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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20:10-26
강설날짜 2018-06-24

2018년 에스겔서 공부

광야에서의 우상숭배

말씀:에스겔 20:10-26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에스겔서 20장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우상숭배 한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여 구원함을 받은 것은 그들에게 무슨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상숭배로 인해 심판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여 내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여 내셨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내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여 내시고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시고 광야로 들여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들어가기도 전에 홍해 바다에서부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 원망이 무엇이었습니까? 출애굽기 14:9-14절을 보면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데 미치니라.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출애굽을 하였지만 애굽의 병거가 곧 추격하여 왔습니다. 앞에는 홍해 바다요, 뒤에는 애굽의 특별병거 6백대와 모든 병거가 있습니다. 좌우로는 산들이요 진퇴양난입니다.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며칠 전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어버리고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기고자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것이 광야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 모세는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싸우실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언제나 인간의 불가능과 원망과 우상숭배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설교들이 마치 홍해 바다 앞에서 물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내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축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망하며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그 때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라진 바다를 마른 땅 같이 건너고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는 홍해 바다에 다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출애굽기 15:1-18절을 보면 모세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을 합니다. 이에 출애굽기 15:19-21절에 보면 미리암과 백성들이 화답을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는 큰 용사라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찬양이 입에서 끊어지기도 전인 3일 만에 물이 떨어지자 또 원망을 합니다. 출애굽기 15:22-24절을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달 보름 만에 양식이 떨어지자 다시 원망을 합니다. 출애굽기 16:1-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출애굽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만 율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물을 주시면서, 또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면서도 율례를 주셨습니다. 그 율례 중에 하나가 바로 안식일입니다. 오늘 본문 10-24절을 보면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 중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 규례를 시내산에 이르기 전에 이미 광야에서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6:26-27절을 보면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제 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매일 하루치양만 거두어 그날의 양식은 그날에 다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에 순종치 않고 남겨 두었다가 벌레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기 위해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그들 중에 나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키지 않은 계명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공부할 때 안식일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만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까?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는 천지 창조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0:11절을 보면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약 40년이 지나서 모압에서 언약을 갱신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십계명의 내용과 조금 달라집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가 애굽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지키라고 합니다. 신명기 5:15절을 보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안식일을 지키라고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안식일이 이렇게 중요합니까? 안식일이 중요한 것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안식일이 언약의 표징이 되는 것입니까? 안식은 말 그대로 일하지 않고 쉬는 것입니다. 안식은 히브리어로 ‘솨바트’(tB;v')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혜택을 일한 것이 없이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도 일한 것이 없이 은혜의 선물로 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어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과 구원의 선물을 거부하는 반역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애굽의 사고방식입니다. 나의 노동이 나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노동으로 사는 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노동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안식일의 쉼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 10-1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들로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의 위에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고 했습니다. 자기 노동으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광야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물도 양식도 없는 곳에서 사람이 준행하면 삶을 얻을 수 있는 율례와 규례를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만나 사건에서 보았다시피 그들은 안식일을 어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전부를 어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어긴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할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여호와의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다고 합니다. 마땅히 진멸을 받아야 하지만 진멸하지 아니한 이유는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진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다 죽게 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진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5-17절을 보면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 보아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 하지 아니하였었노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신 이유는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여호와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꼈다’는 것 역시 무언가 예쁜 구석이 있어서 아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을 아끼는 것은 귀할 때에 아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끼신 것은 그들에게 무슨 이쁜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의 규례를 업신여겼지만 여호와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아껴두신 것입니다.

 

18-24절을 보면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열조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내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내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금하고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치리라 하였었나니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라고 했습니다. 18절에 보면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말씀하십니다. 10-17절까지는 광야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8절 이하는 광야 2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 1세대가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않아서 광야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 다음 세대 역시 여호와의 율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지만 이들 역시 여호와의 규례를 어기고 안식일을 더럽혔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분노를 쏟으며 진노를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애굽에서도, 광야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고 율례를 멸시하며 안식일을 더럽혔습니다. 눈으로 그들의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하였습니다. 민수기 14:2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10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10번이라면 약 4년에 한번씩 입니다. 그러나 10번이란 평소에도 늘 반역하는 마음이 들끓고 있다가 폭발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항상 반역하는 마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마음에는 늘 우상을 사모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은 이들을 출애굽 시키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셔야 합니다. 이 사이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이런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별세시켜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여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늘 우상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렘 31:31-33). 그러나 그들 마음은 애굽의 우상을 사모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끌려나오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서 천사의 손에 끌려 나오면서도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마음이 가득하여 뒤를 돌아본 롯의 처와 같은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본문 25-26절을 보면 “또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계속하여 여호와를 거역하는 그들에게 옳지 않은 율례와 목숨을 살리지 못하는 규례를 주어서 지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바울의 서신을 가지고 율법이 사람을 죄 아래 가두는 역할로 해석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26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의 맏아들을 제물로 바치도록 하나님께서 시키셨다는 말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심지어 자신들의 아들을 몰렉에게 불에 태워 제사를 드리는 일을 여호와께서 시키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원해서 한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장의 말씀대로 그들의 완악한 대로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막지 않으시면 그런 모습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을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하는 자들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아서 사탄의 거짓된 역사를 따라 가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이런 항의들이 이미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죄악된 반응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 이런 항의를 평소에 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한번 범사에 감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듯이 전부 다른 사람과 심지어 하나님까지 원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셨다면 우리는 이미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심판하지 아니하신 것은 길이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구원받을 만한 때요 은혜의 때입니다(고후 6:2).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광야이며, 나그네의 삶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다 죽고 떠나야 합니다. 이 땅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 불타 없어집니다(벧후 3:7). 그러므로 이 땅이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늘 섬기고 있는 온갖 우상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속히 다시 오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땅이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통해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참된 소망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섬기는 모든 우상숭배의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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