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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4:10-13
강설날짜 2017-10-29

2017년 빌립보서 공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말씀:빌립보서 4:10-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4:8). 그리고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했습니다(9). 우리가 바울 사도의 이 권면의 말씀을 따라 이제까지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생각하고 행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 하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의 참된 의미가 무엇이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주제를 바꾸어서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원문으로 바로 직역하면 ‘너희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이미 전에 다시 싹이 났기 때문이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옥에 갇힌 바울을 생각하고 그를 도울 마음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싹이 나다’라는 말은 ‘되살아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이전에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생각하고 도왔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금 바울을 도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시 싹이 난 시점은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오기 전이었을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에 있을 때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어느 셋집에 갇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미 그들은 바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10b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들이 전에도 바울을 돕고자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도울 기회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에바브로디도 편을 통하여 바울을 돕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늘 돕고자 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자신을 섬긴 일로 인하여 주 안에서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빌립보교회 성도들과 같이 선교일선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늘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시에 그 사랑을 실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교회가 이번 가을에 특별히 가지교회를 위해서 선교헌금으로 돕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의 선교사역에 함께 사랑으로 동참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일에 감사함과 즐거움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선교 일선에서 헌신하는 우리 선교사들과 가지교회 모든 성도들과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는 기쁨이 충만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곧 그가 10절에서 말한 빌립보교회가 자기를 돕고 섬기는 일에 다시 싹이 나고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궁핍해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마치 자신이 선물을 바라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선물에 대해서는 고맙고 기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았을 때 너무 좋아하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고 하면 마치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지금 자기가 궁핍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함을 배웠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족하다’는 것은 ‘스스로 충족하다, 스스로 만족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라는 말은 원어를 직역하면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라는 말입니다. 곧 바울은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만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어느 셋집에 죄수의 몸으로 감금되어 있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나중에 출옥하면 만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갇혀 있는 그 상황 속에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줄 아는 믿음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형편이 좋을 때 만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형편이 나아지면 누구나 감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힘들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참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감옥에 갇혀 있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자족하며 만족하는 바울 사도의 이 믿음을 본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복음을 인해 바울처럼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문제들로 인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 해 하고 염려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재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울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자족하는 이 믿음을 본받아 우리도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자족하며, 만족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자족할 수 있었던 것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족은 많은 경험과 고생을 통해서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천에 처하다’는 말은 원래 ‘낮은 처지에 처하게 되다, 겸비하게 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특히 먹는 것과 생활용품에 있어서 ‘어려운 환경에 처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풍부에 처하다’는 말은 지금 상황에서 그대로 풍족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일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여기서 ‘배우다’는 말은 완료 수동태로 ‘비밀을 배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곧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자족할 줄 아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비밀’, ‘특별한 능력’에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다시금 ‘모든 일’ 곧 ‘어떤 형편에서든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그 모든 일이 ‘배부르게 됨’과 ‘배고픔’과 ‘풍부하게 됨’과 ‘궁핍하게 됨’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처럼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 등 양쪽 상황을 다 말하지만 여기서 특별히 의미하는 것은 ‘배고픔과 궁핍함’의 상황에서 그가 견디고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많은 고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9-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그렇습니다. 바울은 많은 고난을 통하여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시편 기자도 시편 119:71-7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시 119:71-72).

 

13절을 보면 바울은 이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이 있게 된 배경을 무시하고 단지 이 구절만을 붙들고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그래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를 강하게 내세우며 자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무한하고 큰 능력을 소유하였다는 착각에서 삽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자임을 증명해 나가고자 합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 능력은 하늘과 땅의 권세가 있는 것으로 영권과 물권을 소유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능력 있는 권세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축복을 받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하는 권면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한 말씀이 그러한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자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오직 주님만 사랑하며 주님을 위해서만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생각과 뜻대로 됩니까? 안 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합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세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세상의 일로 인해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세상의 일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는 이 말은 하나님 안에서 아무 것이나 다 할 수 있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치 슈퍼맨이나 전능자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치 이 구절을 외우면 자동적으로 힘과 능력이 생겨서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무엇 때문에 이 권면의 말씀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참된 의미를 바르게 알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8-13절에서 빌립보서를 끝맺게 되면서 그전에 먼저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8-13절을 다시 보면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인사를 전합니다. 그는 이 일이 무엇 때문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구원을 얻게 하는데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상태가 좋든지 또는 열악하든지 간에 만족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좋지 않아 궁핍하여 굶주림에 있어도 그 형편 속에서도 전파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의 곁에서 돕는 사람이 있어 넉넉함과 부유함이 그의 힘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돕는 선한 기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파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게 하셨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 사역에 함께 하여 도움을 줄 때 바울은 이 선한 일이 왜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신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난하여 궁핍에 있든지 또는 부유하여 넉넉함에 있든지 그 모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여 온 세상에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이 지닌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고 있는 것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0-13). 이것이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한 의도의 본의입니다.

 

이 정신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파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며, 그분 안에서 호흡하며 움직이며 사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서 사도 바울이 말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란 말씀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숨 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사는 것도 나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이 모두가 내게 의미가 있음은 이중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능력과 관계없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에 있게 합니다. 이렇게 숨 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있어지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우리가 처한 형편이 비천에 처해 있는 것이든 부요에 처해 있는 것이든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 그 모두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만족해하며 이를 기뻐하고 의존합니다. 그러한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우리가 처한 모든 형편을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여 나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의도하고자 한 바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곡해하여서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할 수 있다는 빌미로 삼아 하나님의 능력을 한갓 육체의 욕망을 따라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소원하는 것에서 가져나가며 그 성취의 비결로 빙자하는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땅엣 것을 바라보며 그 구함에 있는 자로 살 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보며 구함에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영구한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당당히 말한 것은 자신이 비천에 처해 있든 부요에 처해 있든 자신에게 맡기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의 12절 말씀 곧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는 말씀과 관련해서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12절 말씀과 관련해서 볼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은 “어떠한 형편에도 대처할 수 있다, 적응할 수 있다, 자족할 수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꼭 고난을 이기고 성공해야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감당하고 견디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라는 번역은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곧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아서 무슨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표현입니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직역하면 “나를 능하게 하시는 자”가 됩니다. 즉 내가 무슨 능력을 받아서 무슨 이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된다는 의미입니다. 곧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체득한 일체의 비결이요, 능력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고난을 통해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고난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함을 아는 믿음의 비결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에 당하는 많은 고난을 인해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아야 합니다. 도리어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배워나가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이런 은혜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만족하며 복음을 위해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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