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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전 1:12-17
성경본문내용 (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13)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6)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17)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강설날짜 2013-10-20

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말씀:디모데전서 1:12-17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말씀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교회에 머물게 한 이유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교훈을 말하는 자들과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그렇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교훈이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는 교훈들을 말하는 것으로 율법주의를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런 다른 교훈들에 대하여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엄히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자신이 증거 한 복음은 누구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서 된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본 11절 말씀을 보면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증거 한 교훈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의 복음을 자신이 증거 하게 된 것은 결단코 자신이 의롭다거나 무슨 자격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 신기하고 특별한 것을 가르치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것을 배우고 알았는가 하면서 의아해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특별함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받아서 증거 하는 일에 자신을 전혀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일부러 겸손하여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랍기 때문에 자신이 복음을 받은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은혜 받을 만한 자가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받은 것은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능하게 하심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바울이 사울일 때에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고, 구약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그를 사용하였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잘 준비하자고 합니다. 자신이 준비 되어 있어야 하나님께서 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 자신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악이었고 배설물이었다고 합니다. 빌립보서 3:7-9절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을 받은 것은 주님께서 능하게 하셨고 충성 되이 여기셔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셔서 내가 맡은 일을 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그분을 섬기는 이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전하는 이런 직분을 맡은 것은 자신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맡은 것이라면 자기 자랑이 있을 수 있지만 맡을 수 없는 자를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오직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어떤 직분을 받았든지 간에 그 직분을 자신이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맡은 것으로 안다면 감사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자기 자랑과 자기 의가 나올 것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너희가 나를 무엇으로 알고 이렇게 하는가 하면서 화를 내거나 책망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목회자들에게 특히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직분을 맡았든지 그 직분을 맡은 자들은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직분을 맡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직분을 맡은 것이 우리 자신에게 그 직분을 맡을 만한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오직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올 뿐인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 자신이 이러한 직분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인하여 이런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신의 경력과 이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력과 이력으로 치장을 합니다. 부끄러운 부분은 할 수만 있으면 숨기고 좋은 면은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함과 악함과 죄인 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22:4-5절에도 보면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사도행전 22:19-20절을 보면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6:9-12절에도 보면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얼마나 훼방하고 핍박하였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할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열심이 얼마나 특별했든지 외국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 한 것입니다.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고 죽일 때에 가편에 투표하였습니다. 모든 회당에서 형벌하여 강제로 예수를 모독하게 하는 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메섹까지 원정을 갔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긍휼을 입은 까닭은 알지 못하고 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다시 보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알지 못하고 하였다고 해서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기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고 했습니다.

 

15절을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합니다. 이 말은 믿음직하다는 것입니다. 신실하다,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인을 구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기에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괴수라는 말은 우두머리라는 말입니다. 곧 바울 자신이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가 얼마나 복이 있는 자 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할 수만 있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 아니라면 나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 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울도 전에는 자기가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3:4-6절에 보면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그러한 자기 의에 대한 자랑이 예수님을 죽인 것임을 알고 의인을 구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려고 오셨다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에는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죄를 지을까봐 조심하고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혹시나 율법을 어기지나 않을까 하면서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조금만 비틀해도 큰일 나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율법에 어긋나는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들을 보니 모두 율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저런 이단들을 가만히 두면 안 되겠다고 잡으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자세와 태도가 이미 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죄를 짓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쓴 사람은 죄인이 되고 세리와 창기처럼 대놓고 죄를 지은 사람은 용서해 주시는 그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음껏 죄나 짓고 살자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바울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작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죄라는 것을 인간들의 도덕적인 기준으로 죄다 아니다, 선이다 악이다고 결정하게 된 것 자체가 죄 아래 팔린 곧 죄의 권세 아래 들어 있는 죄인의 결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스스로 정하여 놓은 선이다 악이다 하는 기준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드신 인간은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되어야 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선과 악의 결정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간은 선과 악의 결정권을 자기에게 두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사단의 유혹이 무엇이었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 먹으면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창 3:5). 이런 사단의 유혹을 받은 인간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드디어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선과 악의 결정권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담은 자기 죄를 하와에게, 하와는 자기 죄를 뱀에게 전가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 그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3:12절에 보면 아담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아담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작은 실수부터 큰 잘못과 악하다는 일에 있어서까지 우리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의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과 죄를 인정하면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오는 것만을 고려하여 부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선과 악을 잘 조정하여 행할 수 있다는 그 자존심이 무너졌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간에 잘못을 지적 당하면 당장 방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신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행하는 일에 대하여서는 언제나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하는 일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예로 들어 봅시다. 다윗이 충성된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세워 죽였을 때 그가 이것을 죄로 압니까? 다윗은 죄인 줄 몰랐습니다. 이것은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기에 자기 백성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고대 왕국에서는 예사로 있었던 일입니다. 왕은 자신의 말이 곧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다윗에게도 그대로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내어야 하는데 자기가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는 세상의 왕으로 행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을 보내 책망을 합니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나단이 다윗왕에게 와서 비유로 그의 죄를 지적합니다.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였습니다.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많고 가난한 자는 작은 암양새끼 한마리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자 집에 손님이 왔는데 그 부자는 자기 집의 양과 소를 잡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한마리 뿐인 암양새끼를 빼앗아 대접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분노하였습니다. 그런 악한 놈이 어디에 있느냐고 당장 쳐 죽여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오.’ 다윗은 이 지적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인정하고서 회개를 합니다. 그러한 죄의 인정과 고백이 바로 시편 51편인데 놀라운 것은 8절에 나타납니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시 51:8). 정말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하여 죄 가운데 살았음을 인정하면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해 달라 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이 죄인인데 자기 때문에 꺾어진 뼈가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바로 우리아가 희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미쁘도다고 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은 주님의 구원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복음 중에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자는 오히려 기분이 나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어떻게 보고, 내가 스스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을 수도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죄인이라면 말이 안 되지! 그러면 그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의 죄를 자신이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당한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죄인 된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자신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은혜가 임한 자는 자신이 얼마나 처절한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한 자는 오직 우리 주님 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같은 사람이 주님의 긍휼을 입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심으로 장차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 같이 죄인 중의 괴수가 구원을 받는다면 어떤 죄인인들 구원하시지 못할 인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다 끊고 나서, 술 담배 다 끊고 나서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 발견된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함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17절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죄인을 주님께서 십자가로 용서하여 주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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