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1,036
  • 어제방문자 : 
    1,066
  • 전체방문자 : 
    1,159,546
조회 수 10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20:1-9
강설날짜 2018-06-17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애굽에서의 우상숭배

말씀:에스겔 20:1-9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이스라엘 방백들에게 애가를 지어 부르라고 하시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몇 주간에 걸쳐서 에스겔서 20장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곧 애굽에서의 우상숭배(1-9)와 광야에서의 우상숭배(10-26),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우상숭배(27-29)와 에스겔 시대의 우상숭배(30-44)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애굽에서의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절을 보면 “제 칠년 오월 십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인자야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 너는 그들로 그 열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라고 합니다. 여기 1절에서 말하는 ‘제 칠년 오월 십일’이라는 말은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인해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온지 7년이 지난 오월 십일(B.C. 591)을 말합니다. 이때 포로로 잡혀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 중에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묻기 위해 에스겔 선지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앉았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백성의 장로들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라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3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서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들이 에스겔에게 묻기 위해 온 것은 자신들이 언제 포로에서 돌아가게 되는지를 묻기 위해서 온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그들 조상들의 가증함을 알게 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여호와께서 그들이 묻기 위해서 오지만 목숨을 걸고 용납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행한 가증한 일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행한 여호와 앞에 가증한 일이 무엇입니까? 5-6절을 보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었노라.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에게, 특히 에스겔 선지자에게 묻기 위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너희가 내게 묻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들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 묻기 위해서 나온 그 마음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20장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 상태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답답한 일을 당할 때나 무슨 심각한 일이 생기면 목사나 장로님께 묻기 위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백성의 장로들이 에스겔에게 묻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묻기 위해 나온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우상숭배로 가득한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명백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오기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명백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렘 25장).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70년이 차야 돌아온다는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묻기 위해 나온 것은 그런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당에게 묻기 위해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당을 사랑해서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무당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성의 장로들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묻기 위해 나온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에서 묻기 위해 나온 그들에게 “너희가 내게 묻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조상들의 죄를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조상들의 마음이 너희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다시 보면 옛날에 애굽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그들을 불러내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들에게 맹세하시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우상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라고 합니다. 이 7절 말씀을 새 번역으로 보면 “내가 또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각자 눈을 팔게 하는 우상들을 내던지고, 이집트의 우상들로 그들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주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였는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서는 ‘눈을 드는바’라고 했는데 새 번역에서는 ‘눈을 팔게 하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우상이란 보암직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 때에 곧 그들이 출애굽하기 전에 애굽은 그 당시에 세계를 지배하던 대 제국이었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불가사의 한 일을 이야기 하면 언제나 앞 순위를 놓치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애굽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입니다. 이런 불가사의 한 문명을 이룬 나라가 애굽입니다. 애굽의 이런 문명이 그들의 눈을 끌게 하고, 눈을 팔게 하며, 눈을 홀리는 우상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보면 우리의 눈을 팔게 하는 온갖 우상들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제품이든 사람이든 보암직한 우상들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의 일상이 전부 눈을 홀리고 있는 것들입니다. 오늘날은 보암직한 것을 제공하지 않으면 텔레비전 채널도 곧바로 돌려버립니다. 회사에 취직을 하고자 해도 외모를 보기에 남자들도 성형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취직도 보암직한 것을 추구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중소기업에 들어가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입니다.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보암직한 것들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씀을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수천 년 전에 애굽에서 살든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든지 우상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이 우리 인생들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2절을 보면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곧 우리가 믿음 안에 있지 않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이끄는 대로 끌려간 것이 바로 우리 인생들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에게 눈을 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이들의 본성이 어떠한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눈을 끄는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들이 반역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눈을 끄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진노를 이루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출애굽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 진노를 쏟으시는 것은 바로의 고집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고집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인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분노를 쏟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바로의 강퍅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함께 심판하시는 것이 출애굽 때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 왕의 고집만을 심판하신다면 열 가지 재앙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땅에는 전혀 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열 가지 재앙 중에서 처음의 피 재앙과 개구리 재앙과 이의 재앙은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동일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재앙이 구별되어 나타나는 것은 파리 재앙 때부터입니다(출 8:22-23). 이렇게 구별하시는 것은 이런 재앙이 히브리 민족의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임을 애굽으로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함께 일어나는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언약이나 출애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애굽에서 종으로 살지만 먹고 배부른 것으로 만족하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고역이 가중되자 하나님께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여 달라고 하는 것이 애굽에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로 만족하는 모습이 바로 우상숭배에 끌려 사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은 분노와 진노를 쏟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를 쏟으시면 보암직한 제국인 애굽과 함께 진멸당하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앞에 나타나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인도하다’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야차’(ax;y:)인데 이 단어는 히필형으로 ‘인도하여 내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그렇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결코 이스라엘을 위함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자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여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열 번째의 재앙 곧 장자 재앙은 이스라엘과 애굽의 구별이 없이 오직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집만이 처음 태어난 남자와 짐승의 처음 태어난 수컷이 산다는 재앙이었습니다.

 

에스겔서 20장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살던 바벨론 지역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애굽이나 광야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이나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이나 간에 모두가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그런 세상에서 우상에게 끌려가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곳에서 빼어내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어린양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사로잡아 내어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로 잡혀 오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만 그러나 그 사로잡은 주님의 손길이 영원하기에 결코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끌고 가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상에게 눈이 팔려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이 하나님의 변함없고 놀라운 사랑 가운데 굳게 세워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찬양하며, 오직 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사랑하며, 좇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에스겔 20장 말씀은 비유로 말씀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며 우상숭배를 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 행한 가증한 일을 말씀하십니다. 시기별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기간과 출애굽 하여 광야의 기간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던 기간과 포로로 잡혀간 기간을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을 거역하지 아니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역사전체를 통하여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 각자의 인생에 대입하여 보면 우리도 우리 인생 전체가 반역의 역사임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반역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3:9-18절에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 하는 분이 있습니까? 아직 인간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실상이 이러하다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 구약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에스겔 20:1-9절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동안 어떻게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을 반역했는지를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 오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동안 우상을 섬겼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모세 오경에는 없지만 오늘 본문인 에스겔서와 여호수아에서는 언급이 됩니다. 그런데 출애굽을 다루는 모세 오경에서는 왜 애굽에서의 우상숭배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없었을까요? 그것은 아예 우상 속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호수아서 24: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보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합니다. 여기서 ‘강 저쪽’이란 유프라테스 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살던 곳의 우상을 말합니다.

 

여호수아서 24: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 즉 유프라테스 강 저쪽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기에 아브라함도 그런 우상의 영향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언약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하시기를 씨와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시면서 타국에서 사대 만에 돌아와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차지할 것이라고 언약하셨습니다.

 

창세기 15:12-21절을 보면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 언약대로 야곱의 때에 애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나온 곳도 우상숭배지인 바벨론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애굽도 우상의 나라였습니다.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온 세상이 다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입니다. 이런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젖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오경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이렇게 여호수아서와 오늘 우리가 보는 에스겔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우상숭배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출애굽 하여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애굽의 우상숭배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끌어 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바벨론이라는 이 세상의 우상숭배에서 이끌어 내사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굳게 서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765 [에스겔 29장] 애굽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 file 겔 29:1-21 손재호 2018-10-14 30
764 [에스겔 28장] 시돈이 받을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 file 겔 28:20-26 손재호 2018-10-07 66
763 [에스겔 28장] 두로 왕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 file 겔 28:1-19 손재호 2018-09-30 82
762 [에스겔 27장] 두로를 위하여 애가를 지으라 file 겔 27:1-36 손재호 2018-09-23 64
761 [에스겔 26장] 두로가 받을 하나님의 심판 file 겔 26:1-21 손재호 2018-09-16 83
760 [에스겔 25장] 에돔과 블레셋이 받을 심판 file 겔 25:12-17 손재호 2018-09-09 76
759 [에스겔 25장] 암몬과 모압이 받을 심판 file 겔 25:1-11 손재호 2018-09-02 83
758 [디모데후서 4장]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file 딤후 4:6-8 송다니엘 2018-08-26 88
757 [에스겔 24장]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리라 file 겔 24:15-27 손재호 2018-08-19 92
756 [에스겔 24장] 녹슨 가마 같은 예루살렘 file 겔 24:1-14 손재호 2018-08-12 102
755 [에스겔 23장]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행음 file 겔 23:1-49 손재호 2018-08-05 98
754 [에스겔 22장]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file 겔 22:1-31 손재호 2018-07-29 92
753 [에스겔 21장] 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file 겔 21:1-32 손재호 2018-07-22 94
752 [에스겔 20장]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file 겔 20:45-49 손재호 2018-07-15 112
751 [에스겔 20장]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file 겔 20:33-44 손재호 2018-07-08 105
750 [에스겔 20장] 약속의 땅에서 우상숭배 file 겔 20:27-32 손재호 2018-07-01 89
749 [에스겔 20장] 광야에서의 우상숭배 file 겔 20:10-26 손재호 2018-06-24 95
» [에스겔 20장] 애굽에서의 우상숭배 file 겔 20:1-9 손재호 2018-06-17 104
747 [에스겔 19장] 너는 애가를 지어 부르라 file 겔 19:1-14 손재호 2018-06-10 128
746 [에스겔 18장] 아비의 죄악과 아들의 의 file 겔 18:1-32 손재호 2018-06-03 12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9 Next
/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