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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33:1-33
강설날짜 2018-11-11

2018년 에스겔서 공부

에스겔을 파수꾼 삼으신 여호와

말씀:에스겔 33:1-33


에스겔서 전체 구조를 보면 1-24장, 25-32장, 33-48장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4장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와 심판에 대해서 다루고, 25-32장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며, 33-48장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33장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를 다루는 33-48장의 서론격으로 에스겔을 여호와의 파수꾼으로 삼으시는 사건입니다. 에스겔서 2-3장에 보면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말씀의 반복이지만 에스겔이 파수꾼의 역할을 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 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에스겔서 3:16-21절에 나온 에스겔 선지자를 파수꾼으로 부르신 부르심을 더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네 민족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칼 곧 바벨론 군대가 오는 것에 대해서 미리 나팔을 불어서 경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지자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적이 오면 나팔을 불어서 경고하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적이 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서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비하지 않아서 죽임을 당했다면 그 피가 자기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곧 파수꾼의 책임이 아니라 그 말을 순종하지 않은 자기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서 적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 인해서 죽지만 그 죄는 파수꾼의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합니다. 곧 그 책임이 파수꾼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삼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여호와의 파수꾼으로 그가 해야 할 역할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곧 하나님의 대변인과 같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자기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참된 선지자보다 거짓 선지자가 절대적으로 많았습니다. 미가야 선지자 때 보면 거짓 선지자가 400명이었고, 참 선지자는 미가야 한 명이었습니다(왕상 22장). 엘리야 시대 때는 850:1이었습니다(왕상 18장). 사람들은 다수 속에서 안전을 찾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마 이 많은 선지자가 다 틀렸겠느냐고 생각하며, 거짓 선지자 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거짓 선지자들의 선포는 그들이 평소에 좋아하는 희망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 선지자들에 비해 예레미야나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며 아에 바벨론에 기쁨으로 잡혀 가며, 가서 결혼을 하고 집을 짓고 살아라고 하였습니다(렘 29장). 그런데 백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매국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보기에는 거짓 선지자들은 참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거짓 선지자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스겔서를 통해서 보듯이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말씀을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까?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들은 자조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폐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하나님 말씀의 선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고발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고발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는데 우리로 그 가운데서 쇠폐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겠느냐고 합니다. 곧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조적인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겔 선지자의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기보다 포로로 잡혀와 있는 이런 상태에서 회개하고 돌이킨다고 한들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해서 그들은 자조적인 말을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에스겔 선지자가 말합니다. 오늘 본문 11-16절을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죄에 대한 책망을 받고서 과도한 절망과 자조적인 말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했습니다. 14-15절을 보면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심판의 소식이 전해진다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에게 심판의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돌이킬 기회마저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13절을 보면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인간의 자기 공적 쌓기가 됩니다. 그런 의를 스스로 믿고서 적당한 악을 행하는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14-16절을 보면 악인에게 너는 죽으리라고 했는데 그 악인이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의 죄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 범한 죄가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정녕 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자들은 생명의 율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생명의 율례란 바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언약에는 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서 그 언약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복이 임하지만 언약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참조. 신 28장). 그런데 그 생명의 율례를 이웃과의 관계에서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다시 보면 이웃의 것을 저당잡고 돌려주지 아니한 것과 탈취한 것을 말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것은 이러한 언약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17절을 보면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길이 바르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죄의 책망에 대하여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모습을 말씀 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지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것은 하나님의 과도한 심판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절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 곧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라는 말은 자조적인 말임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말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하는 말이 하나님의 길이 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20절을 보면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그들의 반응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 자신들을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도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하나님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이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길이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길이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 하기는 커녕 하나님의 길이 틀렸다고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 길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21-22절을 보면 “우리가 사로잡힌지 십 이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고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사로잡힌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에스겔 선지자에게 와서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것이 B.C. 586년의 일입니다. 그 도망한 자가 에스겔에게 왔을 때에 여호와께서 에스겔의 입을 여셨습니다. 에스겔이 예루살렘이 망한다고 전하였지만 도저히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입이 다시 열려 말씀을 전합니다. 에스겔이 전한 심판의 말씀을 듣고서 첫 번째 반응이 과도한 절망과 자조적인 푸념으로 여호와가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잘못된 낙관적인 신념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두 번째 반응입니다. 오늘 본문 23-2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의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받았는데 우리가 이렇게 많은데 이것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처럼 의로운 자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지만 이들은 세상의 힘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사는 언약 백성의 모습이 아니라 이방인보다 더한 죄악의 모습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5-2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고 너는 그들에게 또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온역에 죽게 하리라.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면 그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언약에서 금하고 있는 것들을 행하면서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은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받았는데 자신들의 수가 많으니 더욱 이 땅을 차지하고 살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이런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잘못된 신념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에스겔을 통하여 이런 말씀으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그들을 칼과 들짐승과 전염병으로 죽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산들은 황폐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 땅이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함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황무지가 되어 70년 동안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에 그들의 세 번째 반응은 연애인들의 쇼를 보는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 30-31절을 보면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들이 말씀을 듣는 자세는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지 들어보자’고 하며 오기는 합니다. 백성이 여호와의 성회에 오는 것처럼 그렇게 와서 앉아서 에스겔의 말을 듣지만 그대로 행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듣는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이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좋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그 마음에 좋은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33절을 보면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 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이익을 따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연예인이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처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배드리려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무늬만 신자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생활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에 자조하며 하나님을 탓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시는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셨을까요? 여호와의 심판이 이루어졌을 때에 그들이 한 선지자가 그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의 말씀이 되지만 자조적이며 잘못된 낙관론과 자기의 여흥을 위한 자들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울로 삼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며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회개 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시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증거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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