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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20:27-32
강설날짜 2018-07-01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약속의 땅에서 우상숭배

말씀:에스겔 20:27-32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도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10-26). 애굽에서 우상숭배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해 출애굽 시켜주셨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면서까지 출애굽 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출애굽 하여 광야에 나왔지만 그들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광야 1세대들을 다 광야에서 죽이셨습니다.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아무리 가나안 원주민들이 강하고 성벽이 튼튼하고 무기가 우수하다 해도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민 14:9).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에 신실하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과 함께 출애굽 때 20세 미만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들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서 5:1-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요단 물을 말리시고 건너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나안과 그 주변의 왕들과 사람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요단을 건넌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할례를 행하게 합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은 할례를 행하지 못했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여호수아가 그곳 지명을 길갈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수치를 다 굴러가게 하고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애굽의 수치와 광야의 수치를 할례를 행하듯이 다 잘라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여호수아 24:3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광야 2세대의 장로들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여호와를 섬겼다고 합니다. 이 말은 그 후의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 후 시대가 사사시대인데 이스라엘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그 결과 온갖 음행과 우상숭배가 만연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도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그런즉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열조가 또 내게 범죄 하여 나를 욕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와 있는 그들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조상들이 범죄 한 것은 애굽과 광야에서 범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다 진멸해 버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28절을 보면 “내가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였더니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거기서 또 분향하고 전제를 부어 드린지라”고 했습니다. 27절과 28절 말씀의 중간에 아무런 접속사가 없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범죄 하여 나를 욕되게 하였고 또 나를 욕되게 하였다면 약속의 땅에 들여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약속의 땅에 들여놓는가 하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으로 오늘 본문 27-28절을 보면 “그러니 너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며 일러라. 너희의 선조들은 나를 배신하여 나를 모욕하였지만 나는 손을 들고 그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이끌어 들였다”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으로 보면 27절과 28절 말씀을 ‘∼하였지만’이라는 단어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여호와를 배신하고 모욕하였지만 여호와는 그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이끌어 들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는 배신뿐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약속의 땅에 들여놓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3-5절을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노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까?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3절과 4절 사이에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3절과 4절 사이에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들어가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새 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넣어서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약을 배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셔서 그 언약을 이루어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다시 보면 “내가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였더니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격노케 하는 제물을 올리며 거기서 또 분향하고 전제를 부어 드린지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도, 광야에서도 배신하고 범죄 한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여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그들이 한 짓이라고는 우상숭배를 하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사시대와 열 왕들의 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온 자들이 어떻게 배신하였는지 사사기를 통해서 보겠습니다. 사사기 18장에 보면 미가 집안에서 우상숭배 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미가 집안이 레위인을 집안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그 이유는 복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단 지파가 그곳으로 지나다가 이 레위인을 자기들의 제사장으로 데려갑니다.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제사장 하나 세워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이런 모습이 바로 우상숭배의 모습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백성들이 왕이 없음으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사사시대를 지나고 왕들의 시대가 됩니다. 왕이 없어서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면 이제 왕이 세워졌으니 제대로 여호와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왕들이 세워져도 여전하였습니다. 초대 왕인 사울왕도 제대로 왕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민심수습차원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아내를 천 명이나 두었습니다. 특히 이방 나라와 정략적인 결혼을 했기에 그들이 들여온 우상을 위한 신전도 많이 지어준 것입니다. 그 결과 솔로몬 사후에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졌을 때에 북 이스라엘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열왕기서 공부를 통해서 보고 있듯이 단과 벧엘에 신전을 지어놓고 그 안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원하는 자를 아무나 세웁니다. 그리고 절기도 유다와 비슷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금송아지가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게 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이렇게 한 이유는 자기 백성들이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면 남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갈 것이 두려워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한 것입니다. 그로인해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먼저 멸망합니다. 그러면 남 유다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남 유다도 이에 못지않게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이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하였노라 (그것을 오늘날까지 바마라 일컫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약속의 땅에 산당이 얼마나 많았는지 여호와께서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산당이 무엇이냐는 여호와의 책망을 듣고서 그들이 산당을 ‘바마’(hm;B)로 불렀습니다. ‘바’는 다닌다는 뜻이요, ‘마’는 무엇이냐라는 뜻이기에 산당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런 산당이 얼마나 많았는지 예레미야 11:9-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곤액 중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치 못하리라.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효대로 그 수치되는 물건의 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단을 쌓았도다.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는 동 시대의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합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다고 합니다. 그 반역이란 여호와의 말씀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을 섬긴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깨뜨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이들이 평소에 섬기던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어도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평소에 섬기던 그 신들이 성읍의 수와 같다고 합니다. 또 예루살렘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남 유다에 성읍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읍의 수만큼이나 신들이 많았고 가장 큰 성읍이 예루살렘인데 이 예루살렘에는 그 거리의 수대로 바알의 제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이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자들에게도 임한 말씀입니다. 이들이 에스겔에게 나아와서 묻습니다. 에스겔 20:1-3절을 보면 “제 칠년 오월 십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이 여호와께 묻기 위해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나아왔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묻기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이 집행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30-3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열조의 풍속을 따라 스스로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좇아 행음하느냐. 너희가 또 너희 아들로 화제를 삼아 예물로 드려 오늘날까지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는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평소에는 우상숭배만 하다가 위기가 오니 여호와께 묻기 위해 나온 그들에게 묻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서에서도 오늘 본문 에스겔서에서도 나옵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우상이 바알입니다. 바알은 풍요와 다산의 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 안에는 바알이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호세아 2:1-23절을 보면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 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음란한 여인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것으로 온갖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우상인 바알을 향해 내 남편이라고 하면서 따라 나선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바알을 섬긴 날 수 대로 심판하시고 다시 데려오십니다. 1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평소에 자기 남편이라고 따라간 자가 바로 바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교회당으로 왜 이렇게 모입니까? 우리가 이곳에 모여서 나의 소원과 나의 만족을 위해 구하고 있다면 이곳이 바로 바알의 전이 됩니다. 내가 지극한 정성을 바쳐서 내가 평소에 원하는 소원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것이 바알의 전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 몇 개의 바알의 전이 있겠습니까?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골목마다 바알의 전입니다. 이런 바알의 전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여 내시는 것입니까? 바알을 따라가는 자를 가시로 막고 담으로 막아도 따라가는 그들을 완전히 심판하여 돌이키십니다. 지금 에스겔과 예레미야와 호세아와 오늘날 이 시대를 함께 연결하여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여전히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는 우상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오늘 본문 32절입니다.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열국 족속 같이 되어서 목석을 숭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32). 우리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 족속 같이 되어서 목석을 숭배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들의 마음에 품은 생각입니다. 우상숭배로 인해 포로로 잡혀와 있는 중에도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우상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벨론이라는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품고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본문 32절을 다시 보면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우리의 평소 마음이 늘 우상숭배이기에 결코 우리 마음에 품은 대로 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이 우상숭배로 가득하면 할수록 범사에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뜻대로 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십자가 사건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이런 모양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나의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이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 과정이 연단입니다. 연단을 통해 나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늘 우상을 품고 사는 자들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로 나의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이루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늘 우상을 품고 사는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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