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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4:14-23
강설날짜 2017-11-05

2017년 빌립보서 공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말씀:빌립보서 4:14-2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통해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로인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고난도 복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함을 아는 믿음의 비결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빌립보서의 마지막 말씀으로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가 자신의 복음역사에 참예한 것을 칭찬하며, 마지막 문안 인사를 나누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고 하면서 칭찬을 합니다. 바울이 왜 이런 칭찬을 하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본 11-12절에 보면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며 그의 쓸 것을 헌신적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 ‘나는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하니 자신들이 바울을 위해 쓸 것을 보낸 것이 머쓱해 질 수 있는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말은 ‘뭐하려고 보냈니? 안보내도 되는데. 나는 자족할 줄도 알고 빈궁에도 잘 처할 줄도 아는데’하는 말로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섭섭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괜히 보냈구나. 좋은 일 하고도 싫은 소리를 듣는구나’하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혹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한 것은 잘한 일이다”고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괴로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면 ‘qli'yi"(들립시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누르다, 압박하다’에서 온 단어로서 ‘짓누름, 환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참예하였다’는 말은 ‘바울이 당하고 있는 환난을 못 본 체하지 않고 그 환난에 동참하였다’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며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서 위로하고 또 필요한 물품을 함께 보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기도와 물질과 동역자를 보냄으로써 함께 그 사역에 참예하였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하는 자를 위해서, 특히 복음을 인하여 환난 당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로 동참하며 선교헌금과 그들의 필요를 돕는 것은 참으로 칭찬 받을 만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인해 환난 당하는 자들을 돕고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예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특히 선교일선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우리 선교사들의 사역에 기도와 사랑으로 참예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전에 행한 선행을 말하면서 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의 시초에’라는 말은 복음 전파의 시초 곧 바울 사도의 선교활동의 시초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빌립보에서의 복음 전파와 그 후에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의 복음 전파 사역의 초기를 말합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서 마게도냐로 건너갈 때에 그의 선교활동에 필요한 재정 지원에 동참하였습니다. 다른 교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으나 빌립보교회만 이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빌립보교회가 진정으로 바울을 생각하고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 동참한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 물질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의 복음 사역에 물질로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6절을 보면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한 번 두 번 바울의 쓸 것을 보내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16). 이것을 보면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사랑하고 어찌하든지 그의 복음역사에 동참하고자 한 아름다운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는 섬기던 교역자가 떠나면 잊어버립니다. 자신들의 교회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금방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번 신뢰한 교역자를, 복음 전파에 헌신하는 교역자를 끝까지 신뢰하며, 무엇보다도 그의 복음역사를 위한 일에 끝까지 기도와 물질로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의 교회의 유익을 떠나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1:5절을 보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자기들의 목자이기 때문에, 자기 교회를 개척한 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복음을 인하여 첫날부터 이제까지 바울과 교제하며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그의 쓸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참으로 빌립보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인해 바울을 사랑하고 그의 복음역사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힘을 다해 돕고 섬겼던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이런 아름다운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17절을 보면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14-16절에서 빌립보교회를 칭찬한 것을 오해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바울이 마치 선물을 좋아하고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처럼 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 중에 ‘바울은 경건하여 물질을 초월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물질을 보내준 것에 대해서 이렇게 기뻐하고 칭찬하는 것을 보니 내심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더 많은 선물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구나!’하고 오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근본 의도가 무엇입니까? 17b절을 다시 보면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복음역사에 헌신적으로 동참한 빌립보교회를 칭찬한 것은 선물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 도리어 빌립보교회가 유익하도록 곧 빌립보교회에 과실이 번성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과실’은 선행의 과실, 의의 열매, 빛의 열매를 말합니다(참조. 빌 1:11; 엡 5:9).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선행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과실 곧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또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의 칭찬으로 인해 그들은 더욱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되고 빌립보교회는 더욱 복음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3-16절을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사랑 가운데서 참된 것을 하여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서 복음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라면서 그들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바울의 이 소망을 따라 더욱 복음역사에 헌신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교회로 자라가게 하여 주시고, 복음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8절을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모든 것이 있고 풍부하다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보내준 것을 받음으로 풍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향기로운 향이요, 받으실 만한 제물이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입니다. 이 표현은 구약의 제물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입니다(참조. 레 1:9,13,17 등).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또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롬 12:1). 우리가 행하는 선행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주께 드리고 선한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참조. 히 13:16).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헌금으로 헌신하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더욱 복음역사를 위해 헌신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장차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풍성한 대로’라는 말을 직역하면 ‘그의 풍성을 따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풍성한 하나님이신데 그의 풍성함을 따라 우리에게 채워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풍성한 하나님이십니다. 결핍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을 다 소유하신 분이십니다(시 24:1).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인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아까워서 조금씩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약 1:5) 하나님은 그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눅 12:32). 우리의 모든 쓸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딤전 6:17).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찌들리고 결핍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헛된 일에 재물을 낭비하며,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게으름과 부조리가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지 하나님이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풍성함을 따라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 주시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실 때의 범위 또는 방법을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 범위 내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 전파를 위하여, 선한 일을 위해 물질을 필요로 할 때에 하나님이 채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세상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광 가운데’라는 말은 이처럼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일어나는 것임을 말합니다. 곧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50:15절을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면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쓸 것을 풍성히 채워주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20). 여기서 보면 바울은 먼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 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원래 ‘빛남’, ‘비췸’, ‘찬란함’을 뜻하는데 이것이 하나님께 사용되면 하나님의 ‘위대함’, ‘찬란함’,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딤전 6:16), 영광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세세 무궁토록’이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보면 ‘세대들의 세대들에 이르기까지’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세대’라는 말은 ‘시대’ 또는 ‘세상’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현세와 내세를 ‘이 세상’과 ‘오는 세상’으로 불렀습니다(마 12:32; 엡 1:21). 따라서 ‘세대들의 세대들에 이르기까지’는 ‘영원토록, 무한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번역에는 ‘영광을 돌릴지어다’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 의하면 ‘영광이’라는 말 다음에 동사가 없습니다. 이 문장은 송영이기 때문에 기원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곧 ‘영광이 있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있을지어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문안을 부탁하고 문안 인사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21-22). 바울은 먼저 문안을 부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각각 문안하라”(21a). 여기서 ‘문안하다’라는 말은 ‘인사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있는 형제들의 문안을 전달합니다(21b). 여기서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은 바울과 함께 옥에서 사역하고 있는 형제들을 의미합니다. 22절의 ‘모든 성도들’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특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이사 집에 속한 사람들’은 가이사의 친척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이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곧 가이사의 종들이거나 또는 전에는 가이사의 종이었으나 지금은 자유인이 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는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로마의 가이사 집에 속한 사람들로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23절을 보면 바울은 이제 마지막으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 대한 축원으로 편지를 끝맺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23).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심령에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기를 기원하는데 ‘심령’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 보면 ‘영’ 곧 ‘pneu'ma’(프뉴마)입니다. 성도의 영 곧 성도들의 영혼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하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그 영혼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육신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더라도 영혼은 늘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원문에 보면 동사가 생략되어 있는데 기원문임으로 이 문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영혼과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이 마지막 인사를 통해서 우리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지만 이 땅에서는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늘 환난과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그로인해서 힘들고 어려움을 많이 당합니다. 때로는 낙심하거나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영혼이 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 성도들은 육신의 환난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늘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영혼에 충만하도록 기원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서로를 향해서, 그리고 모든 복음의 사역자들을 위해서 이런 기원을 드려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바울 사도의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한 이 기원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원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늘 그 영혼이 충만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 가운데 많은 환난과 아픔과 어려움과 역경이 있지만 이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늘 충만하여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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