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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슥 2:1-13
강설날짜 2019-06-16

2019년 스가랴서 공부

스가랴가 본 세 번째 환상(2)

말씀:스가랴서 2:1-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스가랴서 2:1-5절 말씀을 중심으로 스가랴 선지자가 본 세 번째 환상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특히 자신이 친히 성곽 없는 예루살렘에 불 성곽이 되어 주셔서 하나님의 도성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포로귀환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 성곽이 되어 주셔서 우리를 완벽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해서 스가랴 선지자가 본 세 번째 환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살펴 볼 2장 후반부 말씀 곧 6-13절 말씀은 여호와와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관계가 온전히 회복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곧 시온의 재건과 언약관계의 복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어려움 가운데 있는 포로귀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귀환하지 못한 백성들과 세대를 초월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6-7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거니와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지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직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지 못하고 바벨론에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사방에 바람처럼 흩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을 다시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북방 땅이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북방 땅에서 도망하라’는 말씀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이제 남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북방에서 돌아오고 피하고 도망쳐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은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예언된 대로 70년이 되어야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렘 25:1-14). 그리고 고레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이셔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대하 36:22-23). 곧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오는 것이지 그들 스스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놀라운 표현은 ‘바벨론에 있는 시온’이라는 표현입니다. ‘시온’(@/Yx)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시온이라면 일반적으로 어디를 가리킵니까?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시온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있는 시온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시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21:1-2에 보면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뭐라고 하는 것입니까?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1:9절을 보면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 같이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 성에 거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성을 에워싸고 있는 갈대아인 곧 바벨론에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거나 애굽으로 도망가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42:14-18절을 보면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 되리라.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 거하기로 고집하면 너희의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의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앙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와 분을 예루살렘 거민에게 부은 것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른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이처럼 순순히 포로로 잡혀간 그들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시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이라고 해서 어느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바로 시온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있는 이 시온 백성에게 바벨론에서 피하여 나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8-9). 이 말씀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략한 자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을 범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을 한번 흔들어버리시면 전에 자기들을 섬기는 자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히려 노략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과 그들 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인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이 구약에서 계속하여 언약으로 주어진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그 언약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이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약속의 성취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10-1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시온의 딸들아 노래하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여기서 ‘기뻐한다’(jm'c; 싸마흐)는 것은 단순히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뛸듯이 크게 기뻐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온의 딸이 기뻐하며 노래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고 합니다. “그 날에는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네 가운데 거할 것이라”고 합니다.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경계가 이스라엘을 넘어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 곧 많은 족속이 여호와께 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의 말씀으로 인하여 노래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인하여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1:40-45절을 보면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1:46-55절을 보면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8-14절을 보면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가복음 2:20절에 보면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2:28-32절을 보면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찬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엘리사벳이 찬양하고, 마리아가 찬양하고, 사가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났을 때에는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찬양하고 목자들이 찬양합니다. 시므온이 찬양합니다. 안나가 증거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하여 노래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그들이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12). 여기서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신다’라는 것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지난 시간에서도 보았습니다만 다시 택하시는 예루살렘이 새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이제 새 백성들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유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인 중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이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에베소서 2:16-18절을 보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하여 누가 분노하겠습니까?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주장 하는 유대인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가장 심한 핍박을 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에도 보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가장 반대하는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다 달려들어 반대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완전하게 이루어내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내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민 23:19).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자기 공로가 많다는 자들이 잠잠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자기 공로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치 교회 일이 자기 일인냥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딴지를 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일로 인해서 많은 교회가 갈등을 빚기도 하고 심지어 교회가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이 땅의 교회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속에서도 일어났고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공로가 큰 자라 할지라도, 많은 일을 한 자라고 할지라도 잠잠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실 것이기 때문에 곧 최후 심판을 단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무릇 모든 혈기 있는 자들은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이 재건되고 그 성전에 여호와께서 임하시고 일어나실 것이라는 것보다 더 궁극적인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예언인 것입니다. 이미 스가랴 선지자가 바벨론에 있는 시온이라고 하였듯이 오늘날은 세계 각처에서 주께 속한 자들이 바로 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잠잠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송사하고 훤화(喧譁)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셔서 자신의 거처를 삼으시는 일에 대하여 누가 입을 열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건드리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8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눈을 건드리는 것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눈동자 같이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의 눈을 건드린다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울로 있을 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할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4절에 보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을 핍박한 것을 예수님 자신을 핍박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형편과 상관없이 노래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세상의 영광을 바라본다면 결코 노래하고 기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에 재미있다는 것들을 다 경험해보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즐거울까? 저것이 재미있을까? 하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까? 세상에서 재미있다는 것 치고 죄짓지 아니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생의 자랑거리를 노래하고 기뻐하는 것은 정말로 허탈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런 세상을 바벨론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의 바벨론이 세상의 경제와 힘과 세상 영광의 중심이라면 오늘날은 그 중심이 따로 없습니다. 온 세상이 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기에 이 세상 자체가 다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악한세대에서 즉 바벨론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13절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니라.” 이 말씀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믿게 된 자들에게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피하여 나오라.” 이 말씀을 하신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친히 자기 백성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이제 주의 자리에 등극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자기 백성들을 지금도 통치하고 관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곧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불타 없어질 바벨론 곧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곧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은 새 예루살렘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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