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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 25:7-8
강설날짜 2017-11-19

2017년 이사야 25장 공부

신령한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

말씀:이사야 25:7-8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사야 25:6절 말씀을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연회에 참여하는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연회에 참여하는 자가 누릴 축복이 무엇인가 배우고, 우리가 그 은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연회에 참여하는 자가 누릴 축복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 7-8절을 보면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산 곧 자신의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을 덮고 있던 가리개를 제거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을 제거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7). 그리하여 그들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즐겁게 맛보게 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여한 자들은 모든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이 벗겨져서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치명적인 원수가 사망입니다. 이 사망이 힘과 권력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한 우리 인생은 잔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 사망을 정복하시고 멸하실 것입니다. 사망은 평생 우리를 두려움의 종노릇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왕들과 군주들도 이 죽음 앞에 다 쓰러져갔습니다. 그런데 온 세상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는 이 죽음을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정복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에 이 죽음을 완전히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날이 오기까지는 우리가 온갖 슬픈 일을 만나고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는 죄 때문이든, 고난 때문이든, 아니면 고난당하는 이웃에 대한 동정 때문이든 슬픔이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눈물이 제거가 되고 눈물의 원인도 완전히 제거가 되는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한 슬픔도, 우리 자신의 비참함으로 인한 슬픔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동정심으로 인한 슬픔도 모두 제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심판의 주로 재림하시고 우리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그 날이 되면 정말 새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는 슬퍼하는 일도, 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마치 자녀의 눈물을 닦아 주는 어머니처럼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마치 아기가 불편해서 울면 그 불편의 원인을 제거해서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자상한 어머니처럼 우리의 모든 슬픔의 원인을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이 잔치는 완벽한 잔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슬픔과 고통도 힘든 문제지만 기독교 신앙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들에 대한 억지 비방도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기독교 신앙은 비방이라는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 신앙이 가장 탁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가가 전혀 드러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가장 사악한 것들도 가면을 쓰고 다니기 때문에 그 정체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과 경건한 성도들에 대한 사람들의 근거 없는 모든 비방이 사라질 날이 올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선한 것들도 그 날이 되면 가장 선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좋은 것으로 포장되었던 죄와 악한 길들이 가장 사악한 것으로 그 정체가 폭로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지옥에 던져질 것을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려질 것입니다. 그 날이 되면 모든 것이 있는 모습 그대로 숨김없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가면을 쓰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 이런 일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보고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직 우리 가운데 임하지 않은 이 모든 일들이 장차 이루어질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이 장차 이루어질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진리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이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고 확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고,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민 23:19).

 

오늘 본문 7절을 다시 보면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교회를 왜 ‘산’에 비유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7-8절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누릴 축복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봤습니다. 8절 말씀은 다음 시간과 그 다음 시간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오늘은 7절 말씀을 통해서 산과 같은 교회에 참여한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7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면박 곧 얼굴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제거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열방 위에 덮인 휘장 곧 덮개를 제거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의 영혼을 덮고 있는 베일을 제거 하실 것입니다. 그 베일은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드리워져 있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입니다. 여기서 ‘베일’이라는 단어는 출애굽기 34:34-35절 말씀을 연상시키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34:34-35절을 보면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이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백성들이 육안으로 그 광채를 직접 바라볼 수 없었으므로 부득불 그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마음이 가리워져서 하나님의 진리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세의 행동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15절을 보면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식법과 도덕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사실을 볼 수 없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24절을 보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베일 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력은 그 베일을 뚫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베일을 넘어 율법의 목적과 의도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주님께로 돌아오면 언제라도 그 베일이 벗겨질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본래 우리 영혼에는 무지와 불신의 베일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베일을 하나님께서 오직 성령을 통하여 제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지의 베일이 벗겨지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베일이 벗겨지고 나면 신령한 기쁨과 천국 잔치를 보고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범죄하고 타락한 모든 사람들의 심령에는 무지의 베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할 수 없으며, 그 잔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에 참여하여 그 축복을 누리려면 우리를 드리우고 있는 베일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베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드리우고 있는 이 베일이 무엇인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베일이 사물을 가리우고 있거나 사람의 눈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영적으로 무지하고 믿음이 없는 상태에 있을 때 그 사람의 마음 자체에 베일이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하신 것을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혹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을 때도 그 사람의 마음 자체에 베일이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드리워져 있는 이러한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은 은혜가 임하여 그 베일이 제거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어떤 사물을 볼 수 있으려면 그 사물이 가려진 곳이 없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할 뿐만 아니라 시력도 온전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사물을 망막에 맺히게 하는 빛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만일 빛이 없다면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 사물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들이 신비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누구나 알 수 있게 공개되어 있지만 어떤 것은 아무나 알지 못하도록 감추어져 있습니다. 감추어져 있는 상태를 일컬어서 우리는 ‘신비’라고 합니다. 성찬식처럼 모든 것이 다 드러나지 않고 어떤 것이 감추어져 있을 때 바로 그것이 신비입니다. 성찬식에서 우리가 보는 떡과 잔은 각각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진 것과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진 것을 상징합니다. 또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죽음에 내어주셨다는 점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성찬식에는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이런 것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심령으로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찬식도 신비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이 다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신성과 인성의 연합,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구원하셨다는 사실, 그리스도께서 수치를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어 주셨다는 사실, 우리 대신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살리셨다는 사실,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우리에게 행복과 축복을 가져다 주셨다는 사실 등등. 이 모든 것이 다 신비입니다. 지극히 영광스러우신 성자께서 우리의 약함과 본성을 그대로 입으셨다는 이 사실도 참으로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걸려서 넘어졌습니다. 빛이 왔으나 어둠은 그 빛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자체가 신비이듯이 교회도 신비입니다. 교회는 보잘 것 없고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받는 사람들의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런 교회를 한 없이 즐거워 하셨다는 사실, 이 세상에서 조롱을 당하는 사람들을 성령의 전과 천국의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사실, 이 모두 다 신비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신비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지체인 우리, 몸 된 교회, 그 신앙의 모든 내용들이 다 신비입니다. 회개에도 신비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받은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죄로 인한 슬픔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성령의 기쁨과 양심의 평안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양심의 평안과 기쁨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모든 내용이 다 신비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탄복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16절을 보면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내용만이 아니라 신앙의 실천도 모두 신비입니다. 회개와 믿음, 복음적 순종과 사랑, 신앙에 따르는 위로, 모두가 다 신비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는 베일이 드리워져 있어서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베일을 벗겨 주셔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아야 할 사물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또한 성육신의 개념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신조의 모든 내용들과 신앙의 신비들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 있고 계시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보아야 할 사물에는 애매모호함이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마음에 베일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은혜로 경작되지 않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이 드리워져 있는 사람은 신령한 것을 실제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곧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이 벗겨진 자만이 신령한 것을 실제로 압니다.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인간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도 머리로만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도 자랑삼아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 정도로 여길 뿐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마음으로 알 수 없고, 자신이 직접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 뿐입니다.

 

오직 경건한 사람만이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신령한 것들을 바르게 알 수 있고, 신령한 것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알 수 있으며, 죄를 있는 모습 그대로 알 수 있고, 은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알 수 있으며, 믿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양심의 평안이 무엇인지, 죄사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오직 경건한 사람뿐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어떤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압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가 극치에 이르러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게 될 때처럼 완전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직접적으로 아는 것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머리로만 아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12절을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얻게 될 완전한 지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이 땅에서 획득할 수 있는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지식입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본래의 사람은 특별히 가장 신령한 것들에 대하여 무지의 베일을 쓰고 있습니다. 신령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와 성도의 교통’, ‘새로운 피조물에게 있는 거듭남의 신비’, ‘성령 안에서의 기쁨’, ‘양심의 내적인 평안’에 대해서 무지의 베일을 쓰고 있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도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이런 진리들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그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사실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도 수박 겉핥기처럼 알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의 지식은 태양이 그 안에 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스며든 빛과 같습니다. 이 지식은 거듭난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를 보고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소유하고 있는 성도가 하나님의 진리를 보고 느끼고 알 때 거기에는 영향력과 유익이 뒤따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에 대하여 거듭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그런 지식과 이해는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추어 줍니다. 복 되고도 은혜스러운 영향력이 그 빛과 함께 전달됩니다. 반면에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가 신학적인 체계를 통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지식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체험된 참된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은 진리에 속한 자의 자격으로 소유한 지식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의 지식은 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의 지식이요, 진리를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의 지식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이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태어날 때부터 무지의 베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7절을 다시 보면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연회에 참석한 자들에게는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을 제거해 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무지와 불신의 베일을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신령한 빛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천국의 빛과 진리는 서로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선천적 부조화 관계이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그 마음에 새로운 시력을 넣어 주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은 결코 하늘에 속한 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빛에 알맞은 눈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빛이 있어도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신령한 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령한 것들을 알아 볼 수 있는 신령한 눈을 얼마든지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까? 거듭나지 않은 마음의 눈에는 신적인 것들이 절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적인 것들을 계시하고 베일을 제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사람의 마음 밖에 빛을 창조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도 새로운 빛을 창조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이 엄청난 일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어둠 속에서 빛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에 빛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신령한 눈을 창조하여 거듭나지 않은 마음의 눈으로는 도무지 볼 수 없었던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석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의 모든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을 제거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여하게 하시고, 하늘의 모든 신령한 은혜들을 보게 하시며, 그 신령한 은혜들을 실질로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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