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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눅 8:40-56

2020년 누가복음 공부

야이로의 딸과 예수의 옷에 손 댄 여인

말씀:누가복음 8:40-56

 

누가복음 8:22-56절 말씀은 갈릴리 전도 사역을 섬기신 후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네 가지 기적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네 가지 기적 사건은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신 사건’(8:22-25)과 ‘거라사 광인을 고쳐 주신 사건’(8:26-39),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주신 사건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고쳐 주신 사건’(8:40-56)입니다. 우리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신 사건’(8:22-25)과 ‘거라사 광인을 고쳐 주신 사건’(8:26-39)을 살펴봤습니다. 특히 우리는 지난 시간에 거라사 광인을 고쳐 주신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살펴봤습니다. 오늘 우리는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주신 사건과 열두 해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쳐주신 사건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사건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들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라사인의 땅에서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이에 무리가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무리들이 왜 예수님을 기다렸을까요? 진리를 보고서 기뻐하면서 기다렸을까요? 아닙니다. 이들 무리들이 예수님을 기다린 것은 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행하시는 그런 예수님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하여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 다 도망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야기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 41-42절을 보면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무리들 가운데 회당장 야이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그 발 아래 엎드려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회당장은 각 지역에 있는 유대인 예배 공동체인 회당의 대표 혹은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유대인 성인 10명이 있으면 회당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의 모임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율법을 낭독하고 안식일에 설교도 하는 곳입니다. 회당 예배는 성경 읽기, 설교, 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문 사역자 계층이 아니라 회당의 평신도 회원들이 예배를 진행했습니다. 회당장은 공동체의 장로들에 의해 선임되었는데 회당과 가르침의 전통을 전체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한 건물 유지와 안전을 책임졌으며, 성경 낭독을 위한 두루마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낭독할 사람과 기도자와 설교자를 정해서 안식일 예배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도행전 13:15절에 보면 하나의 회당에 적어도 두 명의 회당장이 있었음을 언급하지만 통상적으로는 하나의 회당에 한 명의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이로는 바로 그런 회당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야이로는 회당장이라는 그 직책을 이용해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외동딸이 죽어가는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께 간구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그 발 아래 엎드려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제발 자기 집에 오셔서 죽어 가는 자신의 딸을 살려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42b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이때 무리가 옹위하였습니다. 여기서 ‘옹위하다’라는 말은 ‘쉼프니게인’(sunevpnigon)이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숨 막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서 두 차례만 사용된 단어인데 8:14절에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가시떨기에 기운이 막혀 결실치 못했다고 하셨을 때와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실 때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무리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3-48절을 보면 “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딸을 고치기 위해 집으로 가는 중에 갑자기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몰래 와서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손에 대어 혈루증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혈루증이란 부인병으로 계속해서 하혈이 되는 질병입니다. 이 질병은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토라 곧 모세 오경에 보면 여자는 생리 이후 7일 동안 부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여자의 경우처럼 오래된 부인병을 앓는 여자는 그 기간 동안 부정한 상태였습니다(레 15:1-15). 그러므로 유출 중인 여자와 그녀에게 닿은 사람은 정결해지기 전까지는 누구든지 공동체 밖에 머물러야 했습니다(레 15:19-27). 요세푸스의 의하면 “생리 중인 여자는 성전에 들어 갈 수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유대전쟁사」, 5.227). 이런 기술 내용을 볼 때 토라의 이런 규례가 예수님 당시에도 강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5:26절에 보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이 혈루증 여인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의원을 찾아다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효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병이 중하여만 갔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와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44절에 보면 누가는 이 혈루증 여인이 의사들을 찾아갔다는 내용을 기술하지는 않고 그냥 예수님 뒤로 와서 그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4절에서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고 했는데 여기서 ‘옷 가’는 율법을 준수하던 모든 유대인들이 입은 외투의 옷자락에 붙은 술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민 15:38-39; 신 22:12). ‘옷 가’를 원문으로 보면 ‘tou' kraspevdou tou' iJmativou’(토우 크라스페도오우 토우 히마티오우)입니다. ‘옷 가’에서 ‘가’가 ‘tou' kraspevdou’(토우 크라스페도오우)인데 옷의 가장 자리 장식 곧 옷 술을 말합니다. 누가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 뒤로 와서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은 자신의 병을 고침 받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5:28절에 보면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했습니다. 혈루증 여인에게는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믿음으로 율법을 뛰어 넘어, 무리를 뛰어 넘어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두 해 동안 갖은 노력에도 고칠 수 없었던 혈루증이 치유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그 순간 즉시 혈루증이 그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자신에게 손을 댄 자를 찾으셨습니다. 45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댄 자’의 성은 원문으로 보면 여성이 아니라 남성입니다. 이것은 여자의 정체가 예수님께 알려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찾으시자 다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밀다’라는 말은 ‘아포들리베인’(ajpoqlivbousin)이라는 말인데 무리가 밀어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무리가 둘러싸서 밀어붙이는데 손을 댄 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4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손 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손을 댄 자가 있다고 하시며 손 댄 자를 찾으신 것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습니다.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가서 자신에게 손 댄 자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치유가 실행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능력’(duvnami", 뒤나마스)은 예수님의 영적 권위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표시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능력’(duvnami")이 15회 사용되고, 사도행전에서는 10회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거의 절대적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선교를 위해 특히 본문의 예처럼 예수님의 치유하는 능력과 긍휼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나가자 열두 해 동안 여자를 그토록 괴롭게 하던 혈루증이 즉시 치유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여자의 만남 곧 예수님에 대한 앎이 주어집니다. 혈루증 여인의 치유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이며, 창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것처럼 예수님의 능력은 무리와 그녀의 질병 곧 혈루증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그녀를 존귀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7절에 보면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라고 했습니다. 고침 받은 여인은 더 이상 예수님의 시선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와 떨며 엎드려 자신이 손 댄 연고와 곧 치유된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여자의 행동과 고백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신뢰인 동시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전통과 관습을 깨는 위험이기 때문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자신의 치유를 신체가 치유로 된 것으로 표현하지만 예수님은 48절에 보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선언은 7:50절에서 향유 부은 죄 많은 여인에게 선언한 복과 똑같습니다. 누가복음 7:5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향유 부은 죄 많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예에서 보듯이 ‘구원하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단어가 ‘세소켄’(σεσωκεν)인데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치유되다’, 혹은 ‘구원 받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자신의 신체적 치유를 소망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깊은 구원의 치유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는 말은 단순히 관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예수님 탄생 장면에서 천사들이 약속한 평화가 성취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2:14절에 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손을 댄 자가 누구인지 몰라서 찾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체질과 우리의 마음까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신의 옷에 손 댄 자를 찾으신 것은 상당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곧 그 여인이 온전히 구원받았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특히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댄 것은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5:28절에서 우리가 본 대로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혈루증 여인의 이 믿음의 행위는 야이로의 병든 딸을 살리기 위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면 야이로의 딸이 예수님께서 지체하는 중에 죽어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누가의 이 혈루증 여인의 치유 사건을 기술하는 데는 굉장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유대사회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혈루증이 있는 여인은 부정하기에 더욱 그럴 수 없습니다. 율법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자신의 행위를 숨기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숨은 믿음의 역사를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회당장 야이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축복해 주시고 평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9절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인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 결과 나음을 받고 평안을 선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결코 사람이 자랑할 수가 없고 오직 그 믿음을 선물로 주신 우리 주를 찬양하고 증거하고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9-56절을 보면 혈루증 여인이 고침을 받는 동안에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길이 지체 되었습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혈루증 여인과 이야기 하고 있을 때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가 와서 하는 말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에게 있어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자는 이제 당신의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집에 오게 하실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니 선생을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야이로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낙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비보를 듣고도 조금도 요동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의 죽음에 대해서 한마디도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50).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에게 도전하셨습니다. 지금 벌어진 상황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가능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지 도전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도전입니다.

 

지금 야이로에게 필요한 한 가지는 절망감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50절의 약속에서 사용된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누가가 평행구절인 마가복음 5:36절 말씀에 추가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5:3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두려워 말로 믿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이 말씀에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50절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이 헬라 원문으로 보면 ‘세소켄’(σεσωκεν)인데 일반적으로 신체의 치유를 위해 사용하는 단어가 ‘이아스다이’(ιασθαι)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이아스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세소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소켄’은 48절에서 혈루증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신 말씀에 사용하신 바로 그 단어입니다. 모든 상황이 정반대로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 약속은 야이로로 하여금 미래가 여전히 열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야이로를 붙잡았습니다. 그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끄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한다면 혈루증을 치유하시고 여인을 구원하신 그 구원이 야이로에게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운명이 야이로의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50). 참으로 이 말씀은 야이로에게 복음의 말씀입니다. 구원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아이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52). 예수님께서 죽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잔다고 하자 사람들이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5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났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아이가 일어나 먹을 것을 먹는다는 것은 신체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말합니다. 이에 그 부모가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56).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혈루증 여인의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야이로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에 있게 하시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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