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69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6:30-44
성경본문내용 (30)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31)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32)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33)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35)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37)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38)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39)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40)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42)다 배불리 먹고(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44)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강설날짜 2016-02-21

2016년 마가복음 공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6:30-44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도 여행 보내시는 사건을 살펴봤습니다(막 6:7-13).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전도 여행을 떠났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전도 여행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께 모여서 전도 여행 중에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였습니다. 그들은 첫 전도 여행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전하였던 것을 아마 흥분이 되어서 고하였을 것입니다. 이에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전도 여행으로 인해 몹시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 여행에 지친 제자들이 그곳에서는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이에 제자들은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제자들이 간 그 한적한 곳이란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9:10절을 보면 갈릴리 바다 건너편 벳새다라고 하는 동네에 있는 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33절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고 모든 고을로부터 걸어서 제자들보다 먼저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벳새다까지는 뱃길로는 약 6.4㎞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걸어서 돌아가게 되면 약 16㎞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온 예수님과 제자들보다 걸어서 온 많은 무리들이 먼저 도착해서 제자들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본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습니까?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만 언급되고 있지만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4:14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여든 큰 무리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해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 있는 병자들도 고쳐 주셨습니다.

 

35-36절을 보면 때가 저물어 가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무리를 두루 촌과 마을로 보내어 무엇을 사먹게 하자”라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7a절을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마을로 보내어서 무엇을 사먹게 하고자 제안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의도가 말씀되어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5-6절을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제자들을 시험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라왔던 많은 사람들도 그것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시험코자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7b절을 보면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병행구절인 요한복음 6:7절에 보면 빌립은 사람들에게 배불리는 못 먹고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최소한 이백 데나리온의 돈은 있어야 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성년 남자의 하루 일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화폐로 환산하면 일당 5만원으로 계산해도 몰려온 무리를 조금씩 먹게 하고자 하더라도 1000만원의 큰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수중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제자들의 형편을 볼 때 그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하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알아보고 대답하기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39-40절에 보면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잔디 위에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았습니다. 41절에 보면 이에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 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였습니다.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44절을 보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조각과 물고기를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거두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에 제자들을 시험코자 하심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좇아 나온 많은 사람들의 상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았습니다. 이런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게 하는 것을 통해서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어떤 믿음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를 깨달아 알게 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을 때 지극히 육적인 생각의 판단과 방법으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사람이 사는 생명은 떡과 이것을 구할 수 있는 돈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것은 이것을 통해 사람들이 먹을 양식이 없는 빈 들에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믿고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면 “우리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니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배불리 먹여 살리실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푸신 오병이어의 이적이 지닌 진정한 의미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35절에 보면 오병이어 표적을 보여 주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이 떡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다만 여호와만을 섬기라’는데 있었습니다. 신명기 8:1-6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그들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40년 동안 한 벌의 옷으로 살게 하고 한 켤레의 신발로 지내게 한 것은 모두가 “너희는 다만 여호와만을 섬기라”는데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이제 그들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이곳 빈들에서 다시 한번 동일한 사건을 반복하여 행하심으로써 다시 알게 하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떡을 배불리 먹이시고 고기로 배를 채워주셨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자다가도 이렇게 떡과 고기가 주어진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잘 보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 빈들에 있었던 큰 무리를 이룬 유대인들이 누구로 말미암아서 배불리 양식을 먹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들이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알고서 다만 그분만을 섬길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광야의 40년이나 갈릴리 바다 건너편의 빈들이나 이 모두는 우리들의 마음을 낮추시는데 있습니다. 무엇에 말입니까? 이스라엘의 고집스런 마음을 꺾으실 때에 그들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순종할 때 만나는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주어졌습니다. 모자라지도 않고 남음도 없이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으로 말입니다. 그와 같이 오병이어의 이적은 우리에게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구약에서의 광야가 그러했듯이 신약에서의 빈들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신 것은 모두가 다 의도적으로 있게 하신 현장이었습니다. 즉 완악한 고집스런 마음을 꺾으시는 것으로 이 이적의 사건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에 있고, 해가 저물어 가는 빈들에 놓여 있는 그런 현실적인 상황을 당하게 될 때 우리의 육에서 가져지는 생각으로 방법을 찾게 되고 구하게 되는 것으로 몰아가는 마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하여 가르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여 사람은 다만 주님만으로 산다는 생각을 갖게 하실 때 육에서 나오는 생각을 꺾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에 있게 합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을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새 출애굽의 이야기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새 출애굽을 가져 오시는 분 곧 메시아라는 표적입니다. 오병이어 표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표적으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 표적을 새 출애굽의 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이 표적은 한적한 곳 곧 광야에서 발생하였습니다(32). 광야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고 40년 동안 살아간 곳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출애굽을 연상시키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서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게 된 것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아간 것을 기억나게 합니다.

 

광야로 나아온 큰 무리를 보고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마가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다’고 하였습니다(34). 이러한 묘사도 출애굽의 주제와 관련이 됩니다. 민수기 27:16-17절을 보면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묘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목자 역할을 하였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가 죽고 나면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지도자가 필요하므로 모세는 하나님께 그러한 사람을 세워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온 큰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같이 여기셨다는 묘사는 이 기도와 관련이 됩니다. 그리하여 광야에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먹이신 예수님은 목자 역할을 하시는 분으로서 새로운 모세임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모세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와 같이 여겨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가는 당시의 독자들에게 ‘목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40절에서 무리들을 백 명씩 오십 명씩 앉았다고 했는데 이것도 출애굽을 연상시킵니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백부장과 오십부장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8:25절을 보면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재덕이 겸전한 자를 빼서 그들로 백성의 두목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 부장을 삼으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 볼 때 출애굽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오십 명씩 백 명씩 무리를 짓고 오십부장과 백부장의 관리를 세워서 그들의 지도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광야를 배경으로 오십 명씩 백 명씩 앉아서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는 이 모습은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43절에 보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은 후에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였다고 했습니다.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연상시키는 숫자입니다. 12라는 숫자는 열두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을 연상시키는 상징적인 숫자이므로 12를 언급할 때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광야에는 열두 지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망한 후에 유대인들은 열두 지파의 회복을 기대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대는 구약 성경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곳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11:16절을 보면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 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 북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구약 성경 이곳저곳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기대한 새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회복을 포함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진 유대인들에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은 후에 남은 조각이 12바구니였다는 것은 새 출애굽이 발생하고 있다는 표적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마가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의도적으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과 유사한 기적이 구약에도 기술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4:42-44절을 보면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고 남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는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보면 이해 될 수 있습니다.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는 표적을 행한 엘리사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병이어로 최소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떡 1개로 최소한 1000명을 먹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떡 1개로 5명을 먹인 엘리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사 보다는 최소 200배 이상의 큰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엘리사 선지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한 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는 초자연적인 표적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이 나타난 시점은 제자들이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잠시 쉬기 위해 사람들이 없는 광야로 나갔을 때였습니다(31-3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잠시 쉬라고 말씀하셨지만 몰려온 큰 무리들 때문에 쉴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본의 아니게 휴가를 반납하고 무리를 섬기는 사역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나누어 준 떡과 물고기는 요한복음 6:9절에 의하면 한 아이가 자기가 먹기 위해 가지고 온 도시락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휴가도 반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몰려든 큰 무리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놀라운 표적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배부르고 충전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배고프고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지 않는 한적한 광야에서 새 출애굽의 놀라운 표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 새 출애굽을 이루시는 메시아이심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고 새 출애굽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39 [마가복음 9장] 잘못된 제자도를 교정하신 예수님 file 막 9:33-50 손재호 2016-05-22 1626
638 [마가복음 9장]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9:14-32 손재호 2016-05-15 1342
637 [마가복음 9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신 예수님 file 막 9:1-13 손재호 2016-05-08 1712
636 [마가복음 8장]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file 막 8:34-38 손재호 2016-05-01 2105
635 [마가복음 8장] 신앙 고백과 죽으심과 부활 예고 file 막 8:27-33 손재호 2016-04-24 1079
634 [마가복음 8장] 벳새다의 소경을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8:22-26 손재호 2016-04-17 1598
633 [마가복음 8장]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file 막 8:14-21 손재호 2016-04-10 1577
632 [마가복음 8장] 표적 구하는 바리새인을 책망하신 예수 file 막 8:11-13 손재호 2016-04-03 1492
631 [마가복음 8장]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file 막 8:1-10 손재호 2016-03-27 1959
630 [마가복음 7장]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7:31-37 손재호 2016-03-20 1663
629 [마가복음 7장] 수로보니게 여인을 축복하신 예수님 file 막 7:24-30 손재호 2016-03-13 1803
628 [마가복음 7장] 장로의 유전을 쫓는 것을 책망하신 예수 file 막 7:1-23 손재호 2016-03-06 2262
627 [마가복음 6장] 물 위로 걸어서 오신 예수님 file 막 6:45-56 손재호 2016-02-28 1586
» [마가복음 6장]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file 막 6:30-44 손재호 2016-02-21 1691
625 [마가복음 6장] 열두 제자를 전도여행 보내신 예수님 file 막 6:7-29 손재호 2016-02-14 1828
624 [마가복음 6장]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예수님 file 막 6:1-6 손재호 2016-02-07 1804
623 [마가복음 5장]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file 막 5:35-43 손재호 2016-01-31 2280
622 [마가복음 5장]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5:21-34 손재호 2016-01-24 1772
621 [마가복음 5장] 거라사 광인을 고치신 예수님 file 막 5:1-20 손재호 2016-01-17 2713
620 [마가복음 4장]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file 막 4:35-41 손재호 2016-01-10 217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