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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20:45-49
강설날짜 2018-07-15

2018년 에스겔서 공부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말씀:에스겔 20:45-49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에스겔서 20장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을 일으키셔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없애버리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이 비유로 들리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에스겔 선지자를 향하여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듣는 에스겔 자신도 괴로운 것입니다. 49절을 새 번역으로 보면 “내가 아뢰었다. 주 하나님 그들은 저를 가리켜 말하기를 모호한 비유나 들어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비유로 말하는 자라는 의미와 그 비유인 불로 태우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스겔 20장에서는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비유형식입니다. 하나님이 남편이 되시는데 그 남편을 배반하고 다른 것을 남편이라고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음행이며,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에스겔 선지자를 향하여 비유를 말하는 자라고 한 것은 그들이 전혀 에스겔 선지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여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는 말이 비유이긴 하지만 그들이 분명히 알 수 있는 내용들 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에스겔 선지자의 그 비유의 말씀이 자기들에게 못 마땅하기에 거부하고 것입니다.

 

성경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시는 이유는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듣게 하시고 알아듣지 말아야 할 사람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골라내시는 하나의 역사 방법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3:10-17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씨 뿌리는 비유를 듣고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묻자 거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알아들을 자만 알아듣게 하시기 위한 조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비유를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시면서 따로 비유를 설명하여 주십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씨앗이 되셔서 길가와 같고 돌짝 밭과 같고 가시덤불과 같은 우리의 마음에 열매를 맺고야 말겠다는 예수님의 뜻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이 비유를 거꾸로 해석합니다.

 

마태복음 21:45-46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알아듣습니다. 이 비유가 무슨 비유였습니까? 악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1:33-41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품꾼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출을 제대로 바치지 않고 그 주인의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마지막에는 상속자인 그 아들까지 죽여 버렸다는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후에 그 주인이 이 농부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그들이 답하기를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세를 제때에 바칠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답을 합니다.

 

계속되는 마태복음 21:42-44절을 보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자가 받는다고 하면서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고 그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가 바로 자기 자신들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그들이 화가 나서 예수를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비유의 의미를 알아듣고서는 예수를 잡아죽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심판받을 자를 심판받게 하시고 구원받을 자를 구원받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의 비유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45-48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방들의 삼림을 쳐서 예언하라. 남방 삼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멸하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찌라.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한가지 비유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에스겔의 얼굴을 남쪽으로 향하여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고 합니다. 남쪽의 숲에 여호와께서 불을 일으키시는데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맹렬한 불로 태워서 없애버린다고 합니다. 물론 이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는 사람을 말합니다.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을 그슬리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모든 혈기 있는 자(모든 육체)는 여호와임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모든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다 태우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푸른 나무란 의인을 말하고, 마른 나무는 악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모두다 태워버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롬 3:10). 그러나 성경에서 종종 의인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들도 상대적인 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푸른 나무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1절을 보면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누가복음 23:27-30절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 끌려 가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푸른 나무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예수님을 이렇게 대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른 나무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너희와 너희 자식을 위하여 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날을 내다보고 계십니다. 그 날은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로마에 의해 불과 칼로 멸망할 예루살렘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날에는 아이가 없는 여자가 복되다고 하신 것은 자기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임 당하는 것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 날에 산들을 대하여 우리에게 무너지라고 할 정도로 두려운 멸망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궁극적으로는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전 세계적인 종말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12-17절을 보면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불 심판에서 피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불 심판을 십자가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피하는 것이 얼마나 크고 영원한 복인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명백한 말씀을 모호한 비유라고 하면서 못 알아듣겠다고 하는 자들이 나오는가 하면 자기들만이 성경을 특별하게 계시를 받아서 비유로 풀 수 있다고 하는 자들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남쪽을 향하여 말하라고 하신 남쪽은 에스겔서 21:2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말씀합니다. 여기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칼로 심판한다고 합니다. 에스겔 21:1-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과 21장에서 칼로 심판하신다는 내용이 다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불과 칼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인데 오늘은 불로서 심판 하시는 부분만 보고 다음 주에 칼로서 심판하시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비유는 모호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에스겔을 향하여 비유로만 말하는 자라고 한 것은 너의 말을 듣기 싫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들은 결국 바벨론의 불과 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이러한 불로서 심판 하시는 것을 성경 전체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4:24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멸하는 불은 심판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4절을 보면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불이란 심판과 정화를 동시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여호와를 악한 말로 원망하였다가 그 진의 끝을 불살라 버리는 다베라 사건이 나옵니다. 민수기 11:1-3절을 보면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고 했습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의 원망에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신다면 이미 우리는 다 불에 살라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불을 예레미야 15장에서도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15:14절을 보면 “너로 네 대적과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한다고 하시는 말씀이 바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만에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정화가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스가랴 13:7-9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스가랴 선지자가 또 예언을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진다”고 합니다. 이 말을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인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1절을 보면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온 땅의 삼분의 이는 멸절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고 합니다.

 

말라기 3:1-2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성경에서 언약의 사자가 와서 자기 백성을 금을 연단하듯이 불로 연단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2:49절을 보면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불을 던지려고 왔다고 합니다. 평행구절인 마태복음 10:34절에서는 “칼을 던지려고 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불과 칼의 심판이 구약에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셨다면 이제 이 모든 결론은 예수님께서 불과 칼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만사형통과 행복이 아니라 불과 같은 연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5-7절을 보면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시련을 당합니다. 그런 시련을 통하여 불로 연단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나옵니다. 금이란 불로 연단되었지만 결국은 닳아서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금보다 더 귀한 것이 신앙의 연단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바로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시련으로 하여금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과 같은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단이 되지만 그렇지 아니한 자들은 마지막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이런 말씀은 비유가 아니라 실체로 나타날 때가 곧 올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타듯이 그런 날이 온 세상에 임하게 될 날이 곧 옵니다.

 

베드로후서 3:8-1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불에 타 없어질 것들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지금 불같은 시련을 통하여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나라를 받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믿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봐야 합니다. 장차 주님의 때에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극치에 이를 그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소망 가운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우리로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믿음의 연단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금보다 더한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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