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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슥 3:1-10
강설날짜 2019-06-30

2019년 스가랴서 공부

스가랴가 본 네 번째 환상(2)

말씀:스가랴 3:1-10

 

우리는 지난 시간에 네 번째 환상에 대해서 살펴보다가 시간이 되어 중간에 마쳤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네 번째 환상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네 번째 환상 전반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럽혀진 옷 때문에 사단의 고소를 당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단의 고소를 일축하며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예복을 입혀주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입혀 주시는 새로운 예복은 의의 옷이요, 영광의 옷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그의 머리에 정한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와 같은 환상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네 번째 환상 후반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6-8절의 말씀을 보면 계속해서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 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 집’이란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도와 율례를 지키면 성전을 다스릴 것이며, 성전의 뜰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로 여기 서 있는 자들 중에 왕래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기에 서 있는 자’들은 두 부류입니다. 하늘의 천사들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있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천상과 지상을 왕래한다는 것입니다. 즉 중보자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이 해야 할 일이 이런 일입니다. 곧 중보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피 뿌림으로 백성들이 속함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온전한 중보자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조차도 죄와 허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받고 있는 여호수아나 그 앞에 있는 제사장들은 다 예표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예표 하는 바가 누굽니까? 진정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왕래하면서 중보하실 참된 대제사장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심과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지금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일을 하고 계심을 믿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히브리서 9:24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 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는 그림자인 구약 성소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성전의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참 하늘에 들어가셔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이미 세상의 끝이요, 종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땅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예수님이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셔서 죄를 없이 하신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10:10절을 보면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단번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0:9절에 보면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시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하심이니라”(히 10:9). 구약의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의 끝 부분을 보겠습니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루에’나 히브리서의 ‘단번에’나 같은 의미로 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곧 이 땅의 죄악을 제하기 위하여 예표의 사람이 나와야 하고, 예표의 말씀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예표의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순’과 ‘돌’입니다. 그리고 이 예표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이 ‘순’과 ‘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가 되어지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보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 앞에 서있는 자들은 다 예표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예표하기 위한 사람들입니까? 장차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순을 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순이라는 이름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순이란 이름은 이사야(11장, 53장)나 예레미야 선지자(렘 23장)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말하였습니다. 이사야 11:1절에 보면 “이 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1:10절에도 보면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2절에도 보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 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3:5-6절에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6:12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그 성전을 다스려야할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일이 장차 나타날 참 성전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학개서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봤습니다만 그때 짓던 성전의 초라함과는 비교할 수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스러운 성전을 예언한 것처럼 예수님은 장차 나타날 성전이 되셔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시는 것이며, 그것은 이미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닌 것입니다. 히브리서 9:22-26절을 보면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집을 다스릴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의 참 성전에서 영원히 다스릴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집에 사환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집의 아들이라고 히브리서 3장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1-6절을 보면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하신 일을 보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영생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부지런히 성경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영생이 있는 줄을 알고 그들은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성경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증거 하고자 한 예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경이 나에 대하여 증거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39-40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때는 신약이 없었고 구약만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서 예수님을 증거 한 것입니다.

 

이사야 53:1-2절을 보면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순과 싹 이런 표현들이 다 연약함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마른 땅에서 나온 순과 줄기가 얼마나 형편이 없는 모습입니까? 그래서 이사야 53장을 고난 받는 종의 노래라고 합니다. 여기서 종과 순이 결합이 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스가랴 3:8절입니다.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8).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순’은 연약함만이 아니라 심판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1:1-5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순’이라 이름 하는 분이 어떤 모습으로 오셔서 일하셨는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구약의 이러한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인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으나 주의 신이 임한 분으로서 여호와를 경외함을 즐거움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또한 심판의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기능으로서는 ‘돌’이 또한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 앞에 돌을 세우시는데 이 돌에 일곱 눈이 있고 새길 것을 새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곱 눈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길 것을 세우시는 이 돌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합니다. 이미 히브리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속죄하시고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돌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입니다.

 

우선 구약에서 그리스도와 돌에 대한 관련된 말씀들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사야 28: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 석으로 삼을 것이라고 합니다. 시편 118:22-23절에 보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신 분이 누구라고 합니까? ‘여호와시다’고 합니다. 또한 다니엘서 2:34-35절을 보면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서와 시편과 다니엘서의 이 말씀들을 보면 돌이란 시험한 돌이며, 버린 돌이지만 하나님의 집에 모퉁이 돌이 되며, 또한 세상을 심판하는 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이 돌에 대하여 예수님도 자신을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1:42). 그리고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전서 2장에서 이사야서와 시편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벧전 2:6-8).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도록 이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절을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성전이 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되시고 그로 인하여 구원받는 자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이 완성이 되면 이 세상은 불살라 없어질 것입니다(벧후 3:7). 그러므로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만들어진 그 아들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돌’에 대해서 한 곳을 더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7절을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 감추인 만나를 주고 흰 돌을 주시는데 그 돌에 기록된 새 이름이 있습니다. 돌에 이름을 기록하려면 새긴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돌을 받은 사람이 아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이긴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생명나무를 주신다는 것, 서머나 교회에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 버가모 교회에 만나와 흰 돌을 주신다는 것, 두아디라 교회에 새벽별을 주신다는 것, 사데 교회에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게 하신다는 것, 빌라델비아 교회에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의 위에 기록하신다는 것, 라오디게아 교회에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며 보좌에 함께 앉게 하는 것이 다 그리스도가 상급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 이름을 성령으로 인하여 부르고 믿게 되는 것이 이미 복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이 모든 것을 다 압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는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6절에 보면 봉인한 책을 다윗의 뿌리에서 이긴 자가 나오셔서 봉인을 떼시는데 그 분이 죽임당한 어린 양이며,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 것입니다. 이 돌이 바로 고난 받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눈이 일곱이란 온 세상을 다 두루 살펴보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의 눈앞에서 피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수고도 알고 죄악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이 주님의 눈을 의식하기에 어떤 봉사를 하고 어떤 수고를 하여도 주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게 되었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심령과 골수까지 다 보시기에 자기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 죄를 하루에, 곧 단번에 사하신 일곱 눈이 새겨진 돌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단번에 속죄하신 능력을 압니다. 그것은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찬양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10).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아서 가장 평안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구원을 맛 본 자는, 즉 순과 돌의 희생과 승리로 인하여 구원이 임한 자는 서로 초대하며, 성도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데 그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이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양께 있기에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그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순’과 ‘돌’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승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고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은혜를 힘입어 함께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함께 모여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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