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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송다니엘
성경본문 딤후 4:6-8
강설날짜 2018-08-26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본문: 딤후 4:6-8

요절: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오늘 우리는 죽음을 앞둔 사도 바울의 개인적 신앙고백을 듣습니다. 그는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합니다. 그가 먼저 디모데에게 남겨야 중요한 유언을 마치고, 개인 신앙고백으로 전체 유언서신을 마감하는 이유는,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디모데야, 너도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고난을 받으며 직무를 완수하라(5). 나는 이제 목적지에 도달했다. 달려가야 길을 달렸다. 이제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간다. 너도 나와 같이 살아서 내가 가는 곳에 오너라!”

 

말씀으로 사도는 우리도 이와 같은 삶으로 초청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의 자기 삶을 고백적으로 기술한 것이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영생의 면류관, 영광스러운 의의 왕관을 받고자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이 우리에게는 좋은 예가 됩니다. 우리는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적 가르침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삶이 어떤 것인지 배워서 우리 삶에 변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해야 합니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사역: “왜냐하면, (너와는 달리) 나는 이제 전제와 같이 부어질 것이며,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에고)라는 말이 강조되었습니다. 이것은 3:10,14; 4:5에서 바울이 그러나 , 너는으로 디모데를 강조한 것과 같습니다: “거짓교사가 복음과 다른 것을 가르칠지라도 디모데 너는 올바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사도가 우리에게, 교회 전체가 거짓교사로 가득 찼을지라도, 너만큼은 끝까지 바른 복음을 가르쳐야 한다 당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복음 사역을 더욱 열심히 섬겨야 하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백을 디모데가 조금이라도 메워야 합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자기 죽음을 가지로 표현합니다. 전제와 떠남입니다.

 

그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그는 전제와 같이 부어진다고 합니다. 전제는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번제의 희생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제사입니다( 15:1-10). 이를 통해 우리는 바울이 자기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있습니다. 바울은 절두형을 받을 것입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절두를 위해 자기 목을 나무대 위에 얹어놓고 피를 흘리게 된다면, 피는 자기를 위해 먼저 피를 흘려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그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 그가 일생 노력한 모든 사역의 절정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몸이신 희생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그의 삶은 헌신 자체였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속죄죽음을 위한 그의 반응입니다. 그는 순교로써 사역을 마치며,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신 제사의 전제 것입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떠난다는 말로 사용된 analysis라는 말은 푼다의 의미로서, 배가 정박해 있던 항구를 떠날 묶인 밧줄을 푸는 , 로마 군인이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말뚝에 묶은 천막의 끈을 푸는 등의 용어로 사용됩니다. 그는 이렇게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장소를 옮기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자기가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사역한 세상, 좁고 어두운 로마 감옥을 떠나 연약한 육신을 벗어버리고 이제 주님께 가서 그분과 온전히 연합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드디어 그는 그토록 그리던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있게 됩니다. 아무리 죽음이 폭력적으로 온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죽는 순간은 두려울지라도, 이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것이 주님이 계신 영원한 본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이곳에서 자기 삶을 세 가지로 요약해 설명합니다.

 

1)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싸움이라는 말은 아으로서 주로 적과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원형경기장의 경기를 말합니다. 바울은 온 힘을 다해서 싸웠다고 합니다. 그의 싸움은 단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그분께 이끄는 선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싸움은 끝났습니다(동사의 완료형 사용).

 

그의 싸움의 대상은 특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어두운 세력입니다. 사람은 보통 겉으로는 웃고 살지만, 속으로는 모두 어두운 세력에 눌려 삽니다. 사도는 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그리스도께서 그를 지배하시게 함으로써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풀어주십니다. 이들이 함께 주님을 경배하러 교회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악한 사람들도 들어오고, 심리적으로는 새사람이 되었지만, 존재 자체가 변하지 않아 종교생활로 만족하는 사람(대부분 신자의 경우), 또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을지라도 악한 과거의 습성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사도는 이들과 어렵게 싸우면서 훈계해야 했습니다. 특히 고린도전후서에서 그가 이 일을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에서 했는지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 개척 시에는 유대인과 주민들이 무섭게 그를 대항했습니다. 돌에 맞아서 거의 죽게 된 경우도 있었고, 험한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유대인에게 태장을 39대나 맞아 초주검이 된 적도 있었는데, 이것을 다섯 번이나 당했다고 합니다. 조난도 당하고, 굶고 목마르고 추위와 더위를 견디어야 했습니다(고후 11:23 이하 참조).

 

그는 또한 무엇보다도 거짓 교사들과 싸우고, 교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과 교회를 위한 선한 싸움입니다. 이제 이 싸움을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이 싸움이 끝나 편안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싸움을 디모데와 우리에게 물려주기 위해 이 서신을 쓰고 있습니다. 복음이 계속 전파되고 교회는 말씀으로 정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어야 합니다. 목사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이 전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

우리는 경주에서 끝까지 완주해야 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되 끝까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한동안 잘 싸웠다고 해서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지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많은 신자가 신앙생활을 어려워 합니다. 자기 자신의 정욕과 불신과 싸우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남을 위해, 주님의 교회를 위해 투신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의 싸움은 주로 다른 그리스도인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이것을 방해하는 온갖 사단의 역사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역을 위해 싸우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피곤을 느끼고 주저앉는 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죄에 대항해서 싸울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3) “믿음을 지켰다”:

믿음, 피스티스라는 말은 확신과 신실, 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믿음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설교자가 이 말을 오용하여, 신실과는 분리된 확신이라는 의미로만 사용했으므로, 믿음은 거의 자기확신의 의미로만 사용됩니다. 이것은 정말로 큰 비극입니다. 이 오해가 한국교회의 타락에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기 확신이 아니라 끝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켰다는 말은 나는 죽을 때까지 주께 신실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서에서 그에게 주께 신실하게 살라는 권고를 여러 번 했습니다. 딤후 1:11-12 말씀을 기억해보겠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어 주께 신실하게 붙어 있으면, 부활하여 왕처럼 다스리게 된다는 의미로서 오늘 본문 8절의 면류관 비유에 부합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신실하지 않으면, 승리의 월계관인 면류관을 받지 못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을 네게 주리라”( 2:10). 성경은 우리가 죽도록 신실할 것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비밀스러운 말씀을 덧붙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1:13).

 

이것은, 우리의 신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실하신 것의 결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끝까지 신실하시므로, 우리도 그분께 신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적으로 신실하지 못한 죄인이므로 우리의 신실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 은혜를 덧입어 신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실함에 상을 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와 우리의 신실함과의 관계는 더이상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한 죄인이지만, 끝까지 신실해야 하고, 또한 우리가 신실하게 살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고백인 믿음을 지켰다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신실에 대한 깊은 감동과 감사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믿음의 싸움을 끝까지 싸우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완주하고, 죽을 때까지 주님께 신실한 사람이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면류관은 승리자가 받는 월계관입니다. 그는 라고 하는 승리의 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심판대에서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심으로써 우리는 의인만을 위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일생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 그리고 의롭게 사는 , 예수님과 연합된 , 그분과의 교제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에게 가지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원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자기가 일생 애써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 것을 자기도 이것을 상으로 받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삶의 길을 달렸기 때문입니다. , 그는 자기가 가르친 대로 실행했고, 자기가 가르친 대로 살았으므로 라는 승리의 월계관을 받습니다.

 

잠깐 우리는 사도 바울이 중점적으로 가르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 의롭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보실 , 안에 있는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가시관을 쓰시고 상처를 입으신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길을 이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 온전히 의로우시고, 우리는 그분의 의로만 하나님께 나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믿음을 지켰다고 하는 것은, 그가 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벗어나 자기 능력으로 행하지 않고, 불순종하거나 자만심으로 무슨 일을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세상을 하직할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이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가 생애 동안 열심히 성실하게 섬긴 것도 단지 예수님 안에 머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문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사역을 하지 않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기 주님을 위해서도 선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놀라운 미래 사건이 자기에게만 일어날 일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는 이곳에서 단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특히 초대교회 성도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열렬히 기다렸는데, 그것은 그만큼 그들의 고난이 큰 이유도 있었지만, 이것이 우리 주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13장 하나님 나라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다시 올 자기를 맞기 위해 항상 깨어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생각과 소망이 이 땅에 머물고 뿌리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고 이 기도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의 거의 마지막 구절도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22:20)로서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은 매일 주님을 사모하며 갈망하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러면 이들은 한순간에 영원으로 들어갑니다. 의를 갈망하는 자는 주님을 기다리고, 그분이 어서 오셔서 온전히 의로 다스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따라서 신자의 실존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주님의 완전한 다스림과 주님이 오시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죄악된 세상, 죄와 사망의 육신 때문에 고난과 시험으로 신음하며 사는 사람, 세상에 전혀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만 주님의 완전한 다스림과 그분이 오시기를 사모합니다. 

 

죽어도 죽지 않고 영원토록 계속될 인간의 삶에서 그날, 우리가 영원히 거주하게 될 그곳이 결정되는 그날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날을 위해 우리는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고, 끝까지 주님 말씀에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예수님의 희생에 전제와 같이 부어지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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