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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3:1-10

2004년 5월 23일 설교

                                               진정 구해야 할 것

말씀:사도행전 3:1-10
요절:사도행전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제 친구 중에 어릴적부터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년 동안 이 친구 집에서 같이 살면서 가방을 들어 주고 함께 등하교를 하였습니다. 이 친구의 손과 다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친구와 함께 살면서 이 친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나의 도움과 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육신의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탁구도 잘치고, 기타도 잘 쳤습니다. 제가 탁구를 이 친구에게서 배웠습니다. 또 이 친구는 항상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이 친구 덕분에 저도 많은 노래를 배웠습니다. 이 친구는 특히 소위 의식 있는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 때 그 친구와 제가 자주 부른 노래는 '태양은 묘지위에', '옛 친구’같은 노래였습니다. 참으로 이 친구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아름다운 삶을 살던 친구였습니다. 그 비밀은 이 친구의 마음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밝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통해 은과 금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첫 기적 사건입니다. 곧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켜 세운 사건입니다. 이 앉은뱅이가 구해야 할 것은 은과 금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앉은뱅이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은과 금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였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는 불구가 아니지만 생각이 병들과 마음이 병이 들어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소위 영혼의 앉은뱅이들입니다. 이런 우리 인생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통해서 우리 인생이 진정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일어나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 시간에 함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들은 라이벌이었습니다. 그것도 보통 라이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성격적으로나 삶의 스타일부터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지만, 요한은 시인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실천적인 사람이었으며, 요한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놓고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원한 맞수였습니다. 이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라이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지나고, 오순절이 지난 뒤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아름다운 동역자가 되어 함께 동역하며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들이 다정하게 함께 걸어간다는 그 자체가 큰 은혜가 됩니다. 이들은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맞추어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함께 성전으로 올라 간 것은 기도하러 간 것인지, 아니면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나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성전으로 올라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씩 기도하였습니다. 하여튼 두 사람은 다정하게 성전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메고 왔습니다.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40세쯤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40년 동안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보거나 뛰어보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장애인들도 보조기를 하고 또한 기술을 배워서 직업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보조기도 없었고 스스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직업은 거지였습니다. 그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것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몇 살 때부터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수십 년 동안 그 곳에서 구걸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되어서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미문으로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참으로 운명적이고 슬픈 인생을 사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함께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입니다. 곧 베드로와 요한 속에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로 말미암아서였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함을 보고 구걸하였습니다. '선생님! 한품 줍쇼.' 이 때 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을 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은 먼저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있던 세리 레위를 주목하여 본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 거지를 동정어린 눈길로 쳐다보며 동전 한 닢을 던져주며 지나갔지만, 이 사람의 존재 자체를 깊이 관심 갖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앉은뱅이 거지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은 깡통에 몇 푼의 적선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깊은 애정과 사랑으로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뭔가 얻을까 하여 쳐다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그에게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과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그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번도 쓰지 않아 말라빠진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은 앉은뱅이를 일으켜 걷게도 하고 뛰게도 하며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앉은뱅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그의 얼굴과 변화된 모습에 심히 놀랐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앉은뱅이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배우게 됩니다. 곧 우리 인생이 진정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배우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 이 앉은뱅이가 구해야 할 것은 은과 금이었습니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였습니다. 사람들도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돈 몇 푼씩 적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앉은뱅이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은과 금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뇌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는 그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라고 했습니다. 앉은뱅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처럼 걸으며 뛰는 것이었습니다. 또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에게 이것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앉은뱅이는 일어나 걷게 해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은과 금을 구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40년이 넘게 여전히 앉은뱅이로 구걸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앉은뱅이를 베드로는 불쌍히 여기고 자기 속에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오른 손으로 그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 때 그가 일어나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를 진정으로 변화시킨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였습니다.

우리 인생에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복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은과 금입니까?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은과 금을 구할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구해야 합니다. 인류는 앉은뱅이 입니다. 앉은뱅이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 밖에 있었습니다. 산처럼 장엄하게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전 문 밖에, 곧 사람들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위치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을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는 앉은뱅이 같이, 비록 아름다움 앞에 있지만 그것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랑스럽고 선량한 일들 가운데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배제된 상태에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미문 앞에서 한숨을 쉬며 슬픔에 젖어 고통할 뿐,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인간은 놓여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의 질병으로 앉은뱅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병들어 앉은뱅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취직문제로 인해 앉은뱅이처럼 사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각자 많은 인생문제와 죄로 인해 앉은뱅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구걸을 한 것처럼 우리 인생의 현실 문제를 위해 구걸합니다. 은과 금을 구합니다. 은과 금만 있으면 일어나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은과 금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를 걷게 하고 뛰며 찬미하게 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였습니다. 우리가 은과 금을 구하기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구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로 말미암아 일어나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와 같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로 사람들을 일으키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영광 돌리게 하는 삶을 살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생계를 이어갈 은과 금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속에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권세로 앉은뱅이를 고쳐 스스로 벌어먹도록, 하나님의 찬미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기독교는 상처와 저주 속에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치유없이 자선금이나 몇 푼 던져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여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자기 발로 걷게 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찬미하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마비 상태에서 구출해 낼 수 있는 은사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앉은뱅이와 같은 사람들의 어긋난 발목 관절을 되맞출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철학을 가르치려고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무능함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하나님을 찬미하며 경배 하도록 오셨습니다. 우리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같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를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하나님을 찬미하여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베드로와 같이 인격적이고 즉각적으로 나아가 오른손으로 앉은뱅이들을 잡아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마암아 일어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놀라운 역사를 창조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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