내 안에 감사와 용서(사랑)가 있는가? 아니면 자랑과 정죄, 판단이 있는가? 하는 것을 보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감사가 있습니까? 만일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 아니하신 제사들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기뻐 아니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우리에게 비참한 일들만 생길 것이고, 사는 날 동안 좋은 날 보기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렇게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서 살게 되어 진다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사름에 처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보좌 우편에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죽을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고 이런 나를 대신해서 죽으셔서 나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의 죄를 죽이고 자원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제사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그 복음 진리위에 굳게 세워주셔서 십자가의 은혜로 늘 승리하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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