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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 25:8
강설날짜 2017-12-03

2017년 이사야 25장 공부

모든 눈물을 씻기시는 하나님

말씀:이사야 25:8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석한 자가 누릴 축복 곧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는 축복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베푸신 연회에 참석한 자가 누릴 축복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연회에 참석한 자들의 얼굴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축복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뿐만 아니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겨주신다고 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8). 지금 이 세상에서는 경건한 신앙의 진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많은 환난과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되는 그 날이 되면 경건한 신앙의 진가가 여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지금은 선한 일이 악한 일로 몰려서 멸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그 날이 되면 모든 오해는 사라지고 선한 일의 진가가 여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되면 모든 것이 진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야 할 모든 이유들이 사라지고 모든 눈물도 다 씻길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눈물을 흘려야 할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눈에 눈물이 흐리게 하는 슬픔의 먹구름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물론 어느 때는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하여 슬퍼하거나 울어야 할 외부적인 이유가 전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우리 자신의 부패한 마음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의심 때문에,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내적인 갈등 때문에 슬퍼하며 울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도 슬피 울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9:1절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눈물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도 눈물이 많지만 다른 사람의 죄와 비참함 때문에도 눈물이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셨다는 기록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심지어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태복음 23: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사람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이런 눈물은 그리스도의 성품이 얼마나 온유하고 자비로운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사람이 되시어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로 작정하신 것도, 작고 연약한 어린이들도 그렇게 귀하에 여기시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부르신 것도, 자기에게 나아온 자들을 한 사람도 뿌리치지 아니하고 환영하신 것도 그리스도의 성품이 얼마나 온유하고 자비로운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두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도 주님의 온유하고 자비로운 성품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는 죄로 인하여 인간이 처하게 된 비참함과 모든 고난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은혜롭고도 사랑 많으신 성품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리워 가셨고 천국의 모든 영광 중에 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향해 품고 계시는 긍휼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교회를 핍박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늘에 거하시고 더 이상 수난을 당하지 않으시고 영광 중에 계시지만 자신의 교회를 향해서는 이전과 동일하게 불쌍히 여기는 심정과 긍휼어린 마음을 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모든 성도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죄와 죄에 따르는 비참함 때문에 눈물을 흘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와 비참함 때문에도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함부로 어기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하였습니다. 시편 119:136절을 보면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고 했습니다.

 

친자식은 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보면서 크게 슬퍼하기 마련입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슬퍼하게 됩니다. 만일 자기 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되어도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식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죄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될까요?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들은 양자의 영을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땅히 슬퍼해야 할 일에도 오히려 기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슬러 설교하는 것을 보고서, 또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을 보고서, 결국은 멸망으로 떨어질 그 사람들에 관하여 말하면서 도저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우리 자신들을 아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죄와 비참함으로 인하여 슬퍼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될 때 울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교회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구원에 해가 되는 모든 죄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가 죽도록 일만하다가 끝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볼 때 절로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 가지 재능이 많은 사람이 양심을 거슬러 범죄한 일 때문에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맹세하는 사람, 부정한 사람, 망령되고도 비참한 사람이 교만의 옷으로 자기 자신의 실체를 가리며 하나님과 세상과 모든 것을 조롱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무시하고, 참으로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결코 피할 수 없는 저주와 형벌 아래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불쌍한 나귀 한 마리가 무거운 짐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면 누구라도 그 나귀를 도와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나귀에게도 그렇게 한다면 하물며 천하보다 더 귀한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정말 눈물을 흘려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이와 같이 눈물을 흘려야 할 이유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고난의 마음을 느끼고 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감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살아 있는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육신의 상태와 영혼의 상태 중 어느 것을 살펴보던지 거기에는 우리가 슬퍼해야 할 이유가 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두 가지 질병은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마치 종합병원과 같아서 어떤 사람은 이런 질병, 또 어떤 사람은 저런 질병을 다 앓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육신의 상태만 보더라도 우리가 슬퍼해야 할 이유가 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만큼 슬퍼해야 할 이유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차갑고 딱딱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슬픔과 비통이라는 것을 무조건 멀리해야만 영웅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슬퍼해야 할 이유를 잘 느끼지 못하고 마치 짐승처럼 슬퍼할 줄도 모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을 덧입은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크게 슬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참을 민감하게 느끼셨기 때문에 모든 고난에도 항상 인내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참된 미덕이라고 주장하는 금욕주의는 기독교 신앙 안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무정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서 1:31절을 보면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정한 자’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주신 자연스러운 감정을 다 잃어버린 비참한 사람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그들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라고 주장합니다. 로마서 1:32절을 보면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것을 참된 미덕이라고 우겨대니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이사야 1:5-6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감각도 없고 느낌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더 이상 그들을 때릴 필요를 못 느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징계의 목적은 바르게 함인데 그들에게는 그렇게 징계할 필요조차 못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이미 무서운 심판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눈물을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더 민감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한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공의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람이 현명할수록 자신의 비참함을 더 민감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하기에 가장 탁월한 사람이 슬픔도 가장 많이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참함을 느끼는 감각이 가장 크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처럼 무감각이나 완악함으로 그 마음이 마비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슬퍼해야 할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억누르면서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슬퍼해야 할 이유를 명백하게 이해하는 가운데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거룩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지혜로운 사랑의 감정도 가지고 있으며, 더 생생한 은혜의 생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감각도 있습니다. 슬픔의 이유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가장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선한 사람들이 가장 크게 슬퍼합니다. 그들은 가장 지혜롭고 가장 사랑이 많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크게 슬퍼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슬픔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는 은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 안에서, 다른 사람들 안에서 슬퍼해야 할 이유가 끊임없이 있다는 사실을 숙고하면서 그것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씻기실 것이라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는 아무런 은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눈물을 씻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우리가 울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울어야 할 이유가 우리 자신에게 있는 죄와 비참함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죄와 비참함이든 그 이유를 민감하게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유익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굴복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마음을 착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결핍과 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교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느낄 수 있게 매로 때리시는데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그분의 은혜 언약을 우리에게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서 11:19-20절을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이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해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은혜는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모든 은혜는 거룩하게 된 정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에게 정서가 없다면 은혜를 은혜로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슬퍼해야 할 이유가 우리 안팎에 널려 있고, 또한 눈물은 슬픔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슬퍼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는 상태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의무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는 비참함에 따르는 상태요, 그런 상태 속에서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 곤경이나 심판을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음의 완악함이나 쉽게 잊어버리는 건망증이나, 죄의 괘락으로 슬픔을 잊어 보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 안에서든지, 다른 사람 안에서든지, 또 영적으로 민감해 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고난이 있다면 먼저 그것을 민감하게 느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하나님께서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실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 자신의 죄와 비참함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죄와 비참함을 인해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주와 복음을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하나님의 약속이 완성되는 그 날 하나님께서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씻기심으로 우리가 기뻐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을 느낄만한 근거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위로와 기쁨을 느낄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지금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퍼해야 할 이유를 민감하게 느껴야 하는 것처럼 현재 기뻐해야 할 이유도 민감하게 느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장래에 일어날 일을 숙고한다면 우리는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에 근거해서 지금 현재 이 땅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슬퍼해야 하는 동시에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기쁨입니다. 우리가 슬퍼하는 것도 사실은 나중에 기뻐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고난이든지 민감하게 느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나중에 참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기뻐하기 위하여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아닙니까? 우리의 심령이 기쁨으로 충만하여야 주님을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영적으로 민감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쁨과 위로의 근거까지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해져서 슬퍼해야 할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슬퍼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그 소망 가운데 위로를 얻고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발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현재 우리를 이런 저런 고난 가운데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그 날이 오면 더 이상 비참함도, 질병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을 인하여 현재 고난 가운데서도 슬퍼하며 또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소망 가운데 기뻐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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