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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겔 44:1-3
강설날짜 2019-03-03

2019년 에스겔서 공부

성전 동쪽 문은 닫아두라

말씀:에스겔 44: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새로운 성전의 제단과 그 제단의 정결과 봉헌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성전 동쪽 문을 닫아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이 가득하게 됨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겔서 10:18-19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목전에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고 했습니다. 또 에스겔서 11:22-23절을 보면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에 보면 10장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났다”고 했고, 11장에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상으로 가득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파괴하시고 다시 자기 손으로 성전을 새롭게 지으시고 그 성전에 임하셨습니다.

 

에스겔서 43:1-5절을 보면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상숭배로 인해 성전을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그 떠났던 길을 되짚어서 다시 새로운 성전에 임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그 동쪽 문을 닫아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을 인도하던 천사가 다시 에스겔을 성소 마당 바깥의 동쪽 문으로 인도해 왔습니다. 그러자 그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여기서 “그 문이 닫히었더라”에서 ‘닫히었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가 ‘rWgs;’(싸고르)인데 미완료형으로 계속해서 닫혀있는 것을 말합니다. 동쪽 문은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말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1절의 ‘닫히었다’는 표현의 삼중적 표현양식으로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봉쇄를 의미합니다. 성전 동쪽 문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왔기에 그 문으로는 아무 사람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잠가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동쪽 문을 닫아두라고 하신 데는 무슨 뜻이 있을까요? 일차적으로는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문이기 때문에 그곳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취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징적인 것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표적인 것입니다. 모세와 솔로몬을 통해서 지은 성막과 성전은 사람들이 더럽힐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로 된 성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직접 지으신 새로운 성전에서는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표적으로 성전 동쪽 문을 닫아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왕은 동쪽 문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남문이나 북문으로 들어와서 동문 현관에 앉아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왕은 여호와께 가장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전달할 자가 바로 왕입니다. 그런데 이 왕으로 오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영광을 아들이 세상에 나타내신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스스로 새로운 성전 안에 갇히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배반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 주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전체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사람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한 가지 금령을 주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됩니다. 이제부터 이들의 삶은 안식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수고하여도 스스로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차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들이 세상에 관영해 집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죄도 관영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1-3절을 보면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자연스러운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좋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자기 뜻에 좋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이 관영한 모습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과 뜻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악이 관영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육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육신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습니다. 온 세상이 물로 심판 받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곳은 노아의 방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광이 임재하시는 곳이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그곳은 심판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살아남겠다고 합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힘으로 살고자 하는 이것이 바로 죄의 근원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인생들이기에 여호와의 임재로 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없이 살겠다고 하는 죄악된 모습을 구약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를 보이시기 위하여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셨듯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인간들은 흩어지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에게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흩어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흩어진 인류 가운데 하나님께서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택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기를 모든 민족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은 야곱에게 요약적으로 나타납니다. 창세기 28:12-15절을 보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쟁취한 후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들판에서 돌베개 배고 잘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언약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꿈에 사닥다리와 그 위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히브리어로 ‘!L;su’(수람)인데 계단을 말합니다.

 

이 계단은 요한복음 1:51절에 보면 이렇게 증언합니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51). 사도 요한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인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인자이신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같은 언약을 받았습니다. 그 언약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창 28:15). 그러므로 야곱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은혜 언약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 언약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언약 이후에 약 430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이 율법은 행위언약입니다. 율법을 지켜 순종하면 여호와께서 떠나지 아니하시지만 율법을 어기고 여호와를 배반하면 여호와께서 떠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성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였고 솔로몬의 성전에도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였지만 여호와의 영광은 그 성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솔로몬이 이미 예언을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9:6-9절을 보면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전이 높을지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 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은 신실하시기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임한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언약입니다(참조. 겔 36장). 그러므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는 마태복음 1: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합니다. 다윗도 모세 율법 이후에 출생한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처럼 일방적인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세가 빠져나간 것입니다. 모세의 역할은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입니다(참조. 요 1:17).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사환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의 아들입니다(참조. 히 3:5-6).

 

그러면 여호와의 영광이 새로운 성전에 임재하시고 동쪽 문을 닫아두라고 하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지 아니하실 것을 말씀하는데 이 새로운 성전에 임한 여호와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하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집니다(요 3:34). 예수님은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라고 했습니다(요 10:30).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제자들은 다 제 곳으로 흩어지지만 아버지는 나와 함께 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32절을 보면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보지 못할까요? 고린도후서 4:3-6절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의 광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비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보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엡 2:8-9).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시고 다시는 떠나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고 그 영광을 자기 백성들에게도 수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십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자들은 고난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결코 세상의 영광의 모습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4:12-1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받는 자들 위에 계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계실 때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임재 하여 다시는 떠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방식이 바로 성령으로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의 증언처럼 그 영광의 영이 고난의 모습으로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그 영광이 온 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까지 성도에게 임한 영광의 영이 떠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심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이 하나님의 은혜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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