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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도행전 22:30-23:35

2005년 5월 22일 설교
                                                      주께서 내 곁에
말씀:사도행전 22:30-23:35
요절:사도행전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의기소침해 있는 바울에게 주님께서 밤에 심방오셔서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시는 사건입니다. 성령이 경고한 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이로인해 바울은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주님께서 이런 바울곁에 서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하시며 용기를 북돋워 주셨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선한 일을 위해 힘쓰다가 낙심한 자들과 늘 함께 해 주시며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두움에 빠져 있을 때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셔서 격려해 주시고 함께하사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어가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폭동 가운데서 바울은 로마 천부장의 도움으로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왜 송사하는지 알기 위해 바울을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공회 앞에 선 바울은 형제들을 향하여 “오늘날까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했습니다(23:1). 그러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바울 곁에 있는 사람에게 그의 입을 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 때 바울은 그를 향하여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지도자로 임명된 사람인줄 알았을 때 그는 사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과는 불의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그의 항거 방법에 대한 사과였습니다. 바울은 산헤드린에 두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 중에 한 부류가 바리새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23:6).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산헤드린을 혼란에 빠뜨려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부활의 복음을 그의 형제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형제들에게 복음 증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까지 버리면서 장로들의 요청에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실패를 만회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옇튼 바울은 하루 종일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으며 자기를 비난하는 자들과 양보없는 일전을 치루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습니다. 심문은 끝나고 바울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캄캄한 밤 홀로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당시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바울은 엊그제 형제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비난하는 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그는 진이 다 빠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지만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의 머릿속은 지난 이틀 동안 당한 비참한 실패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을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바울은 실패감과 자신의 미래 사역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19:21절에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까지 갔어 전도하고자하는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열망을 앉고 그는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볼 때 바울은 로마까지 갈 수 있는 가망성이 희박해 보였습니다. 그는 패배의식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괴로워 하였습니다. 그날 밤은 그의 전도 사역에 있어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이 희망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승리의 소망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바울에게 심방오셔서 그와 함께해 주시고, 그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23:11절에 보면 그날 밤에 주께서는 감옥에 친히 바울을 심방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서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주님은 실패감과 낙심에 빠져있던 바울을 심방오셔서 그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셨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바울이 당한 고난과 아픔과 낙심과 절망에 동참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바울이 겪은 일들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홀로 예루살렘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사 모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사 모든 고난을 이겨 내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바울을 동정하시고 그의 고난에 동참해 주신 것입니다. 동정은 단순히 가엾게 여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동정은 남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고 거기에 함께 동참하며 함께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바로 바울의 고난과 아픔을 자신의 고난과 아픔으로 여기시고 거기에 함께 동참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보다 더 한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힘들고 어려움에 처할 때 백 마디 말로 위로하기보다 그의 고난과 아픔에 함께 동참해 주는 동정이 진정으로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친구 부모가 상을 당하면 친구들은 밤을 세며 친구와 함께 해 줍니다. 이렇게 할 때 친구는 진정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고난과 실패로 의기소침해 있는 바울을 심방오시고 그의 아픔과 고난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모든 근심과 절망과 의심을 일소해 버릴 말씀을 주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할렐루야! 주님은 의기소침해 있는 바울에게 먼저 ‘담대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예루살렘에서의 실패 때문에 패배감에 빠진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하였다’고 그의 수고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미래에 대한 의구심에 사로잡혀 있는 바울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시기 위해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가장 절망스럽던 밤에 주님으로 인해 가장 영광스럽고 복되고 빛으로 충만한 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으로 인해 놀라움과 감격에 사로잡혔습니다.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현재 많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 처해 있지만 결국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의기소침해 있던 바울을 심방오신 주님은 우리가 어떤 어두움에 빠져 있을지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격려해 주실 때 감옥은 성소로 변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인정해 주실 때 어두운 밤은 햇빛으로 충만한 낮으로 변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에게 소망을 심어 주실 때 절망이 변하여 소망과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이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로인해 낙심하고 실패의식에 사로잡혀 소망을 가질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해 주십니다. 늘 우리 곁에 서 계시며 우리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해 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소망을 심어 주십니다. 승리의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항상 우리 곁에 서 계시며 위로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항상 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며 승리의 감격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23:12-35절 말씀은 어떻게 바울이 주께서 밤에 그에게 하신 말씀대로 담대하게 되었는지,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밤이 지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감옥에 있었고, 밖에는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적대적인 세력이 점점 증가해 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점점 증대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밤에 어두움 속에서 나눈 주님과의 거룩한 사귐에서 흘러나오는 평화가 바울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괴롭히고 무겁게 내리누르던 온갖 위험들을 겪으면서도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를 읽어보면 바울은 환난에 대해서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후 11:24-27절에 보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환난 가운데서도 조금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도리어 모든 상황을 선한 기회로 선용할 수 있었던 것은 감옥에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12-15절에 보면 유대인 사십명이 당을 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혼자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도와 주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는 신자들이 기도회를 열어서 그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행 12:5). 그러나 바울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바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유일한 사람은 천부장인 글라우디오 루시아 뿐이었습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결심한 사람들은 종교적인 열광에 사로잡힌 자들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극렬한 적대감은 종교적인 광신에서 나오는 적대감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아랍의 극렬 테러리스트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유일신을 믿는 원리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성전을 위해서 가장 극렬한 테러를 자행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처한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어떤 빛도 그가 처한 어두움을 비추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침착하고 강했습니다. 밖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담대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어떤 적대적인 세력도 주님의 목적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음모 속에서 주님은 어떻게 바울을 건지셨습니까? 유대인들의 음모로부터 바울을 건지신 기록 속에는 주님의 가시적인 손길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불기둥 구름기둥을 사용하신 것처럼 그런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밤에 감옥에서 바울과 함께 하시고 말씀하신 것 밖에 어떤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일상 생활 속에서 역사하사 바울을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바울은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생질과 천부장을 사용하셨습니다. 사십 여명이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그의 생질이 듣게 되었습니다. 생질은 즉시 바울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바울은 생질에게 천부장 루시아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천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들의 음모를 봉쇄하게 하셨습니다. 천부장은 사십 여명의 유대인들이 공회로 오는 길에 매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이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고 밤 제 삼시에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으로 바울을 호위하게 하여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 벨렉스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에 대한 자세한 서신을 써 보내어 그를 변호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사람인줄 알고 구원하였으며, 유대인들이 송사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공회를 열었으며, 그들이 송사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율법문제 때문이며, 그를 죽이거나 결박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34,35절에 보면 이에 총독은 바울을  헤롯 궁에 거하게 하고 군사들로 하여금 그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생질과 천부장의 마음을 움직여 바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바울을 유대인의 손에서 건저내어 로마로 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고 하신 그 말씀을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일상 생활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사 기적의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연적인 삶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십시오. 호기심 많은 바울의 생질이 유대인들의 음모를 듣고 위기의 순간에 바울에게 와서 위험을 알리도록 역사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역사하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에스더서 6:1절에 보면 “왕이 밤에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아하수에로 왕으로 하여금 잠 못 이루게 하였습니까? 바로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왕들의 전기를 가져와 읽게 하였습니다. 그는 왕들의 전기를 읽다가 모르드게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모르드게가 하만의 간계로 죽음 직전에서 구원을 받고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소한 자연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우리의 삶은 여러 가지 일들이 복합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지만 결국은 주님에 의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 보십시오. 온통 혼란 투성이 일뿐입니다. 문제 투성이 일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 속에서는 소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도움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소한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구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큰 것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봉사하도록 만드십니다. 필요하다면 로마 군사로 하여금 우리를 호위하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창한 이적을 일으키셔서 바울을 유대인들의 음모로부터 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음모에 대해서 들은 생질을 통해서 그를 구하셨습니다. 우리의 실제 삶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날마다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주님 안에서 늘 승리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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