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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슥 1:7-17
강설날짜 2019-05-26

2019년 스가랴서 공부

스가랴가 본 첫 번째 환상

말씀:스가랴서 1:7-17

 

오늘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첫 번째 환상입니다. 스가랴 1-6장에 보면 스가랴 선지자가 하루 밤 사이에 여덟 가지의 환상을 봅니다. 그 여덟 가지 환상 중에 첫 번째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첫 번째 환상에는 스가랴와 붉은 말을 탄 자와 해석 천사 그리고 여호와를 주요 등장인물로 부각시키면서 이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체 구조를 보면 7절은 언제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는지를 말하고 있고, 8절은 환상의 배경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9-13절은 본격적인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해당되는 14-17절은 천사가 선포하는 두 가지 희망의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가랴는 이 환상을 통해 비록 열방이 평온해 보이지만 곧 심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을 향해서 질투하시는 여호와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건축과 도성의 회복을 위해 역사하실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이 환상은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 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한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스밧’이라는 달의 명칭은 바벨론 달력에서 온 말입니다. 스가랴 7:1절에 보면 ‘기슬래월’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바벨론의 달력을 채용한 것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스가랴가 환상을 보고 그 메시지를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스스로 주권과 힘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곧 페르시아라는 이방 강대국의 통치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운명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우주적 통치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 이스라엘이 강대국의 통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누리지 못하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수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선지가 환상을 본 때는 밤이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밤’이라는 표현은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으로서의 선지자 상을 암시해 주기도 하고(합 2:1-3; 겔 3:17; 사 21:8), 기나긴 이방제국의 식민지 통치와 같은 고통과 고난의 때를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시 30:5; 시 46:5).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자는 이 첫 번째 환상을 통해서 이방제국의 식민 통치라는 기나긴 고통의 밤을 지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회복의 때를 고대하며 그 회복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파수꾼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주고 있는 듯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먼저 붉은 말을 탄 한 사람을 봅니다. 붉은 말을 탄 자는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11절에 보면 그는 여호와의 사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라고 표현된 자는 분명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다니엘도 다니엘서 7장에 보면 밤에 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고 했습니다(13).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 여호와의 사자라고 표현한 분을 묵시의 세계 속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언급되는 이 여호와의 사자의 정체는 분명치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하는 해석 천사와는 구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붉은 말을 탄 자 뒤에는 홍마와 자마 곧 밤색 말과 백마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 보면 이 말들이 복수형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세 마리의 말들이라기보다는 세 종류의 말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하여튼 이 세 종류의 말들에 타고 있는 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10-11절에 보면 홍마를 탄 여호와의 사자에게 보고하는 자들이 있음을 고려해 볼 때 누군가가 이 말들을 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홍마를 탄 여호와의 사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를 탄 순찰대원들의 리더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홍마를 탄 자의 공간 배경을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화석류나무’는 그 크기가 약2미터 정도이며, 여름에 흰색과 적색 꽃을 피우는 푸른 식물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골짜기의 샘과 화석류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이나 새 에덴의 회복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사야 41:18-19절을 보면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55:12-13절을 보면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에 보면 화석류는 여호와께서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인도하여 성전을 건축하시며 온 우주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수행하실 그 날의 회복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석류가 등장하는 첫째 환상은 성전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과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보면 여러 종류의 말들이 등장하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9절에 보면 스가랴는 해석해 주는 천사에게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해서 질문을 합니다. “내 주여!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이에 천사는 그 의미를 설명해 주기보다 이들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여기서 ‘두루 다닌다’는 의미는 ‘이리저리로 이동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라는 말은 여호와를 위해서 감시하거나 감독하는 역할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온 땅을 두루 감찰하는 이들은 말을 이용하여 전역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보고하는 페르시아 제국의 기마 순찰대의 역할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순찰대는 여호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여호와의 순찰대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여호와께서 온 세상의 통치자시요, 왕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비록 페르시아 제국이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온 열방의 참된 통치자는 바로 여호와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온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시는 우주의 왕이십니다.

 

그러면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온 자들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무엇을 보고합니까? 11절에 보면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이 스가랴 선지자의 계시는 학개 선지자가 성전 재건을 시작한지 5개월 후가 됩니다. 그런데 온 세상이 평온하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학개서 2:6-7절을 보면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 재건이 다 되어 가는데 하늘과 땅이 진동되면서 만국의 보배가 예루살렘으로 올 징조가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강대국이 지배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고 믿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이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이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천사들의 보고를 받고서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신 분이 만군의 여호와께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12). 여호와의 사자는 만군의 여호와께 ‘언제까지 예루살렘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습니다’고 합니다. 칠십년 포로생활에서 돌아왔고 이제 성전도 재건이 되고 있는데 언제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만국의 여호와를 사모하는 것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가 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에서 순교당한 자들이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시기를 언제까지 하시겠습니까?’ 하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요한계시록 6:10절에 보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한계시록 6:11절에 보면 흰옷을 주시면서 잠시 쉬라고 합니다. 언제까지인가 하면 네 동무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사자의 질문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먼저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먼저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위로하는 말씀’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40:1절을 연상케 합니다. 이사야 40:1절에 보면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 유수의 때가 이제 끝났음을 알리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의 회복이 시작될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자에게 여호와께서 이사야 40:1절의 ‘위로하라’는 말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회복의 때가 곧 다가올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천사를 통해 응답하시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4-15절을 보면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두 개의 메시지로 되어 있는데 그 각각의 메시지는 ‘외치라’는 명령형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스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라’는 명령으로 부여 받았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외치라’는 명령형은 바벨론 포로생활의 종식을 고하며 새로운 회복의 때를 알려주는 이사야 40장에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1-11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벨론 포로생활을 종식하고 새로운 회복의 역사를 외치라고 합니다.

 

그러면 ‘외쳐 이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 유수로부터 해방을 외치듯이 이제 스가랴 선지자는 절망에 빠진 그의 백성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외치는 첫 번째 희망의 메시지는 14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향하여 크게 질투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투하다’는 말은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카나’(ha;n_qi)인데 질투라는 뜻과 열심이라는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질투와 그의 열심이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즉 여호와는 질투하시기까지 이스라엘을 향해 그의 열심을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여호와와의 특별한 관계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데 특히 시온을 향한 여호와의 열심은 회복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시온을 향해 질투하시며, 예루살렘을 향한 여호와의 열심이 상심한 그의 백성들에게 회복의 시대를 열어줄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희망의 메시지는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해 진노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하여 조금 진노하셨는데 열국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나 바벨론을 하나님의 채찍과 몽둥이로 사용하셨는데 그들이 교만하여 져서 자기들이 잘나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처럼 교만해 졌기에 그 몽둥이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열심과 열방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가 대조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해 진노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자신의 분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의도보다 더 큰 심판을 촉발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그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을 어떻게 봅니까? 어느 나라가 부럽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 나라들은 다 불살라질 나라들입니다. 없어질 나라들입니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유지될 나라처럼 안일하게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여 버린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불타 없어질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구약의 범죄 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강대국을 몽둥이로 잠간 사용하셨는데 그들이 교만해지자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임 당한 곳이 바로 이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비록 범죄 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좀 과하게 하였다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우리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엄청나겠는지를 생각하라고 히브리서 10:29절에서 말씀합니다.

 

지금 온 세상이 어떻습니까? 하늘과 땅이 진동될 조짐이 있습니까? 폭풍전야처럼 조용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는 세상을 향해 진노하시고, 당신의 열심이 당신의 구속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이 소망의 역사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겉으로 볼 때 이 세상은 평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천사와 성령 하나님을 통해 이 세상 가운데 두루 다니십니다. 당신의 열심으로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의 한 부분으로서 거룩하게 세워지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스가랴의 하나님은 지금도 신실하셔서 우리 가운데 사건 사고를 통해서 징벌하시고도 하고 연단하셔서 거룩함에 성장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해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16-17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 1-6절에서 여호와 하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돌아갈 능력이 없음을 우리가 이미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위해, 긍휼과 사랑을 인하여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돌아왔기에 이제 성전에 다시 먹줄이 놓여지고 재건이 되고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풍부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시온을 안위하고 예루살렘을 택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왔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원수된 우리를 하나님 편에서 화목제물을 마련하셔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내시고자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안정된 삶을 목표로 삼지 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심을 가장 큰 기쁨과 감사와 기적으로 여기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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