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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2:25-35
2003년 성탄 말씀
제 2 강
                                                       어둠은 가라

말씀:누가복음 2:25-35
요절:누가복음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요즘 정치권 풍자 케롤송이 유행입니다. “교묘한 밤 거북한 밤 검은 돈 오간밤...”, “기쁘다 검찰 오셨네 다 조사받아라...” 지난 한해 우리나라를 바라보면서 교수들이 택한 사자성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YTN뉴스에 의하면 “우왕좌왕”이라고 합니다. “우왕좌왕” 지난 한해 우리나라 형편을 바라볼 때 이보다 더 정확한 사자성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왕좌왕” 이 사자성어를 택했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나라는 지난 한해 동안 힘들었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사실 너무나 힘들고 어두운 한해였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둡고 절망적인 한해였습니다. 연일터지는 정치지도자들의 비리와 요즘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대선자금 비리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였습니다. 경제는 곤두박질 치고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카드빛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38선이 유행하고, 취직은 바늘구멍입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버지가 두 자식을 한강에 던져 죽게 했습니다. 교회도 덩치는 커지지만 십자가는 없습니다. 새해가 다가오지만 어둠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 시대는 빛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을 주고, 새 힘을 주는 빛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처럼 박두진의 시 ‘해의 품으로’로가 가슴에 와 닿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해를 보아라. 이글대며 솟아오른 해를 보아라. 새로 해가 산 너머 솟아오르면, 싱싱한 향기로운 풀밭으로 가자. 눈부신 아침 길을 해에게로 가자. 어둠은 가거라. 울음 우는 짐승같은 어둠은 가거라. 짐승같이 떼로 몰려 벼랑으로 가거라. 햇볕살 등에 지고 벼랑으로 가거라.” 우리는 새벽마다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가공할만한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아무리 칡흙같은 어두움도 붉은 해가 떠오르면 순식간에 다 물러 가버립니다. 만물이 생동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빛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빛되신 예수님 안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크고 작은 어둠이 있습니다. 이 어둠 때문에 우리는 불행합니다. 어둠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듭니까? 우리 인생을 어둡고 불행하게 만드는 어둠이 무엇이 있습니까? 물질문제의 어둠이 있습니다. 질병과 인생문제와 같은 어둠이 있습니다. 부족한 자신으로 인한 절망과 낙심의 어둠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죄의 어둠이 있습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해 예수님은 이방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모든 어둠이 물러갑니다. 현재 우리 인생을 절망하게 만드는 어떤 어두움도, 희망을 빼앗아가는 어떤 어둠의 권세도 다 물러 갑니다. 여기에 성탄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므온이라는 한 의롭고 경건한 사람에게 성령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그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어느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마침 요셉과 마리아가 율법의 전례를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왔습니다. 시므온은 부모의 품에 안겨 성전에 온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29-32절을 보십시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은 성령이 충만하여 한 눈에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만민 앞에 구원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방을 비추는 빛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중에 태어나셨지만 유대인만의 빛이 아니라 이방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원자, 임마누엘, 만왕의 왕, 선한 목자, 기묘라, 모사라, 전능의 왕 등 그런데 성령께서는 시므온에게 예수님을 이방의 빛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방의 빛이 되십니까?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는데 왜 예수님을 이방의 빛이라고 노래했을까요? 예수님만이 세상의 어두움을 근본적으로 몰아낼 수 있는 빛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어두움만 물리쳐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어둠을 몰아내시는 빛이 되십니다. 과거에 우리는 아무리 떨쳐버리려해도 떨쳐 버릴 수 없는 허무, 무기력, 슬픔, 권태와 외로움과 같은 어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과 비교하여 운명주의와 열등감으로 자신을 자학하거나 반대로 교만에 빠져 몹쓸 인생을 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그 증오심으로 힘든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청춘의 끓어오르는 정열을 절제하지 못하고 육신의 쾌락과 헛생각의 노예가 되어 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음과 심판의 어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삶을 혐오하고 여기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원하였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고 빛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까? 말씀 공부를 통해 빛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허무와 무기력 대신에 생의 의욕과 기쁨이 샘솟게 되었습니다. 증오심이 사라지고 용서와 측은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정욕을 절제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주님와 복음을 위해,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기적과 같은 일은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뤄진 일입니다. 예수님의 큰 빛을 받았을 때 우리 속의 어두움이 벼랑끝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위력을 압니다. 빛의 힘을 압니다. 복음의 능력을 압니다. 우리는 이방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새 사람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늘 찬양하며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실제 삶을 보면 어둠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어둠으로 인해 절망하며, 슬퍼합니다. 얼굴에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끝없는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갑니다. 물질문제와 인생 문제로 고통당합니다. 자존심과 명예에 사로잡혀 자유함이 없습니다. 끝없는 다툼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서로 요구하며,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합니다. 빛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새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우리의 인생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이상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욱 밝은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하는데, 점점더 어둠이 우리의 삶을 사로잡아 갑니다. 우리는 성탄이 되어도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나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성탄을 이방의 빛이 비추는 날로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빛이 비추었던 날로 기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추도식과 같은 것으로 영원한 이방의 빛 예수님을 과거란 시간 속에 가둬버리는 불신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빛이 과거에는 우리의 어두움을 몰아낸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위력이 없다면 그 빛을 누가 진정한 빛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빛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어둠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어둠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둠 때문에 고통하며 슬퍼하며 낙심합니다. 빛되신 예수님 안에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감정과 혈기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일로 인해 화를 잘냅니다. 섬기고 헌신하고자 하기보다 요구하고 공주처럼 왕자처럼 섬김을 받고자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이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둠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어둠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기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것만큼 심각한 것도 없습니다. 이로 인해 더 많고 지독한 어둠이 생산됩니다.

대인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조하리 창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사람들에게는 자기만 모르고 남은 아는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식사할 때마다 쩝쩝 소리를 내면서 식사를 합니다. 남들은 이 사실을 다 아는데 그 사람만 모릅니다. 이런 것은 별 다른 해를 주지는 않지만 종종 남에게 괴로움을 주는데 자신은 모르는 어둠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는 것도 잘 안고치는데 모르는 것을 고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런 부분이 큰 것은 자기 성찰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의 눈에 비치는 객관적인 자기를 발견하여 그것이 남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도록 고쳐 나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아가 건강해야 합니다. 자기의 솔직한 모습 발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 그것을 기꺼이 발견하여 고치기를 원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동역자와 오래 살면서 제 속에 있는 여러 어두운 부분을 발견합니다. 크고 작은 일에 화를 잘 내는 모습,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스스로 낙심하며 절망하기를 잘하는 모습, 악착같이 도전하는 도전 정신이 부족한 모습, 등등 참으로 부족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자신의 어둠의 요소 때문에 동역자와 많은 형제, 자매들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저는 요즘 제 속에 얼마나 어둠이 사로잡고 있는지 발견합니다. 이 어둠 때문에 나 자신이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불행 가운데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종에게 주님은 이방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방의 빛으로 오사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새벽 해에 모든 어둠이 불러가듯 내 속에 있는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절망에서 일어나 희망을 향해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어둠으로 인해 상처를 주었던 가족들과 형제, 자매들을 겸손히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빛을 이방에까지 비추고자 하는 소망이 생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이루어 하나님 나라를 증시할 소망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은 과거의 추억으로 먹고 사는 생활이 아닙니다. 현재 빛 비추시는 주님의 빛을 받으며 그 빛으로 치료받는 생활입니다. 우리에게는 어제의 어두움은 물러났지만 오늘의 어두움은 남아 있습니다. 그 어두움은 20년, 30년 동안 형성된 것으로 너무나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예수님의 빛을 쪼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에 온전히 내어 놓기만 하면 그 어두움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어둠이 있습니까? 현재 나를 사로잡고 불행하게 만드는 어둠이 무엇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속에 있는 어둠이 무엇인지 압니다. 문제는 자존심 때문에 그 어둠을 빛되신 예수님 앞에 내어 놓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이제 어둠에 익숙해서 자신이 어둠 속에 있는 줄을 모르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라는 방 안에서 카텐을 치고 있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빛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완벽한 빛입니다. 해가 비추면 온 세상의 어두움이 물러나는 것처럼 예수님의 빛은 온 세상의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비추어도 건물 안에 들어가면 어두움이 존재하듯, 창문을 닫고 카텐을 치면 어두움이 심해지듯, 우리는 빛을 차단하는 여러 장치로 인해 어두움의 그늘에서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빛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빛을 차단하는 방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자아의 커텐을 걷어버려야 합니다. 내가 일생 치료받아야 할 어두움이 많이 있는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 특히 반복해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자기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기 나름대로 이유를 붙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서 수비태세만 견고하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 우리 속에 있는 어두움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도리어 더욱 어둠이 깊어지고 그 어둠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점점 주변에 퍼지게 됩니다.

올 해도 제 속에 있는 어둠을 발견케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크고 작은 어두움도 발견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어두움이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렇게 어두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빛이 미치지 못할 어두움은 없습니다. 주님의 빛이 치료하지 못할 어두움은 없는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온갖 변명의 커텐을 떼어 버립니다.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고 수비하기 위한 모든 이론을 내어버립니다. 그리고 그저 어두움이 가득한 죄인임을 인정하며 우리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주님의 빛이 저의 모든 어두움을 벼랑끝으로 던져버릴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빛이 우리의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사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어두움의 사자에서 빛의 사자가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번 성탄에 이방의 빛으로 오신 우리 주님을 영접함으로 내 속에 있는 한가지 어두움이라도 물리치고 주님의 빛으로 치료받는 역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말라기 4:2절은 말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해는 치료의 광선을 발합니다. 그러나 그 치료의 광선의 효과를 누릴려면 햇빛을 맞아야 합니다. 이처럼 이방의 빛으로 오사 우리 속의 모든 어둠을 물리치시는 주님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어둠을 들고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어둠을 내어 놓고 주님의 빛을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만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시므온이 이방을 비추는 빛 예수님을 만난 것도 그가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고집, 내 주장 다 버리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해 주십니다. 나는 잘 하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겸손히 성령의 인도함 받아 회개하는 자에게 주님의 빛이 임하여 새사람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방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인생들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 속에 모든 어둠이 물러가는 빛의 성탄, 즐거움의 성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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