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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12:1-28
강설날짜 2018-04-15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여호와의 묵시가 응하리라

말씀:에스겔 12:1-28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20절 말씀은 두 개의 상징행위와 그에 대한 해석이고, 21-28절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한 상징행위와 해석을 통해서 선포되는 여호와의 묵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이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네가 패역한 족속 중에 거하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에스겔을 인자라고 부르시면서 “네가 패역한 족속 중에 거하도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패역한 족속’이란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을 보고 듣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으면서도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현혹이 되어서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3-7절을 보면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너는 낮에 그 목전에서 네 행구를 밖으로 내기를 이사하는 행구 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 되어 가는 자 같이 하라. 너는 그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좇아 옮기되 캄캄할 때에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우고 땅을 보지 말찌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그 명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구를 이사하는 행구 같이 내어 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구를 내어다가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상징적인 행위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행할 이 상징적인 행위는 누가 봐도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포로의 행장을 꾸려서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 앞에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라고 합니다. 처소가 옮겨지고 그들의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짐을 옮기며 캄캄할 때 그 짐들을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3절에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곧 그들이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에스겔의 상징행위를 보면 몇 명이라도 깨닫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8-16절을 보면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패역한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하셨다 하고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 대로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갈찌라.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친 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온역을 벗어나게 하여 그들로 이르는 이방인 중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첫째 상징행위에 대한 해석입니다. 10절을 다시 보면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하셨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고 하였습니다. 곧 예루살렘의 왕이 도망가다가 잡혀서 바벨론에 끌려와서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한 징조입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이 아직도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건재하기에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하나님의 묵시를 상징행위와 해석을 통해서 왕과 백성들이 다 사로잡혀 오게 될 것을 분명히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15절에 보면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친 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온역을 벗어나게 하여 그들로 이르는 이방인 중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멸망과 심판 중에도 몇 사람을 남겨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여서 그들이 이르는 이방인 가운데서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그들로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7-20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식물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 이 땅 백성에게 말하되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거민과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그들이 근심하면서 그 식물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은 이 땅 모든 거민의 강포를 인하여 땅에 가득한 것이 황무하게 됨이라. 사람의 거하는 성읍들이 황폐하며 땅이 황무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두 번째 상징행위에 대한 해석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임하여 음식을 먹을 때는 떨면서 먹고 물을 마실 때는 놀라고 근심하면서 마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거민과 이스라엘 땅에 대한 말씀인데 이 땅의 모든 거민이 포악으로 땅에 가득했기에 황폐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그들을 포위하고 있을 때 일어날 일입니다. 성이 포위됨으로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할 것을 말씀합니다.

 

21-28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하나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찌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묵시를 에스겔의 상징적인 행위와 해석을 통해서 분명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잡혀와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거짓 선지자들이 말한 거짓 희망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이 쳐들어온다고 할 때 거짓 선지자들은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쳐들어왔을 때는 성을 포위하나 곧 물러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게 되자 2년 안에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포로로 잡혀왔으니 여전히 거짓 희망에 붙들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전한 심판의 묵시가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22절을 다시 보면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라고 했습니다.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나 에스겔 선지자의 묵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된 선지자의 말은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모든 죄악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신이 보호받고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좋은 것이지 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자기 자신들의 사욕을 채워주는 거짓 선생들의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단호하십니다. 23-25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묵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사라지리라고 한 이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히려 그들이 사라지리라고 한 여호와의 묵시의 응함이 가깝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는 묵시가 응하여짐으로 인해 허탄한 묵시와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심판하시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더디지 않고 그들의 생전에 말씀하고 이루신다고 합니다.

 

26-28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하나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찌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여호와의 묵시를 이렇게 분명하게 증거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에스겔이 본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가 멀리 있는 때의 일을 예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의 말이 하나도 더디지 아니하고 내 한 말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대로 그들의 생전에 이 묵시가 응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52:4-11절을 보면 “시드기야 구년 시월 십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을 대하여 진을 치고 사면으로 흉벽을 쌓으매 성이 시드기야 왕 십 일년까지 에워싸였더니 그 사월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하였더라. 갈대아인이 그 성읍을 에워쌌더니 성벽을 깨뜨리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인의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미치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그들이 왕을 잡아가지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를 신문하니라.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또 립나에서 유다의 모든 방백을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여호와의 묵시를 받아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 보여준 포로로 잡혀가는 모습과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며 물을 마시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바벨론 왕이 쳐들어와서 삼 년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중에 양식이 떨어집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왕이 성벽 사이로 도망가다가 붙잡혀 바벨론 왕 앞에 끌려갑니다. 자기 눈으로 두 아들이 죽임 당하는 것을 보고 그 후에 자신도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합니다. 시드기야 왕도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왕에게 순종하라는 말을 믿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그들의 생전에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라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이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렘 22:21). 그러므로 여호와의 묵시가 그대로 응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말씀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 핍박을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왜곡하여 사람들에게 좋게 하여 주는 자들은 언제나 다수였고, 그 사회의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묵시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박국 2:2-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어떻게 악인이 형통한지에 대한 질문에 여호와께서 대답합니다. 그 대답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고 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응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여전히 옛날처럼 세상의 원리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까? 오늘날 정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연일 분주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치가 바른 정치입니까?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정부를 말합니다. 이런 정부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사람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유지됩니다. 말씀에 의한 말씀을 위한 세계가 피조세계입니다.

 

베드로후서 3:1-1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시대나 하박국 시대나 베드로 사도가 살던 시대나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나 간에 동일한 현상이 무엇입니까?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묵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3:18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가룟 유다의 배신도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이 예수님께 응합니다(요 15:25).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구원하시는 것도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요 18:9). 십자가의 고난과 그 옷을 제비 뽑는 것과 목마르다 하신 것과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한 것도 다 말씀을 응하게 하심입니다(요 19:24, 28, 36).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묵시를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이 역사 속에서 응하여 집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보이는 하늘과 땅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참조. 벧후 3:7; 계6:14). 그래서 지금도 온 세상은 늘 요란하고 흔들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사도 늘 흔들리고 요동칩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 12:24-29절을 보면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모세 때는 시내산이 진동하였습니다. 이런 모세의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아니하다가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 언약의 피를 뿌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고 하십니다. 이제 하늘과 땅을 흔들어 버리십니다. 이것을 아는 성도들은 세상의 흔들림이나 개인사의 흔들림에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흔들릴 것들을 흔들어버림으로 흔들리지 아니할 영원한 묵시의 성취만 남기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묵시가 반드시 이루질 것을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흔들리고 없어질 이 세상의 것을 붙들고 살지 않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 곧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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