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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25:1-11
강설날짜 2018-09-02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암몬과 모압이 받을 심판

말씀:에스겔 25:1-11

 

에스겔서 24장까지는 예루살렘의 심판을 중심으로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을 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적에 의해 포위가 되고 멸망하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소망이며, 기쁨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조차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자신의 아내의 죽음을 통해서 전했습니다. 25-32장까지 말씀은 예루살렘 주변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25장에서는 암몬과 모압과 에돔과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북동쪽에서부터 남동쪽과 남서쪽을 돌아가며 이 나라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26-28장에서는 두로와 시돈에 대해서, 29-32장에서는 애굽에 대해서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다른 선지서에서도 나타납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서에서 열방의 심판에 대한 말씀들을 보면 예루살렘의 심판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심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들도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공식적인 문구처럼 따라오는 말씀이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 여호와인줄 알리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암몬의 심판과 모압의 심판의 결론은 항상 “내가 주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루살렘 주변 나라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 주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무할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붙이리니 그들이 네 가운데 진을 치며 네 가운데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실과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내가 랍바로 약대의 우리를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으로 양무리의 눕는 곳을 삼은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 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붙여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 끊어 버리며 너를 열국 중에서 패망케 하여 멸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고 합니다. 지금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그런데 암몬족속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라는 것은 사실 암몬 족속보다 지금 에스겔의 예언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여호와가 누구시며, 무엇에 대하여 심판하시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물론 그 현장에 암몬족속이 없다고 해도 이 말씀대로 암몬 족속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니고 시간적으로도 약 2천 5백년이나 지났는데 왜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7:3절을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렇다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이런 것을 연구해서 내가 받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의 선물로 영생을 받은 자들이 이런 말씀을 통하여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유일 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므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왜 암몬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까? 암몬은 모압과 함께 롯과 그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족속입니다(참조. 창 19:30-3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이들의 경계를 침입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참조. 신 2:16-25). 그들을 배려한 것입니다. 그런데 암몬과 모압이 나중에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도 하고 다윗시대 때는 이스라엘에 정복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시대 때는 독립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인 변화들을 이용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챙긴 민족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다시 보면 “인자야!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무할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침략을 당하여 성소가 더럽혀지고, 이스라엘이 황폐하고, 유다 족속이 사로잡혀 갈 때에 암몬족속이 ‘아하 좋다’고 하였기 때문에 암몬족속이 심판을 받습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렇게 하였기에 다른 민족에게 넘겨 만민 중에서 끊어버리겠다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암몬은 역사 속에서 심판을 받고 사라집니다.

 

오늘 본문 8-11절을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압과 세일이 이르기를 유다 족속은 모든 이방과 일반이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모압의 한편 곧 그 나라 변경에 있는 영화로운 성읍들 벧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을 열고 암몬 족속 일반으로 동방 사람에게 붙여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암몬 족속으로 다시는 이방 가운데서 기억되지 아니하게 하려니와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압과 세일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세일은 에돔 족속이 거하게 되기에 에돔의 심판 때에 함께 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모압의 심판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압은 암몬의 형제입니다. 그러면 이 모압이 왜 심판을 받습니까? 유다 족속이 모든 이방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왜 심판을 받는 이유가 됩니까? 그들의 눈에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많아서 그런 말도 하였겠지만 다른 나라들에게 침략을 받는 약한 모습을 보면서 “너희가 믿는다는 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며 멸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도 동방 사람들에게 넘겨 다시는 이방 가운데서 기억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일에 기뻐하고, 이스라엘을 다른 이방나라와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나라가 멸망하는 심판을 당해야 하는 암몬과 모압이 억울해 보이지 않습니까? 물론 이웃이 잘못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나라가 망할 정도로 잘못한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잘못해서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뻐했다고 해서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이러한 항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의 결국은 여호와 하나님이 부당하다는 항변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추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착하고 바르게 살았는데도 단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한 지옥형벌에 처하게 하는 그런 하나님은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런 항변에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수에 칠 가치도 없다고 합니다. 이사야 2:22절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또한 인간은 안개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4:14절을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인간은 땅의 티끌이라고 합니다. 욥기 10:9절을 보면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 보내려 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항변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은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든지 그것은 토기장이의 소관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9:20-21절을 보면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이란 땅의 티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항의가 일어나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은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임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선악의 판단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선악의 판단을 하고 있기에 이런 자들을 성경은 하나님의 원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을 믿게 하시려고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12:3절을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복과 저주의 기준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항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일방적인 복과 저주의 기준을 가지고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방이 복을 받게 하십니까?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임을 알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방이 복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애굽에 내려갔다가 예쁜 아내 때문에 죽을까봐 바로 왕에게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창세기 12:10-13절을 보면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살기 위해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한 말씀도 책망 하지 않으시고 바로 왕을 혼내시는 것입니다. 다윗도 이렇게 쓰임 받습니다. 사무엘하 15-16장에 보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가는 다윗을 축복한 사람 므비보셋과 저주한 사람 시므이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임을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열방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라가 크기를 합니까? 다른 민족보다 세상에서 뛰어난 것들이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볼품이 없는 나라입니다. 큰 나라들에게 침략을 당하고 지배를 받고 그렇게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암몬과 모압과 에돔과 블레셋과 두로와 시돈과 애굽이 이들을 조롱했습니다. 그 결과 그렇게 조롱한 나라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조롱하는 가운데서 기생 라합과 같은 자들은 여호와를 믿고 나옵니다. 이런 자들이 아브라함을 축복함으로 복을 받은 자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잠언 24:17-18절을 보면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원수가 망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원수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은 단지 윤리도덕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죽고 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것을 빼앗아가는 자를 나의 원수로 여깁니다.

 

그런데 복음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22-36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열방이 받는 복이 됩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들이 다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라고 하시는 일을 믿지 않겠다고 배척하여 버린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나의 원수가 주 예수님이었기에 사람들이 합동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요한복음 1:9-11절을 보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고 빛이십니다. 이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셨기에 이 말씀이 주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땅, 곧 자기 소유물에 오셨지만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누가 영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혈육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만 영접할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을 보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자는 결코 십자가의 예수님을 주라고 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으로만이 예수님을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4:12-1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과 교회의 현실이 어떠합니까? 우리가 복을 받을 길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심판을 받을 길로 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 저주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심판 받을 세상의 것들을 많이 소유하였다고 복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베드로전서 4:17-18절을 보면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라고 했습니다. 구약으로 하면 예루살렘의 심판을 보면서 회개하는 자들은 복이 있지만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서 기뻐한 자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신약으로 하면 복음으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 회개하는 자는 복이지만 그것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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