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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5:35-43
성경본문내용 (35)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36)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37)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38)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39)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40)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41)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42)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43)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16-01-31

2016년 마가복음 공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5:35-4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죽어 가는 딸을 살리시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쳐 주신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믿음으로 자신에게 나아와서 뒤에서 몰래 자신의 옷에 손을 댄 혈루증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 여인의 병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참된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자신이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내어 쫓아 주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 많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가 되심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이야기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주시는 사건입니다. 35절을 보면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열두 해를 혈루증 앓던 여자와 말씀하고 계실 때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당신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며 선생을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니이까”라는 말은 이제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이 오시는 수고를 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능력 많으신 선생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이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낙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36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온 사람들이 야이로에게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야이로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낙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8:50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야이로는 죽어가는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아와 그의 발 아래 엎드려 많이 간구했습니다(22-23). 그는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야이로는 이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딸의 몸에 손을 얻어 안수하시면 능히 살려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나아와 자기 집에 오셔서 딸의 몸에 손을 얻어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야이로는 자기 딸이 아직 목숨이 붙어있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능히 자기 딸을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딸이 죽었다고 소식을 듣고서는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야이로는 아픈 것과 죽은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을 믿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낙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를 따라서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사람만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38절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훤화하고 울며 심히 통곡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대개 상을 당하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훤화하는 사람 두 명과 울어 주는 여인 한 사람만은 반드시 돈을 주고 사서 훤화하고 울게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훤화’는 피리 부는 것을 의미합니다(막 9:23). 그리고 울어 주는 일을 하는 여인은 피리 소리에 맞추어서 슬픈 노래를 부르며 애곡하는 여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야이로는 장로이고 회당장이며 그 마을에서 유지였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훤화하며 심히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그의 온 집이 훤화하며 통곡하며 우는 소리로 가득하였습니다. 슬픔과 죽음의 권세가 그의 집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훤화하며 통곡하며 우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다 집에서 내어 보내시고 죽은 아이의 부모와 자기와 함께한 세 제자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41절에 보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이 말씀은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절에 보면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그때 그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소녀의 부모와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고 또 놀라워하였습니다. 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시켰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이 놀라운 일을 숨기셨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일이 메시아의 표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에 기초해서 메시아가 오면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저는 자는 사슴과 같이 뛰며, 벙어리의 혀는 풀려 노래할 것이며(사 35장),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이라(사 9장)는 그런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런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이심이 알려지는 것을 막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자신이 메시아이심이 알려지는 것을 막고자 하셨을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오해를 염려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군사적인 승리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 자신은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이기 때문에 군사적인 메시아로 오해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메시아의 표적을 숨기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엄히 경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져나갔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9:26절을 보면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는 이적을 행하신 것은 야이로가 예수님께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하는 간청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간청을 들어 주시는 것을 통해서 ‘자기 계시’의 방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곧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이르러 그의 딸이 죽은 것을 인하여 훤화하며 통곡하며 우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39).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신 것은 진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것처럼 잔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아이는 분명히 죽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던 사람들이 와서 그의 딸이 죽었다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8:49-56절에도 보면 이 아이가 죽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대.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눅 8:49-56). 여기서도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고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아이의 영이 이미 죽은 아이에게서 떠났다가 예수님께서 아이를 다시 살리시는 말씀을 하시자 그 영이 죽은 아이에게로 돌아와서 살아났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는 진짜 죽었습니다. 그 아이는 완전히 죽은 자로 있다가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심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알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것을 계기로 그의 부모와 거기에 모여 있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죽음에 대해 예수님께서 갖고 계신 죽음의 의미를 갖게 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나타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죽음! 이것은 영과 육의 이별이요, 육은 이 세상에서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현세에서 내세로 옮겨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장례식을 ‘영결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죽은 자를 ‘영면에 들어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나사로가 ‘영원히 잠들었다’는 뜻에서 그런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참조. 요 11장). 더 이상 산 사람처럼 활동하지 않으며, 그래서 이제는 세상 고통, 불행,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에서 실은 유족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잔다’고 하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영결이나 영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죽은 자는 마치 현상 세계에서 잠을 자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밤에 죽은 듯이 잠을 자지만 아침이 되면 깨어 일어나 활동을 합니다. 이와 같이 죽은 자는 죽은 자처럼 보일 뿐이지 사실은 안식의 상태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그것은 잠깐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결이나 영면은 없습니다. 죽음은 아침에 일어나 다시 활동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삶의 출발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형벌로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참조. 요 3:16, 10:28).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곧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런 자의 처한 형편을 구약에서는 음부로, 신약에서는 지옥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삽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 참으로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활동하며 사는 생명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날이 오기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죽은 것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죽음을 겪어야 하고 그래서 그것에 의한 새 삶을 갖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생명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주 안에서 자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곧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회당장 야이로로 하여금 이 예수님을 믿어 생명 가운데 있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고자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생명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멸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죄의 권세가, 마귀의 권세가, 죽음의 권세가 우리의 생명을 끌어내리도록 가만히 놔두질 않습니다. 예수님은 또 요한복음 11:2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하셨습니다(요 11:11).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잠든 나사로를 깨워 일으키는 것에 대한 이적으로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제 앞으로 얼마 후면 모든 사람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는 일을 하실 것에 대한 예언적인 사역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0). 이 예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습니다(고전 15:22).

 

회당장 야이로와 그 집에 모여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이 이적을 행하신 것에서 그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내쫓아 주시는 능력 많으신 사람이 아니라 부활의 주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또 그 소문을 듣는 온 땅의 사람들이 그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죽은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곧 ‘일어나라’고 말씀하심으로 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을 고쳐 주신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죄를 사해 주시는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신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의 주가 되심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의하면 죽은 사람의 몸에 손을 대는 자는 칠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민 19:11). 또한 시체에 손을 대고 자신을 정결케 하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집니다. 민수기 19:13절을 보면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뛰어 넘어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이것은 소녀가 죽지 않고 잔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율법의 관점에서 볼 때는 예수님께서 부정하게 되는 것을 감수하고 손을 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시자마자 그가 곧 살아났습니다. 율법에는 시체의 부정을 없애서 살리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율법을 통해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율법이 부정의 전염을 막는 정도에 그칠 때 믿음은 부정한 것까지도 정결케 만드는 회복에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정을 감수하고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살리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이방 땅에서의 이 이적들의 역사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새 출애굽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다른 나라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되는 차원 이상의 궁극적인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이 쫓겨나고, 질병이 치유가 되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 표적들을 통해서 이러한 궁극적인 구원으로서의 새 출애굽이 자신을 통해서 발생하고 있으며, 또한 발생할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적들은 또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새 출애굽은 부정을 제거하고 정결함을 회복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불결한 영으로부터 사람을 회복하고, 혈루증과 같은 불결한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치유하여 정결하게 하며, 불결한 시체를 소생시켜 정결한 몸으로 만들어 정결을 회복시키십니다. 불결을 제거하고 정결을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믿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시고, 혈루증 여인을 고치시며,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들 가운데 새 출애굽의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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