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256
  • 어제방문자 : 
    1,087
  • 전체방문자 : 
    1,418,463
조회 수 238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태복음 7:11
2004년 5월 9일

                                                            두 아버지

말씀:마태복음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번 주는 어버이 주간입니다. 어제가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모님들을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까? 가슴에 카네이션이라도 달아 드렸습니까? 아니면 전화라도 드렸습니까? 혹시 아직까지 부모님들께 감사하지 못하신 분들은 예배 후에라도 감사를 꼭 드리길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효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잠언기자는 잠언 23:25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또 신명기 5:16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6:1-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되는 길이요,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분들은 부모님들께 꼭 감사를 드리길 바랍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어버이날만이라도 특별히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들 중에는 자식들을 잘 길러 주신 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가 우리를 잘 길러 주셨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공경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도 공경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아버지를 어떻게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간을 맞이하여서 특별히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에게는 두 아버지가 계십니다. 한분은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이 땅에 계신 육신의 아버지시고, 또 한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떤 분입니까? 9-11a절에 보면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이 세상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합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떡을 주고,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을 줍니다. 게임기를 사달라면 게임기를 사주고, 운동화를 사달라면 운동화를 사줍니다. 자신은 굶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어 합니다. 자신은 못 입어도 자식들에게는 예쁜 것으로 입히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못 배워도 자식들만큼은 많이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뼈가 으스러지도록 수고 합니다. 이처럼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식을 위해 모든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부모가 없습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만은 모든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합니다. 부모가 되어보신 분들은 이를 이해 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신이 고생하더라도 자식만큼은 고생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자신이 대신 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식이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었으면 자신이 대신 죽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를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고 한들 부모님의 은혜보다 높은 것이 없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어버이날 부르는 “어머님의 은혜”라는 노래에 부모님의 이 같은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이 진자라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달토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한이 없어라.”

    저는 엊그제 집사람과 함께 시골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뵙고 왔습니다. 팔십이 다 된 나이에 자식들을 위해 힘든 농사를 짓고 계시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많이 아프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머니의 은혜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하겠습니다만 저희 어머니도 많은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시느라 호강한번 못해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오직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살아계실 때 외식한 번 못해 드리고, 놀러 한번 모시고 가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특별히 저는 나이가 먹어 갈수록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기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그 깊은 마음과 속정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자녀들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지만 상대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표현이 잘 안되어서 그렇지 어머니의 사랑과 다를 바 없으며, 어떤 면에서 보면 더 깊습니다. 동아일보에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에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들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어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배 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존재입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분들이나 저같이 나이가 먹어 가면서 이 같은 아버지의 존재를 이해하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말없는 아버지는 그 깊은 속정을 가지시고 자식에게 모든 좋은 것을 해 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도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지도 못하고, 우리의 생명도 책임져 주시지 못합니다. 우리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속수무책입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주지도 못합니다. 때때로 연약하여서 약속을 지키시지 못합니다. 신실하지 못하여 우리를 실망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신실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일생 가슴에 상처를 앉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버지 같이 되고 싶지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어떠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저자는 “하물며”라는 비교급을 사용하여 도덕적으로 타락한 악한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선한 아버지를 비교시키고 있습니다. 곧 세상의 악한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데 하늘에 계신 선한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선한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비교급을 사용하여 하늘에 계신 선한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선한 아버지께서는 그 구하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하신 주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죄가 없으신 선하신 주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신실하신 주님이십니다. 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약속하신 대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사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위해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이 미쁘시고 선하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합니까?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7,8절에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식이기 때문에 모든 좋은 것을 줍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몸으로 낳은 자기 핏줄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을 줍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십니다. “구하는 자”란 그 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며 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좋은 것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본문에 사용된 떡이나 생선과 같은 말은 일상적인 삶에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들의 초점은 그와 같은 구체적인 물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보살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좋은 것도 구체적인 물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을 말합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도 자식을 절대적으로 보살펴 주듯이 하늘에 계신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도 그 구하는 자들을 절대적으로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가 이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건강을 구할 때 건강을 주십니다. 지혜를 구할 때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구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반드시 주십니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신실하게 보살펴 주십니다. 믿고 의지하며 구하는 자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늘에 계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참아버지 되심을 고백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3 [사도행전 8장] 복음이 사마리아로 사도행전 8:1-13 손재호 2447
42 [사도행전 7장] 순교의 면류관 스데반 사도행전 7:54-60 손재호 3535
41 [사도행전 5장] 사람보다 하나님을 사도행전 5:17-32 손재호 2447
40 [사도행전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도행전 5:1-16 손재호 3151
39 [사도행전 3장] 진정 구해야 할 것 사도행전 3:1-10 손재호 2990
» [마태복음 7장] 두 아버지 마태복음 7:11 손재호 2387
37 [마태복음 18장] 어린이와 천국 마태복음 18:3 손재호 2403
36 [요한복음 6장] 떡돌이와 떡순이 요한복음 6:35 손재호 2354
35 [누가복음 7장] 일어나라 누가복음 7:11-17 손재호 2897
34 [이사야 50장] 웰빙이냐? 고난이야? 이사야 50:6 손재호 2412
33 [사도행전 2장] 초유의 사건 사도행전 2:1-4 손재호 3073
32 [사도행전 2장] 아름다운 공동체 사도행전 2:37-47 손재호 3018
31 [사도행전 6장] 약한 교회, 강한 교회 사도행전 6:1-7 손재호 2282
30 [교회론]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 엡 4:13-16 손재호 2667
29 [교회론 마20:20-27] 섬김과 교제의 공동체 마 20:20-27 손재호 2177
28 [예배론 요4:23-26] 예배하는 공동체 요 4:23-26 손재호 2257
27 [교회론 딤3:14-16] 교회의 사명(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 3:14-16 손재호 2638
26 [교회론 고전3:16,17] 하나님의 성전 고전 3:16-17 손재호 2677
25 [교회론 고전12:12-27] 그리스도의 몸 고전 12:12-27 손재호 2513
24 [교회론 마16:13-20] 교회란 무엇인가? 마태복음 16:13-20 손재호 259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