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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로마서 5:11

2003년 로마서 특강
제 6 강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
말씀:로마서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는 9절과 10절에서 사도 바울의 경이로운 논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참으로 이 논증은 위대한 논증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더욱 그로 말미암아 장차 있는 진노에서 구원 얻을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되었기 때문에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은 확실합니다. 바울은 이 논증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갇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바울의 논증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1절에서 계속됩니다. 무슨 논증이 더 필요합니까? 11절을 보면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11절에서 바울은 “이뿐 아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이제것 말해 왔던 모든 것이 진리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곧 또 다른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11절의 논증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joy in God)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바울은 2,3절에서도 이와 똑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and rejoice (or glory) in hope of the glory of God). 또 3절에서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and not only so, but we glory in tribulation also)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상에서 “즐거워한다”는 말의 가장 좋은 번역은 “자랑한다”(glory)입니다. 그러므로 11절을 다시 번역하면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자랑으로 여기노라”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은혜를 정확히 이해 한다면 구원에 대한 확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인 하나님을 자랑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11절에서 하는 말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말과 2절에서 하는 말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라는 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똑같이 “하나님 안에서 자랑으로 여긴다”라는 말입니까? 이 둘 사이에는 하나의 실제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 할 때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느니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영광에 참여하여 즐긴다는 사실을 고대하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1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 자신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와 함께 누릴 영광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두 말씀 사이의 차이점입니다. 우리는 애통하는 것이나, 슬픔이나, 죄나, 수치가 없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육신마저 완전히 영화되고 죄로부터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궁극적인 영화의 상태를 소망하며 즐거움을 가지고 고대하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안에 그것을 기대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11절에서 다루는 문제는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것은 위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제 1 문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지난번 수요일 모임에서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1 문을 공부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성품이나 행위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스러운 성품과 속성의 계시에 접하게 될 때에 거기에 머리를 숙이고 찬송과 경배를 돌리고, 나아가서 실제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무한하심과 거룩하심에 위압되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함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즐겁도록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즐거움의 근원이 되고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 한다'는 말은 우리가 선행을 하고 좋은 일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하박국 선지자처럼 우리에 양이 없을 지라도 하나님 자신을 인해 즐거워한 것처럼 우리의 즐거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인해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웨스터민스터 요리문답 제 1 문의 답인 “즐거워한다”는 이 의미가 바로 11절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원토록 그를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곧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쁨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상은 시편 가운데서 자주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서 시편 33편 1-3절 말씀을 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찌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찌어다.”고 노래했습니다. 또 시편34편 1-2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또 시편 103편 1절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이 자랑을 말하는 아름다운 표현은 마리아의 찬가라 불리우는 누가복음1:46-47절에 잘 나타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바로 이 찬양이 하나님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우리가 왜 하나님을 필연적으로 자랑해야 합니까?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소유하여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찬송가28장) 모든 선하고 완전한 은사는 모든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자랑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 점을 권면형식으로 말하면서도 사실상은 명령조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1절을 보면 “종말로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4:4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 이것은 기독교인의 생활 규범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주요 특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즉 ‘주를 항상 기뻐한다’는 그 말은 참된 기독교 신앙의 표지입니다. 이것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인가 심각한 잘 못이 있는 것입니다. 주를 항상 기뻐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을 항상 기뻐해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에게 더욱더 그것을 명백하게 해 주기 위해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화목을 얻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화목’이란 우리 죄를 인한 화목제물인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에 진노에서 구원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10절에서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되었기 때문에 구원은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화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또한 그의 죄가 용서 받았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서 그런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자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청교도 중에 토마스 굿윈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원래 칼빈주의 보다는 알미니안 주의에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선한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선한 일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굿윈에게 어느날 리차드 십스는 친밀하게 말을 건냈습니다. “이봐, 젊은이! 만일 그대가 조금이라도 선한 일을 하고 싶다면 복음을 설교해야만 하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말일세.” 십스의 이 짧은 말이 젊은 신학도 굿윈의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잘 박힌 못과 같이 그의 가슴에 새겨져서 그의 평생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굿윈은 평생 동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장엄하게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자랑으로 여깁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연이요, 의무임을 깨닫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반드시 그를 자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을 자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신칭의의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이신칭의의 결과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이제까지 주장해 온 모든 축복은 이신칭의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까지 바울이 논증을 해 온 그 논증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직도 칭의 그 자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칭의는 전적인 타락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칭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 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자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아직도 우리 자신의 행위나 노력, 선행, 그런 것들을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있지 않다는 일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랑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자신을 함께 자랑할 수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재물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나만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자랑하든지, 자기를 자랑하든지 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둘을 함께 자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의 비유 가운데서 지적한 성전에 나온 바리새인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됨됨이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11,12) 그의 감사는 자신을 향한 감사이지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한번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4)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무도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자신들을 즐거워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이신칭의의 진리를 정확히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자랑하지 하나님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은 아직 칭의의 진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기뻐하기 위해서는 이신칭의의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바울의 논증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 논리는 결코 무너질 수없는 논리입니다. 이 논리는 확실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9-11절에서 하는 논증을 정확히 추론해 내야 합니다. 바울의 논증을 정확히 이해 할 때 그 결과로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논증의 필연적인 결과인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의 표지입니다. 우리가 바울의 논증을 정확히 이해 했다면 우리는 이렇게 노래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높고 깊고 가장 거룩한 분에게 찬양하여라. 그의 모든 말씀은 놀라운 것 뿐일세. 그의 길은 확실하여라. 아! 우리 하나님의 사랑스런 지혜. 우리 모두 죄와 수치에 빠져 있을 때 둘째 아담 죽음을 부릅쓰고 오셨네.’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진리에 대해 명확하지 못하거나 무언가 잘 못된 것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바울의 논증을 정확히 이해 하게 하시고, 칭의의 진리를 정확히 알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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