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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2:37-47

2004년 사도행전 설교
제 3 강
                                                     아름다운 공동체
말씀:사도행전2:37-47

오늘은 아름다운 초대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공동체! 이는 이 땅에 사는 우리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2:14-36절까지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무리들을 향해서 담대히 설교했습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무리가 십자가에 목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설교의 결과를 두 가지로 상세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즉각적인 결과(37-42)와 계속적인 결과(43-47)입니다. 이 결과에는 오늘날 우리 교회에 주는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놀라운 영적인 비밀들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로 충만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37절을 보면 무리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무리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주되신 예수님을 자신들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양심에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주되시고 그리스도 되신 주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고 회개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죄책감과 회개는 주되신 주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할 때임을 배우게 됩니다. 무리들이 이처럼 양심의 가책을 받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회개의 심정이 된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분명하게 선포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우리 믿음의 조상들에게는 죄의식이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에게는 죄의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마 이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람들에게 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시대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우리에게 선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깊이 인정하고 그 위엄과 영광 앞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그 위엄과 영광 앞에 서게 된다면 이 당시 무리들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십계명을 규칙적으로 암송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몰라서 주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서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죄책감을 못 느끼며 회개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긍휼을 구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지식적으로 십계명을 잘 알고 암송한다할지라도 우리가 주되신 주님 앞에, 엄위하시고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서에 소개된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직면하여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주님이 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의 면전에 서는 자만이 죄책을 갖게 됩니다. 진정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회개와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면전에 선다면, 곧 빛 되시고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주님의 고상한 인격 앞에 서서 그의 수난의 신비를 대하며 그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 모두는 다 우리의 입술에 손을 대고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 내가 어찌할꼬!” 탄식하며 외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세주요, 하나님의 영원한 형상이시며, 만유의 주라고 선포하였을 때 무리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외쳤던 것입니다.

무리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간구했을 때 베드로는 어떤 교훈과 권고를 했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는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죄에서 돌이켜 믿음을 갖는 전적인 전환을 촉구한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알고 그 주권 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과거의 약속이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자들에게 적용된다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으라고 권고했습니다. 베드로의 권고를 받은 무리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날에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된 수가 삼천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구속의 은혜와 그의 생명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가 낳은 첫 번째 결과는 눈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초조한 질문을 던지게 한 것은 설교자의 웅변력이 좋다거나 그의 주장이 논리적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일어난 놀라운 회개의 역사는 성령께서 이루신 역사였습니다. 성령께서 무리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떻게 할 것을 구했을 때 베드로와 그와 함께 한 사도들이 즉시 사람들에게 교훈하고 권고한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복종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은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님의 세계선교 사명을 수행할 도구로서 교회가 점점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께 돌아와 세례를 받고 복종한 자들은 무엇에 힘썼습니까? 42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 곧 성령의 친교에 힘썼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탄생한 초대 교회의 친교는 네 가지 의식 곧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힘쓰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들의 친교의식이 아니라 그 공동체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친교에 온 힘을 썼습니다. 곧 공동체 회복에 힘쓴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친교는 인간이 이루는 역사가 아니라 성령의 은사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친교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친교도 초대 교회에서 힘쓴 친교의 네 가지 원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친교 곧 사도의 가르침, 교제, 떡을 뗌, 기도는 예배의식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를 준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교회의 지체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예배의 회복은 강조하지만 이 친교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로 세워져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친교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친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친교가 회복되지 않고는 예배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친교가 회복하지 않고서는 교회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친교의 회복에 온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친교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 각자가 친교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가르침’과 ‘교제’가 마치 한 가지 사실처럼 함께 짝지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여기에 깊은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진정한 친교의 성격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일체감은 단순한 감정에서 나온 일치감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용된 ‘교제’라는 단어는 단순한 감정에서 나온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성도들이 모였을 때마다 사용했던 분명하고도 일정한 습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의 친교는 그저 평범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고받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마음에 쌓인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영적인 생활의 깊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는 교제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체험한 은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것을 강하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교입니다. 친교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초대 교회가 강한 교회요, 능력있는 공동체였던 이유는 친교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교를 통해 하나님의 참된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리기 서에 보면 아주 은혜로운 말씀이 나옵니다. 당시에 형식주의가 만연했을 때 말라기는 그것에 대해 청천벽력과 같이 말하기를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기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교제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무엇보다도 말씀공부에 힘쓰며 주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며 친교에 힘쓰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친교가 이루어지며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초대 교회와 같이 아름다운 공동체, 힘있는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또한 떡을 떼는데 힘썼습니다. 함께 떡을 뗐다는 것은 한 가족처럼 한 식탁에 둘러 앉아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떡과 포도주를 나눔으로써 주님을 기념하며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전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신대로 순종하여 성찬을 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그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통된 기도제목을 가지고 서로서로 합심하여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이 기도는 조직적이고 긍정적이며 명확한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에 분명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합심하여 함께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면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두려워하였다는 말이 암시하는 것은 주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처럼 이상한 새 공동체가 자기들의 생활 가운데 존재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그런 공동체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새로운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볼 때 그 당시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놀라운 공동체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자 그 결과로 또 다른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44-4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진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내 것 네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함께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교제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였는가를 말해 줍니다. 불신자들이 보기에도 감동이 되고 부러운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룸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하였습니다. 초대교회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잘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힘있는 교회 능력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은 큰 예배당을 짓고 조직을 잘 갖추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조직화 될 때 점점 그 역동성을 잃고 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유기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초대교회와 같이 영적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들 간에 말씀과 기도와 사랑의 섬김을 통해 친교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힘있는 교회 역동성있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해 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무엇에 힘써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우리의 공동체를 바라볼 때 초대교회 공동체와는 거리가 먼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서로 요구만하고 비판만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와 그리스도 되신 주님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무릎을 꿇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앞으로 돌아와 성도들의 친교를 실현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한 몸으로서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해 내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잘 증시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방법 곧 친교에 힘씀으로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영향력 있는 교회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며 개인의 삶 속에서나 교회 전체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아름다움과 영광과 자비하심을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나타내는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와 같이 친교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불신자들로부터 칭송을 들으며, 영향력이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져 가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각자가 힘써야 일이 무엇이며, 감당해야 할 구체적인 희생과 헌신이 무엇인가 연구하고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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