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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태복음 1:23
2003년 성탄 말씀
제 1 강
                                             처녀가 낳은 아들
말씀:마태복음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사람들은 성탄절이 다가오면 괜히 들뜨고 즐거워 합니다. 여러분들도 성탄이 즐겁죠?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아십니까? 성탄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까?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성탄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의미를 기념하고 찬양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지키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날 태어난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날 태어났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날 태어났다는 것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의 기원은 약 4,000년 전, 즉 미스라에서 유래되었다고 봅니다. 미스라는 고대 이란의 빛의 신이었습니다. 이 이교도의 축제는 A.D.4세기에 이르러 전 유럽에서 지켜졌습니다. 교회가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에게 명하여 이러한 인기있는 이교도의 축제를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그 때가 530년이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했던 황제 콘스탄틴은 이미 이교도 축제를 그대로 지켰고 그것을 성탄절의 “기독교”의 휴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성탄절의 기원이 이교도 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 날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성탄절에 어느 누구도 이교도의 심정을 가지고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날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이교도들과는 달리 태양의 탄생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신 새로운 창조, 놀라운 복된 소식,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를 부릅시다. “merry christmas!"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을 마음껏 찬양합시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은혜가 넘치는 성탄이 되길 바랍니다.

마태가 전해 주는 성탄의 메시지는 너무나 놀랍고 신기합니다. 마태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처녀가 아들을 낳았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처녀는 히브리어로 ‘알마’인데 이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숫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 일입니다. 이적의 역사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처녀가 어떻게 아들을 낳게 되었다고 합니까? 20,21절에 보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방법에 의해 잉태된 인간의 자식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에 의해 잉태된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처녀가 낳은 아들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에서 성탄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처녀의 몸을 빌어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영이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보다 더 복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함께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원튼 원치 않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함께 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우리가 함께 하기가 힘든 사람이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습니다마는 이기적인 사람과 함께 하기가 힘듭니다. 세리와 같은 이기적인 사람과 함께 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자기 것만 꾸리는 이기적인 사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함께 희생하고 헌신해야 할 때 몰래 사라져 버리는 사람, 우리는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세리들을 멀리 하였습니다. 그들과 상종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와 삭게오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함께 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동을 먹었습니다. 마태는 그 함께하심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서 예수님의 탄생을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교만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힘듭니다. 잘 난체하는 사람,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 상대방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함께 하기 힘듭니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지옥과 같은 일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도덕적으로 불결한 사람과 함게 하기 힘듭니다. 중풍병자와 같이 무기력하고 무능한 사람과 함께 하기 힘듭니다. 자기를 대적하는 원수와 같은 자들과 함께하기 힘듭니다. 심지어 부부 간에도 함께 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부부간에도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서 함께 하기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철학이 달라서 함께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함께 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부간의 다툼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부부 간에도 함께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요즘 50% 가까이가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부부간에도 이처럼 함께 하기가 힘든데 거룩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죄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으로 임마누엘의 은혜는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은혜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보실 때 죄에 빠져 죽어가는 인간을 볼 때 너무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 때도 너무 고통 가운데 살고,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볼 때 어찌하든지 구원하시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죄인된 인간이 죄로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없었습니다. 죄 없는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할 그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심을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고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어떤 만물보다 영화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악된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함께 하신다. 참으로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창조주로서 모든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모든 특권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어떤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땅에 태어난 사건을 인간이 구더기를 구원하기 위해 구더기가 된 것에 비유했습니다. 옛날 풍덩식 화장실에는 구더기가 무지하게 많았습니다. 그 구더기는 너무 징그럽고 더러워서 밟아 죽이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화장실에서 보니까 구더기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구더기에게 말하는 겁니다. "그쪽으로 가면 안돼 그러면 죽어" 그러나 구더기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구더기를 살리기 위해 인간이 구더기가 되는 겁니다. 구더기는 손도 발도 없습니다. 오직 몸통만 있어요. 인간이 구더기가 될려면 손을 없애야 합니다. 물건을 집을 수도 없어요. 발을 없애야 합니다. 자유롭게 뛸수도 없어요. 굼벵이처럼 기는 겁니다. 아름다운 얼굴도 포기하고 바람에 찰랑거리는 헤어스타일도 포기합니다. 옷도 포기하고 모든 능력과 잠재력도 포기합니다. 그리고 더럽고 냄새에는 화장실에 태어나는 겁니다. 한 마리의 구더기로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헤매이던 구더기를 인도하여 살게 하는 겁니다. 실로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희생이요 아픔이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랑입니다.

왜 창조주 하나님이 죄로 타락하고 더러운 '인간의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것입니까? 이유는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곧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죄가 뭔지도 모른체 밥먹듯이 죄를 짓고,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땅에 오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어떤 인간도 해결하지 못했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은 엄청난 자기 비하요, 겸손이요 모든 것을 포기한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로 죽어가던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이 임마누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일이기 때문에 그 은혜가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탄이 되어도 우리의 심령에 기쁨과 즐거움이 쏟아나지 않습니다. 마치 그 옛날 하와이 섬의 문둥병자들과 같이 말입니다. 1860년대 하와이의 한 섬인 모로카이섬은 문둥병자들만 모여살던 죽음의 섬이었습니다. 어느날 멀리 벨기에로부터 다미엔(1840-1889)이라는 신부가 그 섬에 찾아왔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죽어서 실려나가는 문둥병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았습니다. 고름을 닦아주고 손발이 떨어져 나간 문둥병자들의 손발이 되어 일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온 몸이 썩어가는 문둥병자들 앞에 서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문둥병자들은 그를 비웃으면서 조롱했습니다. "자신은 건강한 몸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만약 우리들처럼 죽게 되었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요” 고민에 쌓여있던 다미엔은 어느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저에게도 문둥병을 주세요. 저에게도 문둥병을 주세요. 멀쩡한 제 몸으로서는 저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요. 오~ 주님 제게도 문둥병을 주셔서 저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얼마 후부터 다미엔은 감각이 점차로 무디어지고. 눈썹이 빠지고. 관절이 떨어져 나가는 죽음의 병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간 문둥병자의 모습을 하고 다미엔 신부는 그들 앞에 서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형제여라고 부를 수 있게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는 문둥병에 걸린 우리들까지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순간 그 자리에 모였던 수많은 문둥병자들은 마치 전류가 통하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대 회개 운동이 얼어났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퉁퉁 부은 얼굴, 허물거리는 피부, 붕대로 칭칭 감은 손발로 교회, 주택, 병원을 짓고, 묘지를 팠습니다. 1889년 4월 15일 나병환자 성자 다미엔은 49세로 16년간의 성스러운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하와이의 문둥병자들은 다미엔 신부가 참으로 자신들과 함께 하는 사랑을 체험했을 때 그들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였습니다. 우리도 나와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삶속에서 경험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 때 마태에게 임한 임마누엘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에도 임하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임마누엘 해 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와 어떻게 임마누엘해 주셨습니까? 이 시간 나와 임마누엘 해 주신 주님의 임마누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찬양하겠습니다. “나를 위해 오신 주님 나의 죄를 위하여서 유대민족들에게 잡히시던 그날밤에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에서 십자가를 지셨네. 그러나 언젠가 주님을 부인하며 원망하고 있을 때에 나에게 오셔서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셨네. 거절할 수 없어 외면할 수 없어 주님의 그 손을 잡았었네. 주님의 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네. 이 세상에 오신 주님 나의 죄를 위하여서 로마 병정 창과 칼에 찔리시던 그날오후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리에게 평안을 약속하신 주님 예수 십자가에 못박혔네. 그러나 언젠가 주님을 부인하며 원망하고 있을 때에 나에게 오셔서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셨네. 거절할 수 없어 외면할 수 없어 주님의 그 손을 잡았었네. 주님의 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임마누엘 해 주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비참한 인생을 살다 영원한 심판을 받을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임마누엘 해 주셨습니다. 이번 성탄에 이 임마누엘의 은혜와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과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 땅의 모든 백성들 가운데 충만케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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