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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7:18-35

2020년 누가복음 공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말씀:누가복음 7:18-35

 

우리는 지난 시간에 나인이라 불리는 성의 과부의 죽은 독자를 살려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세례 요한이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인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 묻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백부자의 하인을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신 사건과 나인이라 불리는 성의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사건 등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이 모든 일들에 대해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3:19-20절에 보면 당시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분봉왕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한 일과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로인해 헤롯의 미움을 받아 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세례 받기 위해 나온 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책망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심판을 행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놓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거짓된 종교지도자들을 물리치고 정치권력도 물리치고 완전한 독립을 하는 그런 일들을 행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이 기대했던 메시아로서의 행하실 일을 전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께서 이방인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고,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그런 역사를 보고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의 이러한 보고를 듣고 과연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신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서 물었던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후에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오실 그이’는 ‘그 오실 자’라는 말로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에 관해서는 구약 성경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합 2:3; 말 3:1; 단 7:13).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오실 메시아가 구원 뿐만 아니라 심판자의 역할도 동시에 한다고 믿었습니다. 누가복음 3:15-17절을 보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그러한 심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여러 가지로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심판의 주로 기대했기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 곧 이방인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신 사건이나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사건들로 인해서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세례 요한의 보냄을 받은 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20). 이런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22절에 보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21절에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왔을 때 마침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고통과 악귀 들린 많은 자를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희 보고 들은 것을 고하라”고 하시면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러한 대답은 메시아가 왔다는 표적이었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구약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의 오심의 표적들입니다. 이시야 35:5-6절을 보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때’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곧 메시아가 도래할 때를 말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이사야 26:19절에도 등장합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 26:19). 또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씀은 이사야 61:1-3절에서도 말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1-3).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대답을 마치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보고 실족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보고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 때문입니다. 곧 평소에 기대한 메시아 상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의 기록된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역시나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메시아 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아 상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족하는 것입니다. 시편 73:1-14절을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에 보면 시편 기자는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을 보면서 실족할 뻔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기대와 다른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이런 항의를 합니다. 하박국 1:13-17절만 보면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며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륙함이 옳으니이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습니까? 그러면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하박국 2:4절에 보면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그 마음이 교만하고 그의 속에서 정직하니 못하니 그러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언제 실족할만한 때를 만납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열심히 했는데도 예수님이 전혀 도움을 주시지 않을 때 과연 예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아니면 자신이 기대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주님을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보면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볼 때 이 길은 실패한 길이요, 망한 길이요, 저주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르게 알므로 생명의 길을 가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24-26절을 보면 “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후에 무리들에게 세례 요한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세 차례나 같은 질문을 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24).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25).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26). 예수님께서 똑같은 질문을 세 차례나 반복해서 하신 것은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의 정체를 적절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두 질문은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은유적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고 합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곧 약하고 흔들리는 인물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 곧 편하게 사는 자기만족에 빠진 인물을 보려 나갔더냐?’는 것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힘들게 광야로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무리들은 광야로 나간 것이냐, 선지자를 보려고 나갔느냐는 것입니다. 옳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라는 것입니다(26). 여기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하신 것은 그가 예수님의 선구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라기 3:1절 말씀을 인용하여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사자 곧 하나님의 전령으로 소개합니다. 말라기 3:1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가 메시아 앞에서 길을 준비할 선지자가 온다고 한 그 선지가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예표 하는 것이기에 그 예언의 결국을 세례 요한이 목격하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28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례 요한이 누구를 증거 하였습니까?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세례 요한보다 큰 자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세례 요한은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들이 세례 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아져서 예수님을 지목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크다는 말은 개인의 권능과 역할과 일의 양에 따른 것이 아니라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서 보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서로 비교하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는 차원에서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는 것입니까?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활과 성령의 임하심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직접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이 구약의 성도들보다 크다는 의미가 우리가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나은 것이 있어서 크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간에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보든지, 신약의 사도들의 이야기를 보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보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실 때에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29-30절을 보면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백성들과 세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았을까요? 자신들은 의롭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무시한 것입니다. 그냥 무시한 것이 아니라 조롱하며 귀신들린 자들이라고 배척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어떤 자들과 같다고 하십니까? 31-32절을 보면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비유합니다. 아이들이 장터에서 결혼놀이와 장례놀이를 하며 노는 것입니다. 결혼놀이는 피리를 불면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과 함께 놀기 위해 놀이를 바꾸는 것입니다. 장례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곡을 할 테니 울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울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로 이런 아이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가지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례 요한이 떡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귀신들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먹고 마시니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장터의 아이들이 춤을 추고 애곡을 해도 춤도 추지 않고 울지도 않는 아이들과 같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냉소적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로 모여 무엇을 봐야 합니까? 예수님을 봐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증거 한 메시아, 신약의 사도들이 증거 한 메시아, 곧 예수님을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시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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