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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4:1-17
강설날짜 2018-02-11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에스겔의 상징행위

말씀:에스겔 4:1-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파수꾼으로 부른 에스겔을 벙어리가 되게 하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가득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그 말씀을 받아먹고서 곧바로 가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벙어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입을 열게 하실 때에만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파수꾼이 벙어리가 되어 꾸짖지 아니하면 이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파수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직 그들에게 돌이킬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돌이킬 기회가 없고 이제는 심판이 집행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벙어리가 되어 말은 못하지만 그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모노드라마 배우처럼 무언극으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증거 합니다. 그것도 일 년이 넘는 기간을 무언극만 합니다. 4:1-5:4절까지 무언극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무언극이 끝나고 나서 그 상징적인 행위가 나타내는 의미를 말씀합니다(5장). 오늘 말씀은 에스겔의 상징적인 행위의 첫 부분으로 지금 유다와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또 전철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고 합니다. 박석은 히브리어로 ‘레베나’(hn:bel])인데 이는 성벽이나 가옥의 담을 쌓기 위해 진흙으로 만들어 햇볕에 말리거나 구워서 만든 벽돌 또는 기와를 말합니다. 박석이 굽기 전의 토판이라면 부드럽게 그려질 것이고 구운 토판이라면 조각도 같은 것으로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런 토판의 그림들이 최근에도 바벨론지역의 발굴에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왕들이 조공을 받는다든지, 적을 정복한 내용을 그림과 글로 새겨둔 것입니다. 이런 토판에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지도를 그리면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과 주택과 길들이 표시되면 다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읍을 그린 토판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를 운제 곧 바퀴 달린 성을 공격하는 무기인 망대를 세우고 흙으로 에워싸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다리를 세우고 공성퇴를 둘러 세웁니다. 이런 모양은 옛날에 성을 공격하는 방법들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보여주는 이 장면은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공격을 받는 모습입니다.

 

3절을 다시 보면 이렇게 성읍이 포위되어 공격받는 모양을 만들어놓고 다시 철판을 가져와서 에스겔과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징조가 된다고 합니다. 그 징조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성읍이 포위되고 공격받게 된다는 징조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에스겔과 성읍 사이에 철판으로 막아지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지금 1인 2역을 담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역할도 해야 하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승리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단절을 보여주는 상징인 철판으로 에스겔과 성읍 사이에 놓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적이 쳐들어와 성읍이 망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9:2절을 보면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갈라놓고 그의 얼굴을 가리게 한 것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성읍이 이스라엘의 역할인데 그 사이에 철판을 세워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학교생활과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등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더 두렵지 않습니까? 만약 이런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철판으로 막힌 것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을 보면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 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 년이니라.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 메고 예언하라.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맟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또 다른 상징행위가 나옵니다. 에스겔로 하여금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게 눕는 날 수 대로 그 죄악을 담당하라고 합니다. 에스겔이 왼쪽으로 누워서 390일, 오른 쪽으로 누워서 40일을 담당하는데 하루가 일 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의 얼굴을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여 팔을 걷어 올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심판을 집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줄로 몸을 묶어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날이 끝나기 까지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행위를 1년 넘게 해야 합니다. 에스겔도 힘들겠지만 그의 아내도 이런 남편을 볼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24장에 보면 아내가 먼저 죽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아내가 죽어도 울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이런 상징행위는 죄악을 담당하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대속이냐 아니면 유대인들이 벌을 받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대속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대속의 역할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처럼 대신 고난을 당하는 것이며,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그가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않은 것처럼 에스겔이 벙어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이런 상징행위는 두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에스겔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담당하는 것이 벌을 받는 것과 대속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포로로 잡혀오는 것은 죄악에 대한 벌을 받는 것으로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소망이 있고 그 과정이 대속의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왼쪽으로 누워서 390일을 말하는 것은 390년의 죄악을 담당하는데 에스겔로부터 소급하여 올라가면 솔로몬의 성전 완공시대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북 이스라엘의 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이스라엘은 곧 우상숭배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기 까지 늘 우상을 숭배한 것이 이스라엘임을 고발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 쪽으로 40일을 누운 것은 아직 남은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기간이 포함되는 40년으로 봅니다. 따라서 이 둘을 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430년과 같은 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이러한 상징행위는 심판과 동시에 대속의 기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17절을 보면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삼백 구십일에 먹되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너는 그것을 보리 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흩을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경겁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민답 중에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결핍하여 피차에 민답하여 하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하는 그 날 수 동안 먹을 양식과 마실 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여섯 가지 혼합 곡물로 떡을 만들어 옆으로 눕는 날 수대로 먹는데 그 양이 이십 세겔과 물은 육분의 일 힌 입니다. 이것은 한 끼의 식사 분량으로도 부족한 양입니다. 그러므로 굶어죽지 아니할 정도의 양만을 저울에 달아서 먹어야 합니다. 음식과 물을 저울에 달아서 먹는다는 것은 성이 포위되거나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음식이 핍절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그리고 떡을 구워먹되 인분에 구워먹으라고 합니다. 인분은 성경에서 부정하게 여깁니다(참조. 신 23:12-14). 그런데 인분으로 떡을 구워먹으면 부정하게 되기에 에스겔이 자신은 자기 영혼을 더럽힌 적이 없다고 합니다.

 

14절을 다시 보면 에스겔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정결규례를 지켜왔다고 합니다. 마치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고 할 때에 베드로가 이런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하는 장면과 같습니다(행 10:14). 이 정도로 모든 율법을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그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셔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정한 것입니다. 에스겔의 말을 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게 합니다. 이러한 형벌이 주어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뢰하여야 할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그들의 양식을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식으로 말하면 생수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물을 저축하지 못할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그러므로 16-17절을 보면 그 양식을 끊어버리니 저울에 달아서 먹고 두려워 떨며 물을 마시며 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하여 떨며 그 죄악 중에 멸망하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되는 것은 이미 언약의 저주대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곧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6장을 보면 1-13절까지는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14-46절에서는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합니다. 저주 받는 말이 복 받는다는 말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유가 레위기 26장에 다 나와 있습니다. 14절부터 보면 ‘그러나’로 시작하면서 모든 명령과 규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면 재앙을 내린다고 합니다. 파종한 것을 대적이 먹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치신다고 합니다. 그래도 청종하지 아니하면 7배의 심판이 주어집니다(18, 21). 18-22절에서 말하는 “하늘이 철과 같이 되고 땅이 놋과 같이 된다”는 말씀은 기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수고가 헛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여도 청종하지 아니하면 다시 일곱 배의 재앙을 더 내리신다고 합니다. 들짐승을 보내어 자녀를 움키고, 가축을 멸하며, 너희의 수효를 줄인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당하여도 주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면 다시 일곱 배의 재앙을 더하신다고 합니다. 결국 최종적인 재앙이 일어난 것이 바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상태입니다.

 

계속해서 레위기 26:26절을 보면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식을 저울에 달아서 먹는 상징행위를 통하여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그들에게 레위기 26장의 말씀이 성취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하여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심한 재앙이 쏟아지는데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는 일까지 북 이스라엘에서 일어났습니다. 결국은 포로로 잡혀가게 하심으로 약속의 땅은 오히려 안식을 하게 됩니다. 레위기 26:40-46절을 보면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로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대항함으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항하여 그들이 원수들의 땅으로 끌려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여호와께서 야곱과 이삭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누가 기쁘게 그 형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많이 잘못했다고 이렇게 재앙을 받느냐고 원망을 합니다. 순순히 포로로 잡혀가서 재앙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순순히 형벌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에스겔이 대표로 여호와의 형벌을 받습니다. 390일을 왼쪽으로 누워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하고, 40일을 또다시 오른쪽으로 누워서 유다의 죄악을 담당합니다. 물론 에스겔이 기쁨으로 그 형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세움을 입었기에 에스겔은 그 죄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겔이 이 죄를 담당하는 일에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지금 주의 영에 의해 죄를 담당하는 에스겔은 이것이 자신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의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형벌을 기쁘게 받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영으로만 됩니다.

 

그런데 그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의 땅에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며 그들과 맺은 언약을 폐하지 아니함으로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바벨론이며 유배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살며 고생하는 것이 다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여기며 이 벌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기쁨으로 이런 환난을 맞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홀로 이 저주와 재앙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일이 그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줄 알고 십자가에서 대신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살리시고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이제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성령을 받은 자는 놀랍게도 세상의 환난을 기쁨으로 맞이합니다(참조. 벧전 4:12-19).

  

야고보서 1:1-4절을 보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욕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한 고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이 있다면 그것을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이 바벨론이라는 유배지기에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세상의 힘을 믿지 않고 살려고 하면 집안에서 먼저 핍박을 받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살려고 하면 교회에서도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핍박을 기쁨으로 견뎌내라고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이 상징행위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보여주었듯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거꾸로 사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상징행위가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날 우리에게 임하는 환난의 의미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환난을 인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장차 나타날 그 영광을 소망하며 현재 환난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복음의 파수꾼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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