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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16:44-63
강설날짜 2018-05-20

2018년 에스겔서 공부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말씀:에스겔 16:44-63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에스겔 16:1-43절 말씀을 통해서 창기보다 못한 예루살렘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이 보다 더 나아가서 소돔보다 더 부패하고 가증한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런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4-46절을 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무릇 속담 하는 자가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속담 하는 자가 하는 속담이 무엇입니까? “어미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미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어미란 헷 사람이며, 그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형은 그 딸과 함께 네 좌편에 거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과 함께 네 우편에 거하는 소돔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 어미가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우고 자기 자식을 우상에게 바친 것처럼 지금 예루살렘이 그 남편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온갖 우상숭배를 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은 지역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동쪽을 향해 바라보면 왼쪽에는 사마리아이고, 오른쪽에는 소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한 예루살렘을 사마리아와 소돔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7-52절을 보면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치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치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치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한 고로 너의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네가 네 형과 아우를 논단하였은즉 너도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 네가 그들보다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므로 그들이 너보다 의롭게 되었나니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은즉 너는 놀라며 네 수치를 담당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와 소돔보다 그 모든 행위가 더 부패하였다고 합니다.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이 범한 죄의 절반도 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형으로 표현되는 사마리아가 우상의 신전을 성전이라고 하며, 그 신전 안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기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2장). 소돔과 고모라는 창세기에서 성적인 부패와 타락이 동성연애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그 성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 마저 동성연애를 하겠다고 롯에게 내어 놓으라고 한 것입니다(창 19장).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러한 사마리아와 소돔보다 더한 악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소돔이 하늘에서 쏟아진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곧 남 유다는 이러한 심판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사마리아와 소돔이 상대적으로 의롭게 되었을 정도로 예루살렘의 부패와 죄악이 가득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오늘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이런 말씀이 멀리 구약에 있는 이야기라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관한 이 말씀은 바로 오늘날 우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예루살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곧 오늘날 우리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돔의 죄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49-50절을 보면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소돔의 죄악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교만이라고 합니다. 소돔이 왜 교만하였습니까?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지역이 아주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창세기 13:10-11절을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람과 조카 롯이 애굽에서 나온 후 벧엘과 아이 사이에 진을 쳤는데 하나님의 축복으로 소와 양이 너무 많아 아브람의 목동과 롯의 목동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골욕이라 서로 다투지 말자고 하며 “네가 좌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죄하리라”고 하면서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롯이 선택한 땅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그런데 롯이 왜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 것입니까?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비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돔과 고모라는 물이 많고 비옥하여 음식물이 풍족하고 또 전쟁도 없어서 태평하였기 때문에 그 마음이 교만하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만하며 가증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 소돔의 가증한 일이란 창세기 19장에서 본대로 성적인 타락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성적 타락만 말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의 죄악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9-50절을 다시 보면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돔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없이하셨다고 합니다(50).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투 운동으로 인해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성추행과 성폭행이 각 분야에서 만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종교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참으로 오늘날 이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음식물이 풍족하고 태평하게 지내면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외면하면서 끊임없이 재산을 증식하고자 합니다. 특히 자비의 사역을 행해야 할 교회가 이것을 축복인양 설교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은 것이 저주임을 야고보서 5장에서 분명히 증거합니다. 야고보서 5:1-3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앞장서서 세상의 부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며 부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길이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엣 것을 찾기보다 땅에 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교회가 사마리아와 소돔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마리아와 소돔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서도 결국 멸망한 예루살렘보다 더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무엇을 추구 하고 있는지를 보면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추구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세상의 풍족함과 태평을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아니면 자기 영광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면서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사람을 많이 끌어 모아 대형교회를 이루고자 합니다. 이것이 목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교회를 세우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직 목회 성공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기업이 되었다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사마리아와 소돔같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과 이 교회를 바라보실 때 어떻게 바라보시겠습니까?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와 우리 교회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소돔과 고모라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루살렘에 전하였습니다. 이사야 1:10-15절을 보면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1:3-4절에 보면 예루살렘의 관원과 백성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백성이 소와 나귀보도 못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의 관원과 백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신에게 정성을 바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범죄를 덮어주고 풍요와 다산을 위하여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며 성전에 나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의 관원과 백성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50절을 다시 보면 이런 소돔을 하나님께서 없이 하셨다고 합니다. 곧 심판하여 멸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도 소돔처럼 진멸당해야 마땅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황불에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셨습니다. 이사야 1:9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소돔보다 나은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성적으로 문란하지 않다고 여기십니까?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한 현실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성경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 성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로 탄식하는 롯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차고 넘칩니다. 쏟아지는 설교는 태산과 같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 땅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입니다. 불로 심판받아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조금 남겨두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조금 남겨진 자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53-58절을 보면 “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사마리아와 그 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의 사로잡힌 자의 사로잡힘을 돌이켜서 너로 네 수욕을 담당하고 너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부끄럽게 하리니 이는 네가 그들에게 위로가 됨이라. 네 아우 소돔과 그 딸들이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요 사마리아와 그 딸들도 그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며 너와 네 딸들도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니라.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 곧 네 악이 드러나기 전에며 아람 딸들이 너를 능욕하기 전에며 너의 사방에 둘러 있는 블레셋 딸들이 너를 멸시하기 전에니라. 네 음란과 네 가증한 일을 네가 담당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그의 딸들과 사마리아와 그의 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희 사로잡힌 자의 사로잡힘을 풀어주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부끄럽게 된다는 말씀인데 그런데 이때에 사마리아와 소돔을 먼저 풀어주시면서 예루살렘도 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로 사마리아와 소돔이 위로가 된다고 합니다. 한 때는 예루살렘이 교만하여 소돔에 대하여는 입으로 말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이렇게 교만할 때는 아직 그들의 악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악이 드러났을 때에는 사마리아보다 소돔보다 더한 악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그들의 악을 다 드러내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에 자신들의 죄를 알고 부끄럽게 여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모습은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창기들을 말하지도 않을 정도로 자신들이 의롭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그들에게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마 9:12-13). 그러므로 스스로 의롭게 여긴 자들은 이런 예수님을 배척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있는 교회의 모습이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단지 교회 다닌다는 것만으로 자신들은 의인이 된 것처럼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이름의 힘을 가지고 그들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한 자들은 복음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와 소돔보다 더 악한 모습이듯이 오늘날 우리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59절을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마리아의 멸망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예루살렘이 멸망을 받은 것보다 더한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우리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어떤 불평과 원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기에 우리는 범사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영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드러내시면 그제야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60절을 보면 ‘그러나’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어렸을 때에 세운 언약이란 시내산 언약을 말합니다. 들판에 버려진 계집아이처럼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광야에서만이 아니라 가나안에서도 거듭 언약을 배반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멸망을 선포하지 않고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들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이 영원한 언약은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 36장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새 언약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 영원한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61-63절을 보면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네 형과 아우를 네가 접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와 소돔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마리아와 소돔을 예루살렘의 딸로 주시는데 이것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이 언약을 지켰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언약을 이루어내심을 통하여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실 때에 이렇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63절에 보면 영원한 언약 이행의 결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63). 그런데 이 일이 언제 일어납니까?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에 대하여 초대교회 사도들과 지도자들의 회의가 열립니다. 이방인들이 아무 조건도 없이 주의 백성으로 돌아올 때에 이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말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언약이 성취되는 모습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사마리아와 소돔보다 더 악을 행한 예루살렘에게 새 언약을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새 언약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위엣 것을 사모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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