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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2:1-4
강설날짜 2017-08-06

2017년 빌립보서 공부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말씀:빌립보서 2:1-4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하늘나라의 시민이라는 의식을 갖고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고,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1:27-28).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자답게 한 몸을 이루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할 때 복음 역사에 큰 진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안에 있는 분열의 문제를 다룹니다. 빌립보교회는 여러모로 좋은 교회였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 간에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분쟁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무엇보다도 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했습니다(빌 2:1-4). 이 말씀에 보면 빌립보교회 가운데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고 다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는 그 문제를 매우 부드럽게 다루면서 그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 4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이 문제를 다시 다루고 있는데 그때에는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아주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4:2-3절을 보면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 사도가 언급하는 두 사람의 이름이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이들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이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다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 사이에 어떤 구체적인 다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빌립보교회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며 다투었던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가 많은 어려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도록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부족한 것을 보면 쉽게 비판하거나 고칠 것을 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훨씬 더 지혜가 있고 깊이가 있게 이 문제에 대해서 대응하였습니다. 이는 오직 은혜로만 사람이 바뀔 수 있고 그 태도와 행실이 변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은혜로 얻은 특권을 깨우치면서 그들을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무슨’(ti;", 티스)이라는 말이 우리말 번역에는 세 번 나타나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네 번이나 나옵니다. 문맥으로 보아도 그렇고, 문법적으로 엄밀하게 따져 보아도 여기에서의 ‘무슨’이라는 말은 ‘--하므로’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사랑으로 위로를 받고, 성령 하나님으로 교제를 누리고, 긍휼과 자비가 있으므로 성도의 생활에서 그 은혜의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여기서 ‘무슨’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이런 것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생활에서 반드시 나타나야 할 덕목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바울 사도는 ‘하나 됨’을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뜻’을 갖고, ‘한 마음’을 품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바울 사도는 ‘같다’, ‘하나’라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처럼 ‘같다’, ‘하나’라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하며 하나 됨을 강조하는 것은 빌립보교회에 있는 특별한 약점 곧 다툼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는 건강하고 바울의 선교역사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공동체였지만 거기에 분열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속에 있었던 분쟁과 다툼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본문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라고 하는 권면의 말씀들을 기초로 생각해 볼 때 겸손하지 못함으로 생긴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열심이 앞서서 생긴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15절에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빌립보교회 가운데 있던 분쟁과 다툼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하지 아니하는 문제로 발생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에는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선교역사도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섬겼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의 일에 헌신한다고 하지만 피상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분열의 위험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는 곳에는 분열의 위험도 함께 있습니다. 그 열심이 겸손과 나란히 가고 두 가지가 하나로 합해지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교회 안의 분열은 대부분 열심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겸손의 부족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열심이 있지만 진리에 대해서 무지할 때 거기에 다툼이 있습니다. 곧 가르침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를 때 다툼이 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 같은 경우에는 진리에 대해서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1:6-10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바가 다를 때 거기에 파당이 생기고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거기에 시기와 다툼이 있게 됩니다. 곧 인본적인 생각으로 인해 다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를 보면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하며 파당을 짓고 서로 시기하며 분쟁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3-5절을 보면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 사도는 파당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라고 합니다.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이 될 때 거기에 분열과 다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의 영적 상태와 그 안에 있는 분열을 감지하고서 어떻게 권면합니까?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합니다. 빌립보교회가 어떤 일에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였겠습니까? 3절에서 ‘아무 일’이라고 할 때에는 좋지 못한 일뿐만 아니라 좋은 일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아마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바울 사도에게 선교비를 보내면서도 경쟁하는 마음으로 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도 분별력이 없이 일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다툼이나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다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아마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다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ejriqeiva’(에리데이아)라는 말인데 순전하지 못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17절에 보면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며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경쟁심으로, 곧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의 그런 마음을 꿰뚫어 보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감옥에 매여 있는데 그 매임에 ‘괴로움’을 더한다고 하였습니다. 곧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로 하기는 커녕 더욱 괴롭게 하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 가운데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행동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17절에서 말하는 ‘괴로움’이라는 말은 ‘qli'yi"’(들립시스)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마찰’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찰을 더한다’는 말은 그들이 바울이 차고 있는 쇠를 흔들어 대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에 보면 죄수들이 옥에 갇혔을 때 목이나 발목에 쇠를 찼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흔들어 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매고 있는 쇠가 살을 파고들어서 피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을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즐긴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옥에 갇혀 있지만 밖에서 경쟁심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러한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경쟁심으로 가득한 그들의 마음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교회에 가입하는 것에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옥에 갇혀서 활동하지 못할 때에 자기들이 더 열심을 내어서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이름보다도 자기들의 이름이 더 높아지면 바울 사도가 더 큰 고통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마 바울 사도도 자기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서 바울이 매고 있는 쇠사슬을 그렇게 심하게 흔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것으로 자기들의 일을 포장하였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그것을 즐기려는 것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악한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바울은 ‘다툼’ 곧 경쟁심이라는 말을 두 경우에 사용하여 빌립보교회 안에서도 그러한 요소가 없는지 돌아보도록 가르칩니다. 바울은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다툼과 경쟁심에 대한 해답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투려는 마음과 허영심 곧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있음을 상기시켜주며 교회에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다툼’은 이기심 또는 이기심에서 나오는 다툼, 분쟁을 의미합니다. ‘허영’은 헛된 영광을 말합니다. 곧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해야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교회 안에 다툼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각각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곧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형제의 일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자기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폐를 끼치게 됩니다. 그것은 이웃 사랑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그로인해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자기 일을 잘 감당함으로 다른 사람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각각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본다는 것은 약한 자를 돕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다툼과 분쟁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은 좋은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덕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겸손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용맹스러운 군대로 다른 지역을 점령하여서 제국을 세웠던 로마 사람들에게는 ‘겸손’이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백전불퇴의 용기와 자부심이 그 사회에서는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겸손’의 깃발 아래에서 하나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 이것이 복음의 신앙에 합당하게 시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 속한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힘으로서는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5-11절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으로는 겸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악된 본성으로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음 시간에 자세히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권면하는 바울에 대해서 좀더 상고해 보고 마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다시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돌보지 않고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더불어 잘 되기만을 원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옥에 갇혀 있고 착고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큰 고통과 핍박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런 자신의 형편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도로서의 충만한 기쁨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다툼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으로 서로 협력함으로써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져 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것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바울을 통해서 우리의 기쁨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인해 기뻐합니까? 무엇을 기쁨으로 삼고 있습니까? 자기 인정과 헛된 영광을 추구할 때 거기에 다툼과 분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사도 바울의 기쁨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가 잘 됨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져 감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가운데도 모든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없게 하여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 일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기쁨이 우리들 가운데도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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