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1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3:1-11
강설날짜 2018-01-21

2018년 에스겔서 공부

두루마리를 먹이시며

말씀:에스겔 3:1-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소명을 에스겔이 받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에스겔서 2:8-10절을 보면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전해야 할 여호와의 말씀이 두루마리 책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에스겔을 향해 펴시는데 그 안팎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가득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3절을 보면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두루마리를 먹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가 능동적으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입니다.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에서는 수동형으로 “그가 내 입을 열어주시니”로 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벌리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벌리시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두루마리를 먹이시는 것도 하나님이 먹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시는데도 에스겔이 왜 적극적으로 말씀을 받아먹지 않습니까?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이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받아먹으려고 입을 적극적으로 벌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디모데후서 4:1-4절을 보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인간의 실상은 똑같습니다. 자기 귀에 좋은 소리를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말, 유익한 말, 자기가 듣고자 하는 말만 듣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좋은 말 해 주는 자들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에스겔도 연약한 인간입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가득한 말씀을 받아먹기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입을 벌리시고 두루마리를 먹이시면서 네 배와 네 창자에 채우라고 하십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속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먹는데 입에서 달기가 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하는 말씀이 시편 119편에 나옵니다. 시편 119:103절을 보면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본 말씀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이 어떻게 입에서 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는 내용의 말씀이 나오면 달다고 할 수 있지만 정말 싫어하는 내용의 말씀이 나오면 과연 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 15:16-17절을 보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을 인하여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말씀을 먹었는데 말씀이 기쁨과 즐거움이지만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앉지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을 때는 기쁨이지만 그 말씀이 삶으로 적용이 되면 고난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0:8-11절을 보면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와 비슷한 소명을 받는 사도 요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와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 배에서는 쓰게 된다는 말씀이 에스겔 선지자에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에스겔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증거 함으로 쓴 맛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시와 찔레와 전갈의 환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많은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살 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원하는 말씀만을 들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 말씀이 우리에게 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고난과 역경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요한계시록 18:15-21절을 보면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의 경제와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에 붙어야만 살아남는다고 모두가 바벨론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이 바벨론이 온 세상을 취하게 하는 음녀인데도 그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을 향하여 달려가기를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이 취직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오직 취직에만 몰두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벨론을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무너집니다. 망합니다. 바벨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에 두며 우리가 이 땅에서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이런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서 주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사람은 이 세상이 멸망할 때도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사람이라면 세상의 사람들과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울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우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전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소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세상의 무너지는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한다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18장의 내용입니다. 요한계시록 18:19-20절을 다시 보면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울며 애통하는 자와 즐거워하는 자로 대비가 되고 있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 망하는 것을 머리에 티끌을 뿌리며 울고 애통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그를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시는 심판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속한 자들입니까? 바벨론에 속한 자입니까? 하늘에 속한 자입니까?

 

우리가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필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인용하여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고 부담스러운 말씀이라도 아멘 합니다. 자기가 필요하고 자기가 원하는 말씀에만 아멘 하는 것은 성경을 자기 욕망의 도구로 사용할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성상 슬픈 노래와 통곡과 재앙을 결코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을 벌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입을 벌리셔서 말씀을 먹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그 입을 벌려 말씀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먹고 소화를 시키는 것이 말씀이 적용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지 배에서 쓰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오늘 본문 4절 이하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을 먹이신 것은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가기가 두려운 모양입니다. 5-6절에 보면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었더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너를 방언이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방언이 다른 열방 사람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족속들이 에스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이 듣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미 패역한 백성이요,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입니다(참조. 2:3-4).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까? 7절을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한다고 합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들의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었다고 합니다. 이마란 사람의 가장 앞선 부분 드러난 부분이라면 마음은 가장 깊은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안팎으로 전혀 듣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8-9절을 보면 그러므로 에스겔도 그들을 마주 대하도록 얼굴과 이마를 굳게 하시는데 화석보다 더한 금강석 같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8-9).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정도로 마음이 굳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입니까? 10-11절을 보면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모든 말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어서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라고 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다고 전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보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는 말을 하기 위함입니다(참조. 2:5). 나는 선지자가 없어서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다는 어떤 핑계도 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방의 나라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 주변 국가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방의 나라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함으로 핑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아무도 핑계할 수 없도록 하나님의 말씀은 온 천하에 다 증거가 됩니다. 시편 19:1-4절을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 천하에 다 전하여졌기에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하지 못한다는 것을 바울 사도도 로마서 1:18-20절에서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18-20).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구약 성경전체가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면서 오직 은혜로만 의롭다함을 받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최종적으로 확증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선지자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한 이유는 그들의 입에 들어간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공관복음에 나오는 악한 포도원의 품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주인의 종을 때리고 죽이고서는 최후에 주인의 아들마저 죽였습니다(마 21:33-41; 막 12:1-12; 눅 20:9-19). 이것이 구약에서 선지자를 보내시면서 장차 말씀 자체가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을 당할지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0-23절을 보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한 고을이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행한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 행했다면 그들이 회개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행했다면 그 성들이 오늘날까지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도 회개하지 않은 가버나움이 심판의 날에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종말이 어떠한지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의 택하신 백성이라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주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입으로 들어가고 배로 들어가서 쓴 맛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쓴 맛이 실패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좁은 문, 좁은 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택한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먹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우리 입에 꿀같이 달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생명을 얻고 심판 날에 하나님의 축복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734 [에스겔 8장] 우상이 가득한 예루살렘 성전 file 겔 8:1-18 손재호 2018-03-11 306
733 [에스겔 7장] 이스라엘의 끝이 다가오다 file 겔 7:1-27 손재호 2018-03-04 288
732 [에스겔 6장] 너희로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file 겔 6:1-14 손재호 2018-02-25 280
731 [에스겔 5장]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 1 file 겔 5:1-17 손재호 2018-02-18 342
730 [에스겔 4장] 에스겔의 상징행위 file 겔 4:1-17 손재호 2018-02-11 370
729 [에스겔 3장] 에스겔이 벙어리가 되다 file 겔 3:22-27 손재호 2018-02-04 263
728 [에스겔 3장]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다 file 겔 3:12-21 손재호 2018-01-28 281
» [에스겔 3장] 두루마리를 먹이시며 file 겔 3:1-11 손재호 2018-01-21 215
726 [에스겔 2장] 듣든지 아니 듣든지 file 겔 2:1-10 손재호 2018-01-14 290
725 [에스겔 1장]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file 겔 1:4-28 손재호 2018-01-07 256
724 [에스겔 1장] 하늘이 열리고 file 겔 1:1-3 손재호 2017-12-31 497
723 [이사야 25장]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그 날 file 사 25:9 손재호 2017-12-24 236
722 [이사야 25장]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인침 file 사 25:8 손재호 2017-12-17 209
721 [이사야 25장] 모든 수치를 제하시는 하나님 file 사 25:8 손재호 2017-12-10 284
720 [이사야 25장] 모든 눈물을 씻기시는 하나님 file 사 25:8 손재호 2017-12-03 370
719 [이사야 25장]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는 하나님 file 사 25:8 손재호 2017-11-26 222
718 [이사야 25장] 신령한 빛을 비추시는 하나님 file 사 25:7-8 손재호 2017-11-19 218
717 [이사야 25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file 사 25:6 손재호 2017-11-12 230
716 [빌립보서 4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file 빌 4:14-23 손재호 2017-11-05 344
715 [빌립보서 4장]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file 빌 4:10-13 손재호 2017-10-29 46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9 Next
/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