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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8:26-39

2020년 누가복음 공부

거라사 광인을 고쳐주신 예수님

말씀:누가복음 8:26-39

 

지난 시간에 우리는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케 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에서 깨어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거라사 광인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6-27절을 보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일행은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의 동쪽 지역은 열 개의 도시들이라는 데가볼리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이었습니다.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의 동쪽 해안가가 아니라 남동쪽의 내륙으로 50km 이상 들어간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가라사’라고 하지 않고 ‘거라사인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릴리 호숫가까지를 포함한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거라사인의 땅에 내리셨을 때에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형편이 어떠합니까?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집에 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이 거라사 광인의 상태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5:3-5절을 보면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마가는 거라사 광인에 대해서 좀더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가에 의하면 거라사 광인은 훈육될 수 없으며, 무덤 가운데서 부르짖으며,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쇠사슬과 쇠고랑을 부술 정도의 괴력을 지닌 것으로 묘사합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는 그에게 고통을 가하는 악한 존재들은 갈릴리 호수에 떠 있는 배를 공격하는 폭풍과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 28-29절을 보면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고 했습니다. 29절의 괄호부분을 보면 귀신이 이 사람을 가끔 붙잡으면 쇠사슬과 쇠고랑에 매어둔 것도 끊어버리고 광야로 달려 나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평행구절인 마가복음에서 보았듯이 이 거라사 광인은 자기 몸을 돌로 상하게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악한 귀신 들린 거라사 광인이 예수님을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이렇게 귀신들린 자가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거라사 광인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고 부르짖은 것은 귀신들린 자의 편에서 싸움도 해보지 않고 먼저 항복하는 것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거라사 광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거라사 광인의 이와 같은 선언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신 사건에서 제자들이 제기한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25)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공관복음 모두에 보면 폭풍을 잔잔케 하신 장면(8:22-25)에 이어서 오늘 본문 곧 거라사 광인을 치유하신 사건을 배열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는 혼돈과 파멸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능력과 긍휼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히 드러냅니다. 폭풍을 말씀 한마디로 잔잔케 하시고 거라사 광인을 고쳐 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광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군대’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군대’는 헬라어 원문에 보면 ‘레게온’(legiwvn)인데 이는 로마 군대의 가장 큰 군대 조직을 말합니다. 대략 5,600명의 군대로 구성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군대는 대부분 이방의 데가볼리에 주둔시켰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광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군대’라고 대답한 것은 그가 많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그가 ‘군대’라고 대답하므로 그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물으심으로 그의 정체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귀신은 정체가 드러나면 쫓겨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정체를 드러내시자 이 군대귀신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31절에 보면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그 군대 귀신은 무저갱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말아달라고 예수님께 간청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무저갱’은 헬라어로 보면 ‘아뷔소스’(a[busso")라는 말인데 사복음서에서 이곳에만 등장합니다. 이 ‘아뷔소스’는 마소라 본문의 ‘테홈’(!/hT] 또는 !hoT])을 번역한 것입니다. ‘테홈’은 ‘태고의 바다의 깊음’(창 1:2, 7:11; 욥 28:14) 혹은 ‘땅의 깊음’(신 8:7; 시 71:20)을 가리킵니다. 신약에서 ‘아뷔소스’는 ‘죽은 자들의 처소’(롬 19:7) 혹은 ‘악한 영들의 영역’(계 9:1, 2, 11, 20:1, 3)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인데 사단과 그의 졸개들이 갇혀있는 곳입니다. 이것을 볼 때 귀신들이 자기들의 운명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요한일서 3장에 보면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요한일서 3:8절을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귀들이 예수님을 보고서 자기들의 멸망의 때가 된 것임을 알고 벌벌 떠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군대 귀신이 간청하기를 자신들을 무저갱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보면 그들은 돼지 떼들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몰사하였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 마태는 돼지 떼를 ‘많은 돼지 떼’라고 했고(마 8:30), 마가는 ‘이천 마리 되는 떼’(막 5:13)라고 하였습니다. 마가의 말대로 이천 마리나 되는 떼라면 엄청난 돼지 떼가 죽은 것입니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보면 이에 돼지를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려고 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 된 것을 보기 위해서 와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35절에 보면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기 위해 왔다가 귀신이 나간 거라사 광인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귀신에 들려 옷도 입지 않고 무덤 사이에 거하며 아무도 재어하지 못하던 미쳐 날 뛰던 자가 옷을 입고 얌전히 예수님 발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며 그들은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이 일로 인해서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귀신들렸던 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은 것을 본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예수님과 그 일행들에게 떠나가기를 구하였습니다.

 

36-37절에 보면 “귀신 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 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구원 받은’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소제인’(ejswvqh)인데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치유된’, 또는 ‘구원 받은’이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복음서 저자 중에서 누가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곧 누가만 이 단어를 사용해서 귀신들린 자를 설명합니다. 이 단어는 본문에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많은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갔으나(27), 이제 귀신들이 모두 떠나갔습니다(35). 그는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았으나(27), 이제 옷을 입었습니다(35). 그는 무덤들 가운데 살고 있었으나(27), 이제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39). 그는 예수님에게 다가가 외쳤으나(28), 이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35). 귀신들이 그를 사로잡고 조종하였으나(29), 이제는 정신이 온전해 졌습니다(35). 비참하고, 버림받고, 저주받아 죽은 자들 가운데 살던 이 사람은 예수님의 구원하는 능력을 가장 강력히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의 운명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 주민들은 신앙보다는 두려움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신 사건에서 제자들이 보인 반응과 병행을 이룹니다.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 제자들은 폭풍의 힘보다 그 폭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25). 거라사 지방의 주민들도 귀신들린 사람 때문에 놀란 것보다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의 능력 때문에 더 놀랐습니다(35). 세상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기를 원한다고 주장하면서도(23:8) 하나님의 행위가 실제로 나타나게 되면 두려움으로 심지어는 거부로 반응하게 됩니다(5:8; 요 1:11). 거라사인의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신적 권능을 봤습니다. 그로인해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보다 거부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기를 구했습니다.

 

37b절에 보면 이에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군대귀신이 나간 거라사 광인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구하였습니다(38). 귀신이 나간 이 거라사 광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귀신에게서 벗어나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하였습니다. 곧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38-39절을 보면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 주지 아니하시고 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거라사 광인이 자신과 함께 하고자는 청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하도록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를 이방 곧 데가볼리 지방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고려했는지도 모릅니다. 데가볼리 출신의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면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갈릴리와 유대 지역에서 예수님의 전도 사역을 심하게 가로막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것을 고려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확실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를 데가볼리에서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 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라”고 명령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치유 받은 거라사 광인에게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통해서 예수님의 참 증인이 되는 것이 열두 제자들과 70인 제자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 받은 거라사 광인에게 진정한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서 전해야 할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일화가 아닙니다. 9:10절에서 열두 제자들에게 맡겨진 구원을 담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39절을 다시 보면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치유 받은 거라사 광인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집으로 돌아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였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그 큰 일을 온 성에 전하였습니다. 여기서 ‘온 성내에 전파했다’라고 했을 때 ‘전파하다’는 말이 ‘케뤼세인’(khruvsswn)인데 이 말은 사도들에게 사용된 용어로 증인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라사 광인으로 하여금 그의 고향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를 명하신 것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집으로 돌아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그 큰 일을 온 성내에 전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 치유 받은 거라사 광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며 동일하였습니다. 치유 받은 거라사 광인은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방 세계에 전파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는 데가볼리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치유 받은 거라사 광인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 큰 일을 증거 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명에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명에 충성스럽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한복음 6:29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올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오는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보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무리들을 보시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이란 하나님의 일이라고 보았기에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세상의 풍속을 좇아 멸망으로 달려가던 우리를 건져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이시고 함께 살리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2:1-7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라사의 광인이 고침 받은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큰 일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 되길 원합니다. 아멘!

 

그러면 오늘 거라사 광인을 고쳐 주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계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시고 군대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만의 메시야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야도 되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새 출애굽의 역사는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크신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가 그 일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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