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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2:41-44
성경본문내용 (41)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42)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43)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4)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강설날짜 2016-08-28

2016년 마가복음 공부


가난한 과부의 연보를 칭찬하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12:41-44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연보 궤 앞에 앉아서 사람들이 연보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가난한 과부의 연보를 칭찬하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심을 마치신 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앞서 외식하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가르치신 것(막 12:38-40)에 대한 상대적인 말씀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하신 말씀과 연관해서 봐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지난 시간에 잠시 살펴 본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하신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38-40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즐거이 말씀을 듣던 무리들에게 공개적으로 종교지도자들 곧 서기관들을 비난하셨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마태는 이들을 비난 하는 일에 한 장 전체를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주저하지 않고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일곱 가지 화를 선언하신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그에 비해 서기관들에 관해 아주 짧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비판하셨습니다. 서기관들은 평상복이 아닌 예복을 입고 다니면서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고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인사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회당의 상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위해 예비 된 자리를 가리킵니다. 잔치의 상석은 일반적으로 주인 바로 옆자리를 가리킵니다. 거기에 앉은 사람들은 식사 중에도 특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서기관들의 행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을 즐기는 마음을 반영합니다. 서기관들은 율법 교사로서 자신들의 소명을 망각하고 단지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구하며 외식을 일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의 태도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특권과 존경을 기대하며 걸어 다닌 것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직위를 남용하였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과부와 날카롭게 대조 됩니다. 그들은 보수 없이 사역했기 때문에 독실한 유대인들의 환대에 의존하여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서기관들을 돕는 것은 경건한 행위로 간주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켰습니다. 이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는 것은 자신들의 지위를 남용하여 과부들의 재산을 횡령한 것을 말합니다. 당시 어떤 이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서기관들의 관리 아래 두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특별히 그들을 신뢰한 과부들이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법률가인 서기관들은 종종 과부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받은 혼인 지참금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어떤 서기관들은 신뢰 받는 자신들의 직위를 남용하여 부도덕하게 그 돈을 성전을 위한 헌금으로 드린 후에 자기 소유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가난한 과부의 재산까지 착취하여 자기 배를 채웠습니다. 신명기 27:19절을 보면 과부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신 27:19). 그러므로 과부의 가산을 삼킨 이들 서기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경건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거리에 서서 길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긴 기도는 그들이 사랑하는 주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자기가 특별히 거룩하다고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외식적인 경건의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지위와 인정과 존경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이런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서기관들의 외식을 비판하는 가르침을 주신 후에 오늘 본문에서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41-42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침을 마치신 후에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들이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이곳은 아마도 여인의 뜰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이 지역에는 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자들이 성전 세를 낼 수 있도록 7개의 궤가 있었고, 자유롭게 봉헌할 수 있도록 6개의 궤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뜰에서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사람들이 연보 궤에 헌금하는 장면을 지켜보셨습니다. 여러 부자들은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당시 연보는 동전으로 하였기 때문에 동전 소리에 따라서 얼마의 돈을 넣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연보를 자랑하는 자세로 연보 궤에 돈을 넣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 렙돈은 데나리온의 128분의 1에 해당합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으니까 두 렙돈은 하루 노동자 품삯의 64분의 1에 해당됩니다.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한다면 두 렙돈은 약 1000원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보신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43-44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과부의 자세를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과부의 이 연보를 통해서 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칠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이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3). 물론 돈의 액수로 따지면 이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가장 많은 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자들이 넣은 돈이 훨씬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넣은 것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44절을 다시 보면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 일부를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습니다. 돈의 액수로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도 안 되겠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가장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심지어 많은 연보를 한 부자들보다 더 많이 넣은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비록 그녀가 드린 예물은 금전적인 가치로 보면 가장 적은 것이었지만 희생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예물의 가치는 그 액수가 아니라 그것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면 이 가난한 과부가 어떻게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연보 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가난한 과부의 연보는 부자들이 한 연보와 대조되면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들과 비교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들도 성전에 들어가면서 연보 궤에 연보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풍족히 생활하는 넉넉한 형편 가운데서 얼마를 연보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 가운데서 얼마를 연보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연보하였다고 해서 결코 생활에 어떤 지장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성전의 연보 궤에 얼마의 돈을 넣었어도 남아 있는 많은 돈이 자기들의 생활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가난한 과부가 한 연보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자기가 가진 것 전부, 곧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이 과부는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당장 생활에 지장을 받습니다. 이 과부는 자기의 끼니를 해결해야 할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당장 먹지 못하고 굶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 과부에게 있어서의 연보는 목숨 곧 생명이 걸린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삶과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데서 나온 행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부의 행동은 자신의 생명과 삶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일까요? 헌금을 많이 하자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헌금해야 하는가 그 헌금하는 자세를 가리키고자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 주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침을 마치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의 위선과 외식을 조심하라고 하신 후에 주어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아주 의도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모든 독자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시는 것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가 어떠한 연보를 하였는지를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게 해주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로서 그들의 생명과 삶 전부를 맡길 수 있는 분이심을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에게 가진 믿음을 이러한 분 곧 하나님은 생명의 주로서 자신의 생명과 삶 전부를 맡길 수 있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과부의 연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한 것인 까닭에, 그래서 ‘믿음의 분량’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하여서 한 것인 까닭에, 그 과부가 한 연보는 부자들이 한 연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과부의 헌신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자 하셨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한 것입니다. 이 과부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헌금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음으로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였습니다. 이 과부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존하여 사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과 모든 독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위선과 외식을 일삼는 서기관들과 이 여인을 대조하신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의 연보는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연상케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스라엘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는 물론이고 이슬조차 전혀 내리지 않는 무서운 재앙으로 인해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사르밧 과부가 가지고 있던 식량이라고는 겨우 항아리 밑바닥에 깔려 있는 밀가루 한 움큼과 병에 묻은 기름 몇 방울뿐이었습니다. 그런 사르밧 과부는 이것으로나마 마지막으로 음식을 해먹고 죽고자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사르밧에 이른 선지자 엘리야가 그 과부를 찾아와서 물을 가져다 줄 것과 함께 떡도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르밧 과부는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중이었는지, 그리고 아합 왕이 이스라엘의 풍년을 위하여 베니게의 바알신을 모셔 들였으나 그 대가로 이스라엘과 베니게가 오랜 가뭄과 흉년에 시달리는 징벌을 받고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고 그 마지막 남은 것까지도 남기지 말고 다 사용하여서 먹을 떡을 만들어가져 온 후에 다시 부엌에 들어가서 식구들이 먹을 떡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시 비를 내려줄 때까지 밀가루가 바닥이 나지 않을 것이며, 기름도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로인해 그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그 상황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함으로 자기의 목숨인 전부를 바쳐 맡긴 것은 동일합니다. 사르밧 과부가 자기의 목숨을 엘리야가 섬기는 하나님께 맡겨 의존한 것은 지금 자기의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무서운 진노의 저주에서 되어지고 있는 것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르밧 과부는 가뭄과 흉년의 재앙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찾고 있는 하나님의 징벌에 자기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목숨을 맡기고 따랐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거기에서 선지자 엘리야가 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구원을 얻게 하시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가난한 과부의 연보는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서 그 과부는 ‘생명의 주’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과부의 연보는 부자들이 한 연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탐심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이심을,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인 관계성을 인식하고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주관하실 것에 대한 의존 속에서 자신을 헌신하였음을 고백하는 믿음에서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연보하였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께 자기의 목숨인 전부를 바쳐서 맡기는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의 주로 삼고 섬기는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서 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부의 엘리야 섬김은 비가 다시 내려 가뭄과 흉년이 해소되고 다시금 땅에서 수확하여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처럼, 선지자 엘리야가 믿는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여 가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한 매일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살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은혜)을 크게 입고 있는지를 보아 알고 그 믿음에 있게 하시기에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가 입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은혜를 좇아 날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온전히 의존해 나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가난한 과부의 연보는 이 연보를 통해서 큰 축복을 받아 그것으로 생명을 지켜나가겠다는 생각에서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이 아닙니다. 이 과부는 지금의 생활비 전부를 연보 궤에 넣는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주가 되어 오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부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요함에 가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여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비참한 불행의 처지에서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를 보며 하나님에게서 구원의 긍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한 이 과부는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에서 하나님을 택했습니다. 이 과부는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자기의 목숨을 잃는 것에서 하나님을 얻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사랑을 입고 왔었는지, 그리고 또한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바라보고 있는, 그래서 주로 모시고 섬기는 가난한 과부의 연보 행위를 제자들에게 말씀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에게 교훈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어떤 믿음의 관계에서 따르며 섬겨야 할지를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이 과부와 같이 우리의 전 삶을 하나님께 맡기며,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께서 이루시는 새 출애굽의 은혜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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