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4:31-44
강설날짜 2020-02-09

2020년 누가복음 공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들

말씀:누가복음 4:31-44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후 가버나움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이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에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33-37),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며(38-39),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40-41).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42-44).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1-32절에 보면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후에 가버나움에 오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나사렛에서 북서쪽으로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 가셨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있지만 마태는 예수님께서 거기 사셨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마 4:13). 그리고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마태는 그 도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본 동네’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전반부를 보면 가버나움이 그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2년 동안 가버나움에 사시면서 전도여행을 다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공생애 사역을 섬기신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갈릴리 사람들을 경멸할 것을 예언했었습니다. 이사야 9:1-2절을 보면 “전에 고통 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고 했습니다. 마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갈릴리에서 공생애 사역을 섬기신 예수님의 역사를 증거 하였습니다(마 4:14-16). 예수님은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의 말씀을 따라 갈릴리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섬기셨습니다. 가버나움도 갈릴리에 속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섬기심으로 이방의 갈릴리가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후 가버나움에 오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권세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1:21-22절에 보면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뭇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는데 그 가르침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다’는 말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단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십니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의 권위를 가지시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계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버나움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공통적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했지만 서기관들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말씀에 권세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31절에서 ‘가르쳤다’는 말은 원문으로 보면 ‘가르치고 있었다’(엔 디다스콘, ejn διδάσκων)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간헐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지속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권세가 있었음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권위 있는 말씀을 선언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말씀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신적 권위를 나타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3-35절에 보면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가리치고 계셨을 때 거기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는 회당에 다녀도 귀신들린 것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신적 권위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자 그 정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아! 나사렛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Ea, 에아)라는 말은 감탄문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감탄문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오는 감탄문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자는 회당 안에 말씀을 가르치고 계신 이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자신을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하고 외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더럽고 짐승 같은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갑자기 그 귀신이 그 회당에 누가 있었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라고 외치며 저항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그러면서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34). 더러운 귀신들린 자에게서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은 귀신의 절대적인 패배의 고백이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찬 목소리였으며, 반항하면서도 그리스도에 관하여 고백하는 말이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멸하러 오신 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35절에 보면 이에 예수님께서 그를 향하여 꾸짖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잠잠하라’라는 말은 ‘휘모오’(fimovw)라는 말인데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재갈 물리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뿐만 아니라 언제나 귀신들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셨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을 잠잠케 하시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더러운 귀신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넘어뜨리고 나왔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 나왔지만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36절을 보면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이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다 놀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놀랐다’는 말은 ‘담보스’(qavmbo")라는 말인데 이 말은 놀라움으로 인해 ‘마비되다’, ‘경악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32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다’(ejkplhvssw, 에크플렛소)고 했을 때와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세가 있어서 그들은 깜짝 놀랐지만 그러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는 기가 질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에 도덕적 감화력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는 도덕적 해석 이상의 권위를 지니고 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능력의 권세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라서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말씀하셨던 바로 그분의 목소리가 악한 영에게 들려지자 곧 그 영이 순종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 있다가 말문이 열려서 서로 의논했습니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36).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만 하셨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속임수나 주술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닙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더러운 귀신이 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권세자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음부의 주인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졌습니다(37).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이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의 하나였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단의 이용을 받는 악한 영들입니다. 이들의 특성은 사단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짓말하는 자로서(요 8:44)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속이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합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게 하여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못 하게 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며 다니신 각 지역에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일이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13:2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서의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귀의 역사는 그들이 멸망 당하는 날까지 계속됩니다. 이 마귀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방해 합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곧 하나님 나라를 대적합니다. 본문의 더러운 귀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자인 줄 압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지도 압니다. 자기들을 영원히 멸하러 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자기들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그 권세를 나타내실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온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의 권세는 하나님 자신의 권세입니다. 그 권세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로 행해지는 것은 사단의 나라와 그 권세를 멸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주로서 사단의 나라와 그 권세를 멸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을 멸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단이 요구하는 표적을 거부한 대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지금 구원의 시대가 도래 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메시아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 마귀의 권세를 파하심으로 마귀의 종노릇하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할 구원자가 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 가운데 마귀의 권세가 파하여 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38-39절을 보면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후에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한 열병’(puretw megavlw/)은 의학적 용어로써 ‘중한’으로 번역된 단어가 ‘메가스(mevga")’인데 이는 ‘큰’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열병의 심각성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예수님께 구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의사들이 하는 것처럼 그녀 곁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여기서 ‘꾸짖다’는 말은 ‘에피티마오(ejpitimavw)’라는 말인데 이 말은 35절에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다고 하셨을 때 그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듯이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열병에서 놓임을 받은 시몬의 장모는 곧 일어나 예수님 일행을 수종들었습니다. 그녀가 곧 일어나 수종을 들었다는 것은 열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한 치료자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40-41절을 보면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사건과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신 소식을 듣고 해질녘에 각색 병든 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일일이 손을 얹어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치유 중에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이 나가면서 소리 지르기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면서 그들에게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을까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말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이 하는 말이 맞지만 음부로부터 신임장을 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셨지만 그들로부터 후원을 받으려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는 같은 용어로서 로마와 유대에서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의미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와 로마의 권력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촉발시킬 위험이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별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공개적으로 알려지게 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숨기시는 것입니다.

 

42절을 보면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날이 밝자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아마 조용히 기도 하시기 위해서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리가 예수님을 찾다가 만나서는 예수님이 자기들에게서 떠나지 못하도록 만류하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만류하다’는 말은 ‘카테코(katevcw)’라는 말인데 이 단어는 무언가 ‘꽉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낭떠러지로 밀어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28-29).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는 어떤 병자를 고치거나 기적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에서는 병자를 고쳐주시니 예수님이 그곳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꽉 붙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사명을 오해하고 방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버나움의 이러한 마음은 예수님이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43-44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는 그들에게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떠나지 마시고 자신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다른 동네로 가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보내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란 예수님이 죄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은 자들은 또다시 죽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입은 자들은 죽어도 다시 삽니다. 그들은 죽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새 생명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소식을 전하고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병 고쳐 주기를 바라는 자들의 요구를 물리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전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말씀 하신대로 부활 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셔서 오늘날도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히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허락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부활과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전도인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06 [누가복음 5장]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file 손재호 2020.02.16 34
» [누가복음 4장]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들 file 손재호 2020.02.09 55
704 [누가복음 4장] 나사렛에서 배척 받으신 예수님 file 손재호 2020.02.01 47
703 [누가복음 4장]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예수님 file 손재호 2020.01.26 28
702 [누가복음 3장]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file 손재호 2020.01.26 21
701 [누가복음 3장]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file 손재호 2020.01.26 15
700 [누가복음 3장] 세례 요한의 사역 소개 file 손재호 2020.01.26 8
699 [누가복음 2장] 소년 예수님의 성전 방문 file 손재호 2020.01.26 14
698 [누가복음 2장] 아기 예수님의 정결예식 file 손재호 2020.01.26 14
697 [누가복음 2장] 목자들에게 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 file 손재호 2020.01.26 13
696 [누가복음 1장] 세례 요한의 출생과 사가랴의 찬송 file 손재호 2020.01.26 9
695 [누가복음 1장]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찬송 file 손재호 2020.01.26 8
694 [누가복음 1장] 예수님의 수태 고지 file 손재호 2020.01.26 9
693 [누가복음 1장]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file 손재호 2020.01.26 7
692 [누가복음 1장]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file 손재호 2020.01.26 16
691 [에스겔 48장]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file 손재호 2020.01.26 12
690 [에스겔 48장] 새 예루살렘 성읍의 열두 문 file 손재호 2020.01.26 8
689 [에스겔 47장]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file 손재호 2020.01.26 10
688 [에스겔 47장]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file 손재호 2020.01.26 14
687 [에스겔 46장] 왕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성전예배 file 손재호 2020.01.26 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6 Next
/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