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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1:27-2:8
성경본문내용 (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28)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30)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2)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4)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강설날짜 2017-01-01

2017년 신년 특강


일심으로 서서 협력하라


말씀:빌립보서 1:27-2:8


오늘 우리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하나 될 것을 호소하는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27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27b). 그런데 바울은 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27a).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은 정확히 번역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시민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시민 생활을 하라’는 말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었습니다. 빌립보는 로마 제국의 퇴역 군인들을 위해서 특별히 세운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와 동일한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시민들은 그들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에 대해서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 사도를 고소할 때에도 사도행전 16:20-21절에 보면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며 고발하였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시민 생활’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권면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음을 각인시켜서 가르치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봤습니다만 빌립보서 3:20절에 보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시민권에 대하여서 긍지를 갖고 있었지만, 하늘의 시민권은 그보다 훨씬더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더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시민권은 지상의 시민권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임을 의식하고서 복음 신앙에 합당하게,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고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 1:27-28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심으로 서라’라는 말은 ‘팔랑크스’를 생각나게 하였을 것입니다. 팔랑크스는 고대 그리스 시민군의 전형적인 부대형태 또는 그러한 부대를 운용하는 전술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직접 무장을 하고 유사시에 보병으로 참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훈련 받은 우수한 병사들이 아니기 때문에 개개인의 무용이나 전술적인 움직임 대신에 시민단 전체가 하나로 유기적인 연결을 통하여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곧 시민군이 무장을 하고 하나로 붙어서 전투에 임한 것입니다. 그러한 전술 형태를 팔랑크스 전법이라고 합니다.


로마 군대는 그리스의 ‘팔랑크스’ 전법을 받아들여서 군인들이 대오를 갖추어서 나아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옆 사람과 긴밀하게 붙어서 한 몸을 이루어서 전쟁에 참여합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복음 신앙을 위하여 일심으로 서서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협력하다’라는 말은 운동 경기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협력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sunaqlούγτες’(쉰아쓸룬테스)라는 말인데, 여기에서 ‘운동 경기자’(athlete)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답게 한 팀을 이루어서 경기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군대의 깃발은 ‘하나 됨’입니다. 하나 되지 못한 군대는 백전백패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분열은 신자가 세상에서 증언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세상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자 답게 복음 신앙을 위하여 일심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 복음 신앙을 위하여 일심으로 서서 협력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져 가기 위해서는 복음 신앙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2017년 새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일심으로 협력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협력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앙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하는 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일심으로 서서 복음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권면한 후에 대적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28). 로마 군대는 적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최정예 부대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적이 오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다며 담대한 마음으로 적들을 물리쳤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적들이 공격하지만 그것은 원수들에게는 심판의 표시요, 자신들에게는 구원의 표시가 된다고 격려했습니다. 1:28절을 다시 보면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핍박 자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1:29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받은 두 가지 은혜를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을 믿은 것이 은혜지만 동시에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29).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난도 은혜라고 이야기하면서 고난 가운데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고난을 당할 때 그들이 당하는 불의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은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고난이 영광으로 이르는 길인 것입니다. 로마서 8:17절을 보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1-4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권면한 후에 이제 구체적으로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분열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2:1-4).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매우 부드럽게 그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합니다.


4장에 보면 이 문제를 다루는데 그때에는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아주 엄격히 다룹니다. 4:2-3절을 보면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 사도가 언급하는 두 사람의 이름이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아마 이들은 빌립보 교회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자들로서 서로 경쟁하며 다투었던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가 많은 어려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도록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부족한 것을 보면 쉽게 비판하거나 고칠 것을 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훨씬 더 지혜가 있고 깊이가 있게 대응하였습니다. 이는 오직 은혜로만 사람이 바뀔 수 있고 태도와 행실이 변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은혜로 얻은 특권을 깨우치면서 그들을 가르칩니다. 2:1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무슨’(ti;", 티스)이라는 말이 우리말 번역에는 세 번 나타나지만 원어로 보면 네 번이나 나옵니다. 문맥으로 보아도 그렇고, 문법적으로 엄밀하게 따져 보아도 여기에서의 ‘무슨’이라는 말은 ‘--하므로’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성령 하나님으로 교제를 누리고, 긍휼과 자비가 ‘있으므로’ 성도의 생활에서 그 은혜의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무슨’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이런 것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생활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바울 사도는 ‘하나 됨’을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다시 보면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뜻’을 갖고, ‘한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같다’, ‘하나’라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 하나 됨을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빌립보 교회에 있는 특별한 약점 때문입니다. 그 교회는 건강하고 헌신적인 공동체였지만 거기에 분열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느 경우에는 진리에 철저히 헌신한 사람이 ‘진리의 본질’에 대하여서는 근시안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말하고 진리대로 행하지만 사랑이 없이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4:15절에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의 일에 헌신한다고 하지만 피상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분열의 위험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만 있는 곳에는 분열의 위험도 함께 있습니다. 그 열심이 겸손과 나란히 가고 두 가지가 하나로 합해지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교회 안의 분열은 대부분 열심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겸손의 부족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영적 상태와 그 안에 있는 분열을 감지하고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오늘 본문 2:3-4절을 다시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어떤 일에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였겠습니까? 2:3절에서 ‘아무 일’이라고 할 때에는 좋지 못한 일뿐만 아니라 좋은 일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아마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바울 사도에게 선교비를 보내면서도 경쟁하는 마음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도 분별력이 없이 일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다툼이나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다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마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다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ejriqeiva’(에리데이아)라는 말인데 순전하지 못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17절에 보면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며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경쟁심으로, 곧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의 그런 마음을 꿰뚫어 보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감옥에 매여 있는데 그 매임에 ‘괴로움’을 더한다고 하였습니다. 곧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로 하기는 커녕 더욱 괴롭게 하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 가운데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행동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괴로움’(qli'yi",들립시스)이라는 말은 ‘마찰’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찰을 더한다’는 말은 그들이 바울이 차고 있는 쇠를 흔들어 댄 것을 말합니다. 옛날에 보면 죄수들이 옥에 갇혔을 때 목이나 발목에 쇠를 찼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흔들어 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매고 있는 쇠가 살을 파고들어서 피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즐긴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옥에 갇혀 있지만 밖에서 경쟁심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러한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경쟁심으로 가득한 그들의 마음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교회에 가입하는 것에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옥에 갇혀서 활동하지 못할 때에 자기들이 더 열심히 하여서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이름보다도 자기들의 이름이 더 높아지면 바울 사도가 더 큰 고통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마 바울 사도도 자기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서 바울이 매고 있는 쇠사슬을 그렇게 심하게 흔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것으로 자기들의 일을 포장하였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그것을 즐기려는 것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악한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툼’ 곧 경쟁심이라는 말을 두 경우에 사용하여서 빌립보 교회 안에서도 그러한 요소가 없는지 돌아보도록 가르칩니다. 바울 사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다툼과 경쟁심에 대한 해답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다시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다투려는 마음이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있음을 상기시켜주면서 교회에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일을 돌아 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은 좋은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덕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겸손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용맹스러운 군대로 다른 지역을 점령하여서 제국을 세웠던 로마 사람들에게는 ‘겸손’이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백전불퇴의 용기와 자부심이 그 사회에서는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겸손’의 깃발 아래에서 하나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복음 신앙에 합당하게 시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시민 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힘으로서는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오늘 본문 2:5-8절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내가 ‘겸손해야지, 겸손해야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결단코 겸손할 수 없으며,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품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힘써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그 은혜에 사로잡힌 바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에 사로잡힌 바 될 때에야 비로소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을 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겸손히 한 마음을 이루어 갈 수가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히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에 접촉 되게 하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다툼과 허영을 버리게 하시고 같은 마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일심으로 서서 협력하여 주님의 뜻을 섬겨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2017년 한 해도 이 교회를 통해서 힘 있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이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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