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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15:42-47
성경본문내용 (42)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43)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44)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45)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46)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47)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강설날짜 2016-11-27

2016년 마가복음 공부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15:42-47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경건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곧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으신 줄 알았지만 결국 십가에 못 박게 내어 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조롱과 채찍을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사 지낸바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으며, 이를 예수님께 가진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 신앙을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인 공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 가진 고백으로 표하며, 기록으로 남겨 공교회의 신앙유산으로 삼게 한 사도신경에 보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심’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들의 주이신 예수님께 가진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부활하심이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곧 성경대로 성취된 하나님이 하신 일이심을 확실하게 증거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7:62-6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셨을 때 그 다음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모여 말하기를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빌라도는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무덤 문을 막고 있던 큰 돌을 인봉하고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음으로써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무기력한 자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모든 믿음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말씀하신 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이 대속의 죽음이시며,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확실성과 그 진실성을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는 불신앙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말하였던 바와 같이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의 시신에 대해 제자들이 무덤에서 빼돌리고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거짓으로 전파했다고 하는 ‘허위설’ 또는 ‘도둑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것이 아니라 단지 의식을 잃었다가 나중에 의식이 돌아와 깨어 난 것을 마치 죽은 것으로 간주하였다가 부활했다고 거짓으로 전파한다고 하는 ‘기절설’을 주장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의 주이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예수님만 생각하고 또한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는 지나친 생각을 한 나머지 헛것을 봤다고 하는 ‘환상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이 고대의 동양 종교들의 신화가 부활 이야기의 유추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교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을 이교신화에 연결시켜 ‘신화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부인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이 그 자신의 능력인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있은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 믿음에 서 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과 생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요 11:25). 자기의 생명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참조. 요 10:18). 예수님은 심지어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헐어버리면 자신이 사흘 동안에 다시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요 2장). 이것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요한복음 2:19-22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음과 함께 말씀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증거 하게 되는 ‘표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어 그곳을 떠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후에 승귀 하신 자가 되심으로 빈무덤이 되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사실적으로 증거 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 지내시게 되는 것에 대하여 마가를 비롯하여 복음서의 각 기자는 이 때에 있은 일을 기록함으로 대대로 온 세대의 사람들에게 증언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2-43절을 보면 예수님이 장사 지낸 바 되어 무덤에 묻히신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 저물었을 때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장사 지내 무덤에 모신 때는 안식일 준비일의 늦은 오후였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는 유대의 율법에 규정한 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 때가 되기 전인 늦은 오후에 예수님을 장사 지내 무덤에 안치하였습니다(참조. 요 19:42).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와서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유대 종교기관으로 최고의 회의인 산헤드린공의회의 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열망함으로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의 지도자들이 무서워서 예수님께 가진 자신의 믿음을 숨기고 지내오던 사람이었습니다(참조. 요 19:38). 그런 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고난을 당하신 것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고 그는 담대하게 예수님의 제자 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예수님의 시신을 넘겨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장사 지내고자 하였습니다.


44-45절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해 그 시신을 내어달라고 하자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는 이상히 여기며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백부장이 알아 본 후에 예수님이 이미 죽었음을 보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죽은 것을 확인 한 후에 요셉에게 시신을 내어주었습니다. 46-47절을 보면 이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린 다음 세마포로 싼 후에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53:9절의 성취입니다. 그런 후에 큰 돌을 굴려다가 무덤 입구를 막았습니다. 요한복음 19:38-42절에 보면 이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곁에서 도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온 일이 있었던 니고데모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100근쯤 가져 왔습니다. 그는 요셉을 도와 예수님을 장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광경을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이 무덤 맞은편에서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47).


마가를 비롯한 복음서의 각 저자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줄 것을 요청하고 그 허락을 받아 새무덤에 장사 지낸 사실을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일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의 단독 행위가 아닌 그를 도운 조력자인 니고데모와 이 때의 일을 무덤 맞은 편에서 낱낱이 모두 목격한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의 ‘눈’이 있었음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여느 거짓 증언자들처럼 거짓이거나 또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곧 확실히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지 삼일 만에 있게 될 부활의 사실성과 그 진실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어 그곳에 묻힌 것은 이것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이어서 계속해서 펼쳐지게 될 일 곧 예수님의 죽음과 더불어 그분에게 있게 될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더불어 예수님의 무덤에 묻히는 장사 지냄은 온 세상에 드러내 알리는 복음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에게 하신 일에 관심을 두게 하고 그 믿음에 있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로마서 1:4절에 보면 훗날 바울 사도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1:20절을 보면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라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있은 부활의 확실성과 그 진실성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음으로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하시는 복음의 시작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한분의 죽으심을 그분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으로서가 아닌 그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생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6:18절을 보면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참조. 롬 6:19, 21).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그를 믿음으로 따르는 제자들에게 ‘세례’와 연결시켜 다루었습니다. 로마서 6:3-4절을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없이는 죄에 대하여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그를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을 예수님과 한 몸이 되게 하시는 ‘연합’을 가져오는 이적을 일으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죄에 대하여 장사될 때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그분과 더불어서 함께 장사된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같이 그들도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새 생명을 받아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신 것은 우리를 그 십자가에 함께 달리게 하셔서 죽게 하심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 죄를 사랑하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묻혀서 그분과 더불어 장사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예수님 자신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대신한 것이기에 모든 사람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에 함께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이 그분이 베푸시는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단지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그의 몸으로 하나 되었다고 하는 것에 그 의미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의 몸으로 하나된 것이 그의 몸을 이룬 자들에게 어떤 일을 가져다주는 것이냐 하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예수님의 몸으로써 한 몸만 이루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몸으로 한 몸을 이룬 것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있으며, 그래서 믿는 자들이 그들의 주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서 예수님과 더불어 죽은 자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장사된 자로 무덤에 묻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우리 육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죄에 대하여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은혜’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악한 옛 욕망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래서 죄를 사랑하던 우리의 육신은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거나 죄의 종이 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기라”고 했습니다(롬 6:11). 죄가 하나님의 아들을 주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죄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보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능력으로 죄를 멸하실 때 우리도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 대하여서 죽은 자가 되었으니 어떻게 죄의 유혹과 세력이 우리를 억압하여 구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서 죄가 살아 있어야, 그래서 죄가 살아 꿈틀거리며 움직여야 그 죄를 가지고 우리를 구속할 수가 있는데,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세상 끝날까지 그 능력을 발휘하여 우리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죄에 대하여 죄가 발생하는 그 즉시로 죄를 영원히 멸하심으로 결코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피로 죄의 지배를 좇아 죄를 사랑하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새 생명과 함께 살 것을 믿는 그에게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다시 죽는 일이 없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예수님을 지배할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이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룬 자들도 다시는 죽는 일이 없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그들을 지배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가 다시는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며, 따라서 사망이 결코 그에게 왕노릇 하지 못합니다(롬 6:1-9, 14). 따라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 곧 우리에게서 죄가 멸해진, 죄의 권세가 우리에게 어떤 힘도 결코 발휘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우리가 영원히 멸해지지 않는 것은 죄가 우리를 영원한 사망으로 끌고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죄 때문에 무덤에 묻히지만 이미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있으므로 죄는 멸해지고 하나님의 생명이 왕노릇 하는 하나님의 권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가 되셔서 장사 되어 무덤에 묻히신 것이 그를 믿음으로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바울은 이러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로마서 6:10-13절을 보면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의 살아나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자들은 죄에 대해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 2:20).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신 것은 자신을 믿음으로 따르는 자들과 한 몸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바로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기며,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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