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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7:36-50

2020년 누가복음 공부

향유 부은 여인을 축복하신 예수님

말씀:누가복음 7:36-50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세례 요한이 보낸 두 제자들에게 대답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고 가서 그 집에 앉아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고 가서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그 동네에 살던 한 죄 많은 여자가 나아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으며 그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사건은 네 복음서 중에 누가복음에만 등장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6절을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자기와 함께 식사하기를 청하였습니다. 당시 마을에 방문한 랍비나 교사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친 후에 식사 초대를 받는 것은 상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식사 초대를 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식사 초대를 했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에 응하셔서 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습니다.

 

40절에 보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식사 초대를 한 이 바리새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만찬은 격식을 갖춘 자리였습니다. 36절에서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라고 했을 때 ‘앉으셨다’라는 말이 ‘카테클리데’(kateklivqh)라는 말인데 이 말은 ‘비스듬히 앉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세는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을 때 가지는 자세입니다. 유대인들이 음식 먹을 때 비스듬히 앉는 것은 몸은 자신의 왼쪽 팔꿈치에 기대고 얼굴은 음식과 사람들을 향하고 발을 바깥으로 뻗고 오른쪽 팔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세입니다. 이는 공식적인 만찬에서 볼 수 있는 관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고 그 집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그 동네에 살던 한 죄인인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뒤로 가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여인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어떤 죄인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이 여인이 어떤 죄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이 여인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을 볼 때 아마도 그녀는 매춘부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당시 세리나 낙타를 모는 사람 등은 직업으로 인해서 정결규례를 어기게 됨으로 불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의 경우는 도덕적인 문제로 인해서 죄인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으며 향유를 부어드린 것입니다.

 

당시 공중 앞에서 여인이 머리를 풀어헤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이혼 사유까지 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5절에 보면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자의 긴 머리카락은 여자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권세 아래 있다는 표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은 여자의 영광이라는 그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여기서 여자의 행동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37절과 38절에서 누가는 여덟 개의 동사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여자의 적극적인 행위를 강조합니다. 여자는 예수님이 있는 곳을 알았습니다.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 발 곁에 섰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동사들은 여자의 놀라운 결심과 헌신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이 모습을 본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39절을 보면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식사 초대를 한 이 바리새인 시몬은 여인의 이와 같은 행동을 받아주시는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39). 우리가 앞에서 봤습니다만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죄인이라면 창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면 예수님이 부정하게 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죄 많은 여인의 행동을 물리치지 아니한 예수님을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은 죄 많은 여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니 선지자도 못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아마 이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이 선지자인줄 알고 식사 초대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바리새인 시몬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40-42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시몬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고 그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그러자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께 “선생님! 말씀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비유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빚을 졌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졌고,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의 빚을 졌는데 둘 다 갚을 능력이 없으므로 돈을 꾸어준 사람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두 사람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질문 하시기를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빌린 돈은 각각 2년치와 두 달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질문에 바리새인 시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43절을 보면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은 “많이 탕감 받은 자입니다”고 했습니다. 빚을 탕감 받은 두 사람은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특히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은 더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몬의 대답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죄 많은 여자가 이야기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질문 하신 이후에는 이야기의 초점이 바리새인 시몬에게로 옮겨갑니다. 누가는 독자들이 시몬을 피상적이고 자기식대로 평가하고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선생님’(디다스칼레, Didavskale)이라고 불렀습니다(40). 이는 유대의 현자들과 종들의 사회에서 존경의 뜻으로 부른 호칭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질문에 피하지 않고 그 비유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하고 대답했습니다.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의 판단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판단이 옳다고 하신 후에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44-47절을 보면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이 여인과 바리새인 시몬을 비교하십니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로 주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내 발을 씻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손님이 오면 발 씻을 물을 주고 종을 시켜서 발을 씻겨 드리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시몬은 그런 예의조차도 행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 맞추었다고 합니다.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다고 합니다. 발에 입을 맞추거나 향유를 머리에 붓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이며 친근함과 존경을 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누가의 관심은 만찬에 참석한 예수님, 죄 많은 여자, 바리새인 시몬이지 만찬의 사회적인 예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지적한 세 가지 사항 곧 발을 씻는 것과 입 맞추는 것과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사실상 일반적으로 요구된 예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일반적인 만찬 예법과 비교하고 특히 죄를 지은 여자의 엄청난 환대에 비하면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환영한 모습은 분명히 냉담해 보입니다. 역설적으로 만찬에 갑자기 들어온 여자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초대한 초대자인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환대를 말로 표현된 신앙고백은 아니지만 감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시몬과 이 여인을 비교한 후에 놀라운 선포를 하십니다. 오늘 본문 47절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녀의 죄를 눈감아 주거나 거론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많은 죄’라고 분명히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많은 죄가 용서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47). 48절에도 보면 예수님은 다시 한번 이 여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합니다.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48). 예수님께서는 두 번에 걸쳐서 그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언하셨습니다.

 

47절과 48절에서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선언하신 죄 사함의 선언은 헬라어 동사 시제가 완료 수동태 직설법입니다. 곧 ‘용서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용서한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5:20절에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신 그 장면에 나타난 시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누가복음 5:20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인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신 것은 그녀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저의 사랑이 많음이라”(47).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저의 사랑이 많았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분문의 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몬을 포함한 바리새인들이 충격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아무 공로 없이 은혜를 베푼 사실입니다. 누가가 앞에서 곧 41-42절에서 제시한 비유에서 빚을 진 두 사람이 은혜를 입은 것은 그들 편에서 행한 무슨 공로와는 상관이 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 5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구원이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믿음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0절을 보면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행한 이 행동들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결과로 나온 행동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죄 많은 여인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통해서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여자가 37절과 38절에서 계획적으로 행동한 모습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용서의 원천은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런 공로 없이 그녀를 영접한 모습은 식탁에 앉은 손님들과 시몬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시몬과 손님들에게 충격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자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50).

 

그러면 여기서 이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해서 죄를 사함 받은 것입니까? 죄를 사함 받았기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이미 사함을 받았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고 사함을 받은 일이 많은 자는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시몬은 자신이 사함을 받은 일이 없다고 여긴 사람이지만 이 여인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죄인입니다. 많은 죄를 사함 받은 것입니다. 많은 죄를 사함 받았기에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여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와서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며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의 발을 씻기시며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그의 발에 향유를 부어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을 표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용서의 사랑을 덧입고 그 주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우리 주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자 함께 식사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48-49절을 보면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이미 죄를 사함 받았기에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눈물로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향유를 발에 부어 그 발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을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리새인 시몬과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기를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로 알았는데 이제는 죄를 용서했다고 하니 더욱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니 죄 사함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알리시기 위하여 중풍병자에게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내 죄 사함을 받았다”고 먼저 선언 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왔습니다(롬 6:23). 그러므로 죄가 해결되어야 사망이 해결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를 사하신다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떡을 주시며 자신의 살이라고 하셨습니다. 잔을 주시면서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22-25절을 보면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를 살리는 참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만 죄 사함이 있고 영생이 있고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속죄를 입은 자는 자신의 죄를 알면 알수록 더 주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주님의 죽으심의 사랑이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계시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구주이심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인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자 시몬과 거기에 식사에 함께 참석했던 자들이 속으로 말하기를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49).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0절을 보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에서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47-48). 이 예수님께서 다시 50절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죄 많은 여인이 죄 용서함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믿음에 의해서 되어진 것임을 시몬이나 거기 식사 모임에 함께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 자신이 죄 사함을 주시는 구주이심을 알게 해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식사 초대에 응하신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이 어떤 사람인 줄 아시면서도 불구하고 그의 초청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어 그와 거기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한 한 섭리로써 죄 많은 여인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구주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아가 죄 사함의 은혜를 덧입고 그 은혜를 힘입어서 더욱 우리 주님을 사랑함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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