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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 25:8
강설날짜 2017-11-26

2017년 이사야 25장 공부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는 하나님

말씀:이사야 25:8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연회에 참여한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7-8). 특히 우리는 7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연회에 참석한 자들에게 무지와 불신앙의 베일을 제거해 주시는 축복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8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석한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석하는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신다는 것이며, 셋째는,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축복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과 그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 이 시간에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합니다(8). 어떤 사람이 연회에 참여했는데 그 연회가 얼마나 화려한지 일품 요리들이 즐비하고 모든 손님들이 왕처럼 대접을 받으며 화려한 옷도 마음껏 골라 입을 수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연회에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만 같은 날선 칼이 그들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그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도 그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잔치의 기쁨과 즐거움은 고사하고 언제 칼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벌벌 떨기만 할 것입니다. 잔치의 기쁨과 즐거움을 전혀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신령한 연회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알고 있어도 만일 그 연회에 사망과 지옥과 저주도 함께 한다면 도대체 거기에서 무슨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연회에 좀 더 완벽하게 참여하려면 신령한 빛과 지식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연회의 기쁨을 한순간에 파괴할 수 있는 방해물인 사망도 반드시 제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약속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8). 여기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고 했을 때 ‘멸한다’라는 단어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신 것을 볼 때 사망은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적군이요, 적군 중에서도 대장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멸한다’는 약속에는 사망에 대한 두려움을 멸할 뿐만 아니라 사망 자체를 멸하는 승리가 있다는 의미가 함의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영광스럽게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거칠게 저항하는 사망을 힘겹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물리치고 완전히 삼켜 버리는 완전한 승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자체를 멸하시고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적들을 그 종류에 맞게 다루십니다. 노략하고 늑탈하는 것들은 노략질과 늑탈을 당하게 하시고, 삼키는 것은 삼킴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사망은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삼켜서 이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게 만드는 무섭고 잔인한 포식자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망이 이김에 삼킨바 당하게 하셔서 완전히 멸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망이 이김에 삼킨바 당하게 하시고 사망을 완전히 멸하심으로 우리에게 완전한 이김을 주십니다.

 

사망은 왕 중의 왕이요, 황제 중의 황제입니다. 세상의 큰 대장이요, 가장 큰 세력가입니다. 일찍이 사망처럼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왕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망은 땅 끝까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망은 폭군과 닮은 데가 있습니다. 폭군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을 닥치는 대로 가차 없이 죽여 버립니다. 사망도 이런 점에 있어서 폭군을 쏙 빼닮았습니다. 사망은 남녀노소, 빈부 격차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하여 그들을 죽입니다. 사망은 이 세상에서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왕과 농부를 한순간에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망은 모든 것을 평준화 합니다. 모든 인생은 사망 앞에 평등 합니다. 하늘처럼 높은 황제도, 가장 미천한 사람도 모두 죽고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망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폭군입니다. 폭군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듯이 사망도 사람을 가리지 그 권세를 행사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사망은 이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세상을 다스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망을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망은 우리 자신이 이 세상이 끌어들인 폭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아담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사망은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죄가 사망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 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창 3:19). 이 말씀은 범죄 한 인간에게 사망을 선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하나님의 창조물이 결코 아닙니다. 죄는 사단이 이 세상에 들여온 가장 악한 것입니다. 결국 사단이 죄를 이 세상에 들여왔고, 그 죄가 사망을 이 세상에 들여온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사망이라는 폭군의 만행에 책임이 있는 방조자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망의 원인이 죄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서 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이 세상에 사망을 들여왔고, 사망이 모든 사람을 삼킬 수 있도록 무장시켜 주었습니다. 사망이 모든 사람을 공격하고 큰 두려움으로 떨게 할 때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죄입니다. 또한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영원한 저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가 진노와 지옥과 저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죄가 그 자체로 찌르는 것이 되며, 사망에 심각한 독을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염려와 두려움, 그리고 모든 슬픔과 모든 질병은 죽음의 축소판이요, 예고편 입니다. 그러나 그 잔인한 폭군 곧 죽음을 뒤따르는 수행원들이야 말로 가장 최악의 것들 입니다. 그러면 죽음 뒤에 따라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6:8절을 보면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습니다. 만일 사망 후에 음부(a{/dh", 하데스)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사실 사망은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음부가 사망을 뒤따른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의 뒤에는 지옥이 따라오고, 지옥의 뒤에는 영원한 형벌이 따라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이야 말로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얄팍한 승리가 결코 아닙니다. 이 승리는 진정한 승리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승리입니다. 우리에게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고, 진정한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실 적이 없으면 전쟁도 없고, 전쟁이 없으면 승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망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사망은 우리의 적이 분명합니다. 우리 인생에게 사망은 최악의 적이요, 최후의 적입니다. 사망의 공격은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망은 자기에게 최대한 유리하도록 마지막 순간에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하기에 사망은 우리 인생의 철천지원수입니다.

 

사망이 우리에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망은 우리에게서 모든 위로와 즐거움을 강탈해 갑니다. 사망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누리던 그 모든 교제와 직업과 그 밖에 모든 위로가 되는 것을 다 강탈해 갑니다. 무덤은 우리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살아야 하는 처절한 망각의 집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사망은 자연에게도 끔찍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을 위해서 사망을 멸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참조. 롬 8:19-22). 본래 사망은 그 자체가 악이요, 죄의 쏘는 것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그 후에는 영원한 지옥이 뒤따라옵니다.

 

그런데 이런 사망이 이김에 삼킨 바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4절에 보면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성경은 사망을 의인화해서 말합니다. 성경은 사망을 의인화해서 말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망에 대한 일종의 승리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을 노려보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5-56).

 

사망은 닥치는 대로 집어 삼키는 거대한 괴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망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삼킨바 됩니다. 사망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삼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삼킨 것은 절대로 다시 토해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왕들과 권세자들과 위대한 사람에서부터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죽은 몸을 최후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후 심판의 날이 되면 곧 주님이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극치에 이르게 되면 사망이 완전하게 이김에 삼킨 바가 되고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어떻게 사망이 이김에 삼킨 바가 되어 영원히 멸망합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삼키시고 영원히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죄 때문에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왔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성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는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죄로 삼은 바 되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은바 되사 우리가 감당해야 할 저주를 모두 감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이렇게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는 제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망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이제 사망을 뒤따르는 지옥과 영원한 형벌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골로새서 2:14-15절을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과 죄와 마귀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기셨습니다.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풀려난 사형 집행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에 이제 마귀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연단하는 도구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을 통하여 죄를 완전히 제거하셨습니다. 또한 죄로 말미암아 세력을 잡았던 사단의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사망이 이김에 삼킨바 되셨습니다. 사망을 멸하시고 우리들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매우 아름답게 서술합니다. 히브리서 2:14절을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사단을 없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죄를 제거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은 바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이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갖는 그 순간, 그리스도는 그 사람의 소유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영혼의 모든 원수들을 다 무찌르셨습니다. 죄도, 사망도, 다른 모든 원수들도 다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오래참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인내의 왕국이요, 다른 하나는 능력의 왕국입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율법과 마귀와 죄를 이기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인내의 왕국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하여 능력의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지금 다스리시는 왕국을 가리킵니다.

 

인내의 왕국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철천지원수들을 모두 물리치실 만큼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능력의 왕국에서는 얼마나 더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시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로마서 5:2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1).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신 때에도 그렇게 강력한 정복자이셨다면 최후 심판의 날에는 얼마나 더 강력한 정복자이시겠습니까?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표 자격으로 친히 그 모든 것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최후 심판 날이 되면 자신의 신비한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정복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 그때에는 그의 모든 지체들 가운데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믿음은 우리의 승리이며, 사망을 정복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도 우리의 승리입니다. 우리 영혼의 모든 원수들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가 바로 우리의 승리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사망을 이긴 정복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똑같이 죽어 무덤에 묻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자신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이 정복되었음을 보기 때문에 이미 사망을 이긴 정복자입니다. 사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정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지체 안에서도 사망을 참으로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사실 때 입고 계셨던 그 몸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셨고, 우리의 머리로서 그곳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인 모든 성도들 역시 천국의 영광에 완전히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성도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영혼의 모든 원수들을 이기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존재하듯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도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석하는 우리 성도들이 누릴 축복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보증이시며, 둘째 아담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어떻게 사망이 이김에 삼킨바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실로 사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삼킨바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의 이 승리는 고스란히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때가 차면 곧 주님이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르면 사망은 우리 자신 안에서도 삼킨바가 되고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완전힌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석하게 된 자들이 누리게 될 이 축복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를 덧입게 하여 주시고, 장차 우리 주님과 함께 누릴 그 영원한 영광을 소망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이 땅에서 곧 인내의 왕국에서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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