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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3:22-27
강설날짜 2018-02-04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에스겔이 벙어리가 되다

말씀:에스겔 3:22-27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의 파수꾼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항하기도 하고 중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노드라마의 배우처럼 여러 가지 역할극을 통해서도 하게 됩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도 말로만이 아니라 행위로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에스겔도 여러 가지 역할극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처음 역할극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처음 여호와의 영광을 본 것은 그발강 가입니다(1:1). 그곳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델아빕에 와서 일주일을 답답하게 지낸 후에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습니다(3:12-21). 지난주에 우리는 파수꾼의 생명은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린 것을 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파수꾼의 첫 역할인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에스겔로 하여금 들로 나가게 합니다. 들에서 에스겔과 말씀하시겠다고 합니다. 에스겔이 들로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도 광야로 나가서 40년을 보내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다시 광야에서 4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광야 40년을 사도행전 7:38절에서는 광야교회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광야교회여야 합니다. 지상에 영원히 거할 것처럼 멋진 예배당을 짓고 살 것이 아니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들로 나가듯이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주의 말씀을 묵상함이 정말 필요한 시대입니다.

 

마태복음 11:7-9절을 보면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보낸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세례 요한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무리가 광야에 나가는 이유는 선지자를 보기 위함입니다. 그 선지자에 대해 예수님은 10절에서 말라기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리라고 한 엘리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에 대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들로 나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에스겔처럼 예수님도 자주 빈들로 나가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활동을 하였고,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 40년을 거쳐 나왔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을 만들어 내시기 위하여 광야에서 출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자주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5:15-16절을 보면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주한 세상에서 나만의 빈들이 있습니까? 조용히 사람과 역사를 떠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나만의 빈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3-24절을 보면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주의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그곳, 그것도 빈들에 임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의 영광은 그발강 가에서 보았던 그 영광이기에 에스겔이 바로 엎드립니다. 전에처럼 주의 영이 임하여 에스겔을 일으켜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24). 처음 말씀이 들로 나가라고 하셨는데 들로 나가서 들은 처음 말씀은 “너는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인데 그가 문을 닫았다는 것은 심판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왜 심판의 상황인지를 2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인자야 무리가 줄로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주의 영이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시면서 말씀합니다.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 맬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포로로 잡혀왔지만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하여 얼마나 불만이 많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묶고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것이 조상들이 한 일이며, 바벨론 포로에 잡혀와 있는 중에도 거짓선지자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32절을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는데 때는 여고니야 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의 손에 위탁하였더라. 일렀으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위하여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하므로 여호와께서 다윗의 위에 앉은 왕과 이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 보낸 열방 중에서 저줏거리와 놀램과 치소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나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너희 바벨론에 있는 유다 모든 포로가 그들로 저줏거리를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니라. 나는 아는 자요, 증거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였더라.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집 유사로 세우심은 무릇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를 착고에 채우며 칼을 메우게 하심이어늘.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대저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때가 오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 들릴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이 백성 중에 거할 그의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선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벨론에 제일 먼저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들에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편지를 보냅니다. 포로로 잡혀간 곳에서 집을 짓고 자식을 낳고 살면서 그 나라를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합니다. 70년이 되면 여호와께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편지를 보내니 이 편지를 받은 스마냐가 예루살렘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예레미야 같은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 하는 자들을 결박하여 가두라고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상태에서 예레미야가 보낸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예레미야를 결박하여 감옥에 가두라고 하는 이들이 에스겔인들 줄로 묶어 버리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에스겔이 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들이 줄로 묶는다는 이 말씀이 어느 정도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면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그의 혀가 입천장에 붙게 하여 벙어리가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파수꾼이 벙어리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수꾼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벙어리를 파수꾼으로 세우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벙어리가 아닌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셨는데 그 혀를 입천장에 들어붙게 하셔서 곧 벙어리가 되게 하셔서 그들을 꾸짖지 못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파수꾼을 세워서 적이 쳐들어온다고 외쳐도 그들은 듣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쳐들어오는 적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패역한 자들에게 선지자의 책망이 들리지 않으면 이것이 곧 심판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오늘날 이 시대 교회에 회개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들은 요란하지만 정말로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라고 외치는 자의 소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회개하라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 회개의 메시지는 윤리도덕적인 수준이거나, 아니면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한 회개의 경우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것은 하나님을 잘 못 섬겨서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하지 못한 십일조를 다 하는 것이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돈을 사랑한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지만 그동안 못한 십일조를 다 함으로 복을 받겠다고 하는 것도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인데 이런 것을 회개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기에 그런 사람이 교회를 나와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을 들먹거려도 결국은 그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책망하는 하나님의 종이 있다면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책망하고 또 하다가 그 책망마저 하지 않으면 그것은 심판밖에 받을 일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화된 교회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말씀의 본의를 전한다는 개혁교회로 찾아오지만 그러나 그 안에도 역시 자기중심적인 요소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율법이나 복음이나 간에 자기 입맛에 맞는 말씀만 챙기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아닙니까?

 

에스겔에게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주의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 영을 누가 보내신 것입니까?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신약에서는 누가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에게 주의 영으로 말씀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전서 1:10-11절을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 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에스겔의 입천장이 붙어서 꾸짖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패역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라면 에스겔에게 이렇게 행하신 주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마태복음 12:41-42절을 보면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요나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 오셨는데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그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27).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다고 전하라”고 합니다. 에스겔이 자기 임의로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벙어리 되게 하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입을 열게 하시면서 전하는 말씀의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입니다. 이미 받아먹은 말씀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에스겔의 말을 듣고서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그것은 들은 자와 듣기 싫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참된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을 싫어하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싫었으면 선지자를 죽이고 그 선지자를 보낸 예수님을 죽였겠습니까? 신약시대 기독교 역사 초기에 보면 역시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증거 하는 자들을 죽이고 핍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먹이시고 그 입을 열어서 전하게 하는 자들의 말은 듣기에 싫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자신이 새롭게 계시를 받은 말씀이 아니라 이미 기록된 복음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 복음을 전할 때에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듣는 자가 있는가 하면 듣기를 싫어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듣고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하는 자는 소수이고, 듣기 싫어하는 자들이 다수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 역시 그들이 반역하는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벙어리가 되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패역한 족속이라서 그렇습니다. 에스겔로 입을 열게 하셔서 전하는데도 듣기를 싫어하는 것 역시 그들이 반역하는 족속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대표로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가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도 패역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증거 하면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패역한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로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파수꾼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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